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세포는 어떻게 발견되었는가: 파브리시우스낭과 두 종류의 림프구의 구분
발행: 2025-12-27 · 최종 업데이트: 2025-12-27
브루톤 질환, 파브리시우스낭 절제 실험, 그리고 굿–쿠퍼 논문을 통해 B세포 개념이 확립되는 과정을 정리합니다.

면역학의 초기 역사를 돌아보면, 연구의 중심은 오랫동안 항체(antibody)에 있었습니다. 항체를 만들어내는 형질세포(plasma cell)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관찰되었지만, 정작 그 전구 세포인 B세포(B cell)라는 개념은 T세포(T cell)보다 늦게 확립되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B세포의 발견 과정이 T세포처럼 하나의 결정적인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관찰과 실험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연결되며 완성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긴 여정의 중심에 있는 논문이 바로 1965년, 맥스 쿠퍼와 로버트 굿이 발표한 연구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 논문이 나오기까지의 배경과 실험 내용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항체가 없어도 면역은 일부 작동한다
1952년, 소아과 의사였던 오그덴 브루톤은 매우 특이한 질환을 보고합니다. 이후 그의 이름을 따서 브루톤형 성염색체 연관 무감마글로불린혈증(X-linked agammaglobulinemia)이라 불리게 된 이 질환의 아이들은 혈중 항체가 거의 없고, 면역글로불린도 검출되지 않으며, 형질세포 역시 거의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아이들은 지연형 과민반응(delayed-type hypersensitivity, DTH)을 보일 수 있었고, 피부 이식편(skin graft)을 거부하는 능력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말초 혈액 속 림프구 수 또한 정상 범위였습니다.
이는 항체를 만드는 계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세포성 면역(cell-mediated immunity)은 비교적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이 발견은 “항체가 면역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사실을 임상적으로 처음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파브리시우스낭 제거 병아리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단서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수의대 대학원생이었던 브루스 글릭은 우연에 가까운 계기로 매우 중요한 관찰을 하게 됩니다.
그는 닭을 이용한 실험을 하던 중, 파브리시우스낭(bursa of Fabricius)을 제거한 병아리가 성장한 뒤 항체를 거의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면역학자들은 조류에서 림프구가 어디서 성숙하는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유류의 골수(bone marrow) 기능도 아직 명확하지 않았던 시기였고, 조류에는 파브리시우스낭이라는 독특한 기관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글릭은 면역학자가 아니라 내분비를 연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파브리시우스낭이 생식계 주변에 위치해 있다는 점 때문에, 그는 이 기관이 성적 성숙이나 호르몬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접근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기능을 모르는 기관이니, 제거해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내분비계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이후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1954년, 동료 대학원생이었던 티모시 창이 살모넬라 항체가 필요해 글릭의 닭을 사용했고, 파브리시우스낭가 제거된 이 닭들은 살모넬라 감염 후 대거 폐사하거나 항체를 전혀 만들지 못했습니다.
반면, 파브리시우스낭을 제거하지 않은 대조군 병아리들은 정상적인 항체 역가를 형성했습니다.
글릭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파브리시우스이 항체 생성에 필수적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후 체계적인 실험에서도, 파브리시우스낭을 제거한 병아리의 대부분이 항체를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이 중요한 결과는 면역학 저널이 아닌 양계학 저널(Journal of Poultry Science)에 발표되어, 면역학계에 널리 알려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흉선과 파브리시우스낭, 두 갈래 면역계라는 가설
글릭의 연구 이후, 자크 밀러가 흉선(thymus)의 면역학적 중요성을 밝히자 학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흉선과 파브리시우스낭은 각각 무엇을 담당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갔습니다.
이 질문을 가장 철저하게 실험으로 풀어낸 사람이 바로 굿–쿠퍼 연구팀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파브리시우스낭을 제거하면 항체가 사라지고, 흉선을 제거하면 다른 면역 기능이 망가진다. 그렇다면 면역계 안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림프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그들은 닭을 실험 모델로 선택했습니다. 닭은 파브리시우스낭과 흉선이 모두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연구자들은 생후 2일 된 병아리를 대상으로 파브리시우스낭 제거, 흉선 제거, 두 기관 모두 제거, 그리고 여기에 전신 방사선 조사(irradiation)를 조합한 정교한 실험 설계를 적용했습니다. 방사선 조사는 수술 이후 새로 생성될 수 있는 림프구를 최대한 차단해, 결과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실험 결과가 보여준 명확한 대비
병아리들이 성장한 뒤 항원으로는 소 혈청 알부민(bovine serum albumin, BSA)과 브루셀라 아보르투스(Brucella abortus)가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혈청 항체와 림프 기관의 조직학적 변화가 분석되었습니다.
결과는 매우 분명했습니다.
파브리시우스낭이 제거된 병아리들은 흉선의 상태와 관계없이 항체를 거의 만들지 못했습니다. 비장에서는 림프성 소포(lymphoid follicle)가 사라지고, 형질세포도 거의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흉선만 제거된 병아리들은 항체 생성 능력은 비교적 유지되었지만, 비장의 백색 수질(white pulp)이 소실되는 등 세포성 면역 계통에 해당하는 결손을 보였습니다.
이 모든 결과를 종합해,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닭의 면역계에는 흉선 유래 림프계와 파브리시우스낭 유래 림프계라는 두 개의 독립된 체계가 존재한다.
B세포 개념의 완성으로 이어지다
이 논문은 이후 T세포–B세포 분리 개념을 확고히 만드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포유류에도 파브리시우스낭에 해당하는 기관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이후 쿠퍼는 그 구조가 바로 골수임을 밝혀냅니다.
뒤이어 안젤로 디조지증후군, 흉선이 없는 누드 마우스(nude mouse)의 발견 등은 이 이론을 강력하게 뒷받침했습니다. 이제 림프구는 하나의 세포 집단이 아니라, T세포와 B세포라는 두 축으로 구성된 면역계의 핵심 요소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로써 피터 노웰의 관찰에서 시작된 세포 면역학은 비로소 자리를 잡게 되었고, 면역학의 기본 구조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완성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