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T세포와 B세포가 분리되다: 헬퍼 T세포 개념의 탄생
발행: 1970-01-01 · 최종 업데이트: 2026-01-02
1970년, 면역학자들은 림프구를 처음으로 T세포와 B세포로 나누는 데 성공했다. 이 글은 anti-theta 항체 실험을 통해 헬퍼 T세포와 세포 협동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쉽게 풀어본다.
1970년, T세포와 B세포가 처음으로 분리되다
1970년은 면역학 역사에서 특별한 해입니다. 이 해를 기점으로 면역학은 말 그대로 폭발적인 도약을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연구자들이 드디어 T세포와 B세포를 서로 구분해서 연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 면역학자들은 “림프구”라는 하나의 집단만을 놓고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흉선(thymus)에 의존하는 세포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항체를 만드는 세포가 결국 형질세포(plasma cell)로 분화한다는 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들을 명확히 나누어 실험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T세포와 B세포라는 개념은 존재했지만, 실험적으로 분리해 증명할 도구가 없었던 시대였던 셈입니다.
Martin Raff와 anti-theta 항체의 등장
이 전환점을 만든 인물이 바로 마틴 래프(Martin Raff)입니다. 그는 런던 Mill Hill에 있는 National Institute of Medical Research에서 Av Mitchison 밑에서 연구하던 젊은 연구자였습니다. Mitchison은 다시 Peter Medawar의 제자였고, 이 계보는 고전 면역학의 핵심 흐름을 이룹니다.
Mitchison은 흉선 유래 세포 표면에 공통적으로 발현되는 분자, 즉 θ(theta) 항원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를 인식하는 anti-theta 항체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항체를 래프에게 건네며, “이 항체가 인식하는 세포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보라”고 주문합니다. (이 항체는 Mitchison이 개발한 것은 아닙니다.)
그 결과, 래프는 1969~1970년에 걸쳐 연속적인 논문들을 발표하며,
θ-양성 세포 = 흉선 유래 림프구, 즉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T세포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2차 항체 반응에서 T세포의 역할
1970년 Nature에 실린 대표적인 논문에서 래프는 한 가지 질문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흉선 유래 림프구는 항체 반응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를 위해 그는 헵텐–운반체(hapten–carrier)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작은 분자인 헵텐(NIP)을 큰 단백질 운반체(BSA, chicken γ-globulin 등)에 결합시켜 항원을 만들고, 이를 마우스에 면역합니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 면역 기억이 형성된 뒤, 비장세포를 꺼내어 다른 마우스에 이식하는 방식입니다.
이때 핵심 실험이 등장합니다.
비장세포를 그대로 옮긴 경우와, anti-theta + 보체로 θ-양성 세포(T세포)를 제거한 뒤 옮긴 경우를 비교한 것입니다.
결과는 매우 분명했습니다.
-
T세포가 살아 있는 비장세포 → 항체 반응 정상
-
T세포를 제거한 비장세포 → 항체 반응 80–90% 감소
즉, 항체를 직접 만드는 세포는 아니지만, T세포의 ‘도움(help)’ 없이는 항체 반응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운반체 효과’와 헬퍼 T세포 개념의 탄생
이 실험은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을 명확히 합니다. 바로 운반체 효과(carrier effect)입니다.
-
헵텐은 B세포가 인식한다
-
운반체 단백질은 T세포가 인식한다
-
T세포가 인식한 운반체에 대한 반응이 있어야 B세포가 헵텐에 대한 항체를 만든다
이때부터 면역학자들은 θ-양성 T세포를 헬퍼 T세포(helper T cell)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항체 생성은 단일 세포의 기능이 아니라, T세포와 B세포의 협동 작용이라는 인식이 확립됩니다. 이를 당시에는 “흉선–골수 시너지(thymus–marrow synergism)”라고 불렀습니다.
in vitro에서도 확인된 T–B 협동
같은 해,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Anneliese Schimpl과 Eberhard Wecker는 Mishell & Dutton의 in vitro 배양 시스템을 이용해 같은 질문을 시험합니다. 마우스 비장세포를 배양해 항체 생성 세포를 측정하는 이 시스템에서, anti-theta로 T세포를 제거하면 플라크 형성 세포가 역시 80–90% 감소했습니다.
이는 in vivo와 in vitro 모두에서 T세포의 필수적 역할이 확인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FACS의 등장으로 이어지다
이 모든 연구는 다음 단계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T세포와 B세포를 더 정확히, 더 깨끗하게 나눌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 답한 인물이 스탠퍼드의 Leonard Herzenberg입니다. 그는 형광활성화 세포분류기(FACS)를 면역학에 도입해, 표면 분자를 기준으로 세포를 정밀하게 분리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면역학은 본격적으로 세포 하위집단(subset)의 시대에 들어서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T세포, B세포, 그리고 그 안의 수많은 하위 집단을 이야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바로 이 시기입니다.
정리하며
1970년은 면역학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착각할 만큼 결정적인 해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T세포와 B세포를 분리해 볼 수 있게 된 순간이야말로, 현대 면역학의 진짜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헬퍼 T세포, 세포 협동, 면역 기억의 개념은 모두 이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anti-theta 항체와, 그것을 과감하게 사용한 젊은 연구자들의 실험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