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클론 선택 가설의 탄생: Burnet의 현대 면역학 최고의 논문

발행: 2026-01-01 · 최종 업데이트: 2026-01-01

Macfarlane Burnet의 1957년 논문을 통해 살펴보는 클론 선택 가설과 현대 면역학의 이론적 출발점

A Modification of Jerne’s Theory of Antibody Production Using the Concept of Clonal Selection
F.M. Burnet · Aus. J. Sci. · 1957
이 논문은 맥팔레인 버넷의 논문으로 20세기 이후 가장 중요한 논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맥팔레인 버넷
그림 1. 맥팔레인 버넷, 클론 선택설을 주장한 그의 논문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논문으로 인정받는다.

1957년, Macfarlane Burnet은 「A Modification of Jerne’s Theory of Antibody Production Using the Concept of Clonal Selection」이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을 발표합니다.
호주 과학 저널(Australian Journal of Science)에 실린 이 글은 고작 3페이지 분량이지만, 이후 반세기 이상 면역학 연구의 방향을 규정한 이론적 선언문으로 평가됩니다. 이 논문은 논문 발표 50년 후에 재발표되었으며, 그 만큼 면역학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면역학의 방향을 바꾼 3페이지

이 논문은 실험 결과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당시까지 축적된 방대한 면역학적 관찰들을 하나의 세포 수준 가설 체계로 묶어냅니다.
항체가 어디서 나오며, 왜 그렇게 다양하면서도 특이적인지, 그리고 면역 기억과 관용(tolerance)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처음으로 일관되게 설명한 글이 바로 이 논문입니다.

버넷의 문제의식과 시대적 배경

Burnet은 의사 출신 연구자로, 20세기 초반 감염병이 인류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를 직접 겪은 세대입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 팬데믹 당시, 바이러스의 실체조차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던 상황에서 그는 감염병과 면역 반응에 깊은 문제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의 주된 연구 대상은 평생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였으며, 닭 수정란을 이용한 바이러스 배양법, 적혈구 응집(hemagglutination)과 이를 이용한 항체 정량법 확립 등 실험 면역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Burnet은 혈청 속 항체의 변화를 넘어, 면역 반응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의 부재를 절감하게 됩니다.

항체 다양성이라는 이론적 난제

1950년대 중반 면역학자들이 공유하던 가장 큰 질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어떻게 면역계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항체 다양성을 가지면서도, 각 항체는 특정 항원에 대해 극도로 특이적일 수 있는가?”

Burnet의 1957년 논문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기존 이론들에 대한 검토

Burnet은 논문 서두에서 당시 제안되어 있던 세 가지 주요 이론을 정리합니다.

첫째, David Talmage의 직접 주형 이론(direct template theory)입니다.
항원이 주형처럼 작용해 그 모양에 맞는 항체가 만들어진다는 발상으로, 직관적이지만 항원 제거 이후에도 항체 생산이 지속되는 현상 등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Burnet 자신이 제안했던 간접 주형 이론(indirect template theory)입니다.
항체의 특이성은 유전적으로 미리 프로그램되어 있으며, 항원은 그 발현을 촉발할 뿐이라는 관점이었습니다.

셋째, Niels Jerne자연 선택 이론(natural selection theory)입니다. 혈장 속에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항체 중 항원과 결합한 항체가 선택되어 증폭된다는 개념이었지만, 항체가 어디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자연 선택을 세포로 끌어내리다: 클론 선택

Burnet의 핵심적 전환은, Jerne의 자연 선택 개념을 항체가 아니라 세포 수준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합니다.

  • 항체는 혈장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림프구가 만든다

  • 각 림프구는 단 하나의 특이성을 가진 항체 수용체를 표면에 지닌다

  • 항원이 그 수용체와 결합하면, 해당 림프구가 선택되어 폭발적으로 증식(clonal expansion)한다

  • 증식한 클론의 자손들은 모두 동일한 특이성을 유지한다

이것이 바로 클론 선택 가설(clonal selection hypothesis)입니다.

예르네가 비슷한 주장을 했고 그도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클론 선택설을 예르네도 주장한 것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는 항체를 누가 만든다는 것 등을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으며, 예르네는 약간 형이상학적인 주장을 한 것과 비교해서 맥팔레인 버넷은 클론 선택설의 핵심 인자가 림프구임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맥팔레인이 기본적으로 진화론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진화는 개체단위로 이루어지고 면역계의 개체는 림프구와 같은 세포이기 때문입니다.

증식, 분화, 그리고 면역 기억

Burnet은 단순한 세포 증식만으로 면역 반응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선택된 림프구 클론이 증식한 뒤,

  • 일부는 항체를 분비하는 플라즈마 세포(plasma cell)로 분화하고

  • 일부는 장기간 생존하는 기억 세포(memory cell)로 남는다는 그림을 제시합니다.

이는 이미 Astrid Fagreus가 제시한 플라즈마 세포의 역할을 이론적으로 통합한 것이며, 1차·2차 면역 반응과 면역 기억을 하나의 틀 안에서 설명하는 데 성공합니다.

관용과 자기–비자기 인식

Burnet 가설의 또 다른 강점은 면역 관용(tolerance)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태아 또는 면역계가 미성숙한 시기에 외래 항원이 존재하면, 그 항원에 반응할 수 있는 클론은 선택·증식되는 것이 아니라 제거되거나 불활성화됩니다.

이 개념은 훗날 Peter Medawar의 이식 실험과 결합되어, 자기–비자기 인식(self–nonself discrimination)의 이론적 토대를 형성합니다.

예견된 미래와 남겨진 과제

Burnet은 이 논문에서 체세포 수준의 돌연변이, 림프구에 의한 이식 거부 반응, 세포매개 면역(cell-mediated immunity)의 가능성까지 언급합니다.

당시에는 T세포와 B세포의 구분도, 유전자 재조합이나 사이토카인의 존재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제시한 세포 중심의 이론적 골격은 이후 모든 발견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견고했습니다.

맺음말

1957년 Burnet의 논문은 결과를 보여준 글이 아니라, 면역학이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 학문인지를 규정한 글이었습니다.

이 짧은 가설 논문에서 시작된 사고방식은 곧이어 등장할 세포 배양 실험, 림프구 증식 연구, 그리고 Mishell–Dutton 시스템과 Peter Nowell의 발견으로 이어지며 현대 면역학의 실험적 전개를 가능하게 합니다.

따라서 이 글을 언급하지 않고 20세기 면역학을 논하는 것은, 이론 없는 실험만을 나열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관련 글

참고문헌

  1. Burnet FM. A modification of Jerne’s theory of antibody production using the concept of clonal selection. Australian Journal of Science, 1957. 논문 링크, 원본은 찾기 어렵지만 이 논문은 여러번 reprint 되었기 때문에 본문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2. Medawar PB. The behaviour and fate of skin autografts and homografts in rabbits. Journal of Anatomy, 1944.

  3. Jerne NK. The natural-selection theory of antibody forma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