면역이야기노화와 면역

만성염증은 어떻게 중요한 질병의 원인으로 주목받게 되었을까

발행: 2026-08-22 · 최종 업데이트: 2026-08-22

Series3/8
LPS Saga: 엔도톡신과 현대 만성질환

1993년 비만 지방조직 TNF-α 발견부터 2000년 inflammaging, 2007년 대사성 내독소혈증(LPS), 그리고 2017년 CANTOS 연구까지 만성 저강도 염증이 현대 질병의 핵심 원인으로 자리 잡게 된 30년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염증은 원래 손상된 조직을 회복하고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작동하는 정상적인 방어 반응입니다. 오랫동안 의학에서는 감염이나 상처가 생겼을 때 열이 나고 붓는 급성 염증을 중심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감염이나 뚜렷한 증상이 없음에도, 혈액 속 염증 물질이 미세하게 높아진 상태가 지속되는 사람들이 관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태가 비만, 당뇨병, 동맥경화, 심혈관질환, 노쇠 등 현대 주요 만성질환의 공통된 바탕이라는 점이 점차 밝혀졌습니다.

이처럼 눈에 띄는 통증은 없지만 낮은 수준의 염증이 수년~수십 년간 계속되는 상태를 **만성 저강도 염증(chronic low-grade inflamma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 개념이 의학의 중심 개념으로 자리 잡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이뤄진 30년의 결정적 연구 흐름을 살펴봅니다.

비만은 단순히 지방이 많은 상태가 아니었다

현대적인 만성염증 연구의 중요한 출발점은 1993년입니다. 괴칸 핫타미스릴(Gökhan Hotamisligil)과 브루스 슈피겔만(Bruce Spiegelman) 연구팀은 비만 동물의 지방조직에서 TNF-α라는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크게 증가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전까지 지방조직은 남는 에너지를 중성지방으로 저장하는 수동적인 창고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를 계기로 지방조직 역시 다양한 신호물질을 만들어 내어 전신 대사와 면역반응에 작용하는 능동적 면역-대사 기관이라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연구진은 비만한 지방조직에서 증가한 TNF-α가 인슐린 신호전달을 직접 방해한다는 점을 입증했습니다. 이 결과는 비만과 제2형 당뇨병을 단순히 칼로리나 혈당의 문제가 아니라 염증과 면역 반응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염증이 높은 사람에게 심근경색이 더 많이 생겼다

1997년 폴 리드커(Paul Ridker) 연구팀은 심혈관질환과 염증의 관계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이들은 겉으로 건강한 사람들의 혈액에서 CRP라는 염증 지표를 측정한 뒤 장기간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처음부터 CRP 수치가 높았던 사람들은 낮았던 사람들에 비해 이후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발생할 위험이 현저히 높았습니다. 이 연구가 결정적이었던 이유는 심근경색이 발생한 뒤 염증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질병이 생기기 전 이미 염증 지표가 상승해 있었다는 점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연구자들은 염증이 질병의 결과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혈관질환 진행 과정 자체를 밀어붙이는 동력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질문은 이후 JUPITER와 CANTOS 대규모 임상시험으로 이어집니다.

동맥경화도 염증질환이라는 생각

1999년 동맥경화를 바라보는 파라다임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러셀 로스(Russell Ross)는 《NEJM》 종설 논문에서 **“동맥경화는 염증질환이다”**라고 선언하며 기존의 단순 지방 축적 모델을 면역학적 모델로 확장했습니다.

동맥경화는 흔히 콜레스테롤이 혈관에 쌓이는 병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병변을 들여다보면 혈관 내피세포가 활성화되고 단핵구(monocyte)가 혈관 벽 내부로 침윤하여 대식세포(macrophage)로 변하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이 대식세포들이 콜레스테롤을 삼켜 거품세포(foam cell)를 형성하고 염증성 물질을 분비하면서 죽상반(plaque)이 커지고 파열에 이릅니다.

결국 동맥경화는 콜레스테롤 축적과 면역세포의 반응이 상호작용하는 만성 염증 반응으로 재정의되었으며, 이때부터 지질 대사와 선천면역 반응이 하나의 병태생리 안에서 통합되었습니다.

노화에도 약한 염증이 계속된다

비슷한 시기 만성염증 연구는 노화 분야로 확산되었습니다. 2000년 클라우디오 프란체스키(Claudio Franceschi)는 **inflammation과 aging을 결합한 inflammaging(노화성 염증)**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Inflammaging은 급성 감염처럼 강한 염증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뚜렷한 증상은 없지만 온몸에서 낮은 수준의 염증 상태가 서서히 상승하여 수십 년간 지속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Franceschi는 이 지속적인 염증 환경이 동맥경화, 당뇨병, 골다공증, 알츠하이머병 등 노인성 질환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기 쉬운 생물학적 토대를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개념은 만성염증을 개별 질환의 부수적 결과가 아닌, 여러 노인성 질환을 관통하는 공통 생물학적 배경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했습니다.

염증이 높으면 근력과 신체기능도 더 빨리 떨어졌다

Inflammaging 개념이 실제 노인의 신체 기능과 직결됨을 증명한 연구가 뒤를 이었습니다. 루이지 페루치(Luigi Ferrucci) 연구팀은 2002년 혈액 속 IL-6 수치가 높은 노인일수록 근력과 보행 능력이 더 빠르게 저하된다는 점을 보고했습니다.

만성염증이 혈액검사 표지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근감소증과 신체기능 저하, 나아가 노쇠(frailty)와 장애로 직결된다는 임상적 근거가 마련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약한 염증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감염도 없고 뚜렷한 상처도 없는데 무엇이 면역계를 수년간 자극하여 만성염증을 유지시키는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2007년 패트리스 카니(Patrice Cani) 연구팀은 고지방식이를 한 생쥐의 혈액에서 장내세균 유래 LPS가 증가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장 장벽 투과성이 높아지면서 미량의 LPS가 혈류로 들어오는 상태를 **metabolic endotoxemia(대사성 내독소혈증)**라고 명명했습니다. 미량의 LPS를 오랫동안 공급받은 동물에서 지방조직 염증과 인슐린 저항성이 유발되었습니다.

대사성 내독소혈증(LPS) 유래 만성염증 진행 경로
1고지방 식단 / 장 장벽 투과성 증가
2장내 그람음성균 유래 LPS의 혈중 유입
3선천면역계(TLR4)의 지속적 약한 자극
4지방조직 및 전신 만성 저강도 염증 유발
5인슐린 저항성 및 대사 이상 발생

다만 Cani의 이 발견은 생쥐 실험 모델에 기초한 연구로, 인간의 비만과 노화에서 대사성 내독소혈증의 직접적 인과성에 대해서는 현재도 다양한 후속 연구와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그럼에도 만성염증의 상류 자극원이 장내 미생물 환경과 장 장벽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집니다.

JUPITER, 염증이 높은 사람을 치료 대상으로 삼다

1997년 CRP 연구를 이끈 Paul Ridker는 염증 지표가 높은 사람을 실제 치료했을 때 심혈관질환이 감소하는지 검증하는 대규모 임상시험을 기획했습니다.

2008년 발표된 JUPITER 연구에서는 LDL 콜레스테롤은 정상이지만 CRP가 높은 사람들에게 스타틴(statin)을 투여했고, 그 결과 주요 심혈관 사건이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스타틴이 콜레스테롤과 CRP를 동시에 낮추기 때문에, 이 효과가 콜레스테롤 저하 때문인지 염증 억제 때문인지 완벽히 분리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습니다.

CANTOS, 염증 자체를 낮추어 심혈관질환과 암 위험을 줄이다

이 질문을 정면으로 입증한 임상이 2017년 CANTOS 연구입니다. Ridker 연구팀은 LDL 콜레스테롤에는 영향이 없고 IL-1β 사이토카인만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표적 항체 **카나키누맙(canakinumab)**을 투여했습니다.

그 결과 콜레스테롤 수치는 바뀌지 않았음에도 주요 심혈관 사건이 유의미하게 감소했습니다. 이로써 염증이 단순한 표지자가 아니라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직접적 병인 인자임이 명확히 입증되었습니다.

Ridker 연구팀의 20년 만성염증 임상 연구 발전사
11997년: 겉으로 건강한 사람에서 CRP 측정 (미래 심혈관질환 위험 예측 관찰)
22008년 JUPITER: CRP가 높은 사람에게 스타틴 투여 (심혈관 사건 유의미한 감소)
32017년 CANTOS: 콜레스테롤 변경 없이 IL-1β 선택적 억제 (염증 자체가 질병 원인임을 입증)

흥미롭게도 CANTOS 연구에서는 파격적인 이차적 발견(secondary finding)이 함께 관찰되었습니다. 카나키누맙을 투여받은 환자군에서 폐암 발생률과 폐암 사망률이 용량 의존적으로 크게 감소한 것입니다. 만성염증이 심혈관질환을 넘어 암의 발생과 진행에도 핵심 병태생리로 작용함을 보여준 강력한 임상 근거였습니다.

만성염증 연구가 바꾼 생각

이 일련의 역사를 종합해 보면 염증에 대한 의학적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일시적인 감염 방어선으로 여겨졌던 염증은 이제 감염이 없어도 지속되는 만성 저강도 면역 활성으로 재정의되었으며, 비만, 당뇨병, 동맥경화, 노화, 암을 서로 연결하는 공통 생물학적 분모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만성염증에서 더 중요한 질문

만성염증을 단순히 '면역계가 과도하게 흥분한 문제'로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면역계는 본래 외부 침입자와 손상된 세포를 청소하기 위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성염증이 지속된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1. 염증 자극의 지속적 유입 (LPS, 대사 스트레스 등)
  2. 염증의 정상적 청소 및 종료 능력 저하

특히 노화 과정에서는 두 번째 원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노화세포가 분비하는 염증 물질(SASP), 죽은 세포를 말끔히 치우는 효과세포증(Efferocytosis) 장애, 손상된 미토콘드리아에서 방출되는 미토콘드리아 DNA(mtDNA) 유출 등이 쌓이면서 염증이 제대로 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대 면역학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염증을 무조건 억제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염증 자극이 몸 안에 계속 남아있으며, 왜 우리 몸은 염증을 정상적으로 종료시키지 못하는가"**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노화와 만성질환을 극복하는 새로운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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