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T 세포의 무기고를 열다: 세포독성 과립과 perforin의 발견
발행: 2026-01-02 · 최종 업데이트: 2026-01-02
1984년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에 발표된 연구는, 세포독성 T 세포가 표적 세포를 죽이는 핵심 도구가 세포질 과립이며, 이 과립이 실제로 막에 구멍을 뚫는 독립적인 세포독성 단위임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킬러 T 세포는 어떻게 세포를 죽이는가?”라는 오래된 질문
면역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 항체와 킬러 T 세포의 차이를 설명할 때, 흔히 이런 비유가 사용됩니다. 항체는 체액을 떠다니며 표적을 찾는 공군(Air Force)이고, 세포독성 T 세포(cytotoxic T cell)는 표적 세포와 직접 맞붙어 싸우는 해병대(Marines)라는 설명입니다.
이 비유는 직관적이지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남깁니다.
“그 해병대는 도대체 어떤 무기를 사용해 상대를 죽이는가?”
1980년대 초반까지, 면역학자들은 킬러 T 세포가 표적 세포를 죽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과정이 분자 수준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984년 9월,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에 발표된 이 논문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이 논문 하나로 답변이 완전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연구가 가능했던 시대적 배경
이 논문이 나오기 불과 5년 전인 1979년, 처음으로 단일 T 세포를 클론화하고, IL-2만으로 무한 증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정말로 패러다임으로 작용합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을 따라하고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연구자들은 유전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T 세포를 수억, 수십억 개까지 증식시켜 세포 수준이 아니라 분자 수준의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가 인터루킨 연구의 황금기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IL-2를 비롯한 여러 사이토카인이 분리·정제되고, 비록 양은 적었지만 실제 실험에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왜 Eckhart Podack였는가
이 논문의 제1저자인 Eckhart R. Podack은 독일 출신의 생화학자로, 197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와 Scripps Clinic and Research Foundation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 문제를 풀기에 최적의 인물이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Podack은 이미 보체(complement) 연구의 거장인 Hans Müller-Eberhard의 연구실에서 보체의 핵심 구성 요소인 C9 단백질을 정제하고, 이 단백질이 서로 중합되어 세포막에 구멍(pore)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낸 경험이 있었습니다.
즉, 그는 이미 “단백질이 막에 구멍을 뚫어 세포를 죽인다”는 현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던 연구자였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연구자가, 대량으로 확보 가능한 클론화된 세포독성 T 세포를 손에 넣었을 때,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킬러 T 세포도 보체처럼, 막에 구멍을 뚫는 단백질을 사용하지 않을까?
과제는 명확했다: 과립만 분리하라
전자현미경 관찰을 통해, 세포독성 T 세포의 세포질에는 뚜렷한 과립(granule)이 존재하고, 반면 세포독성이 없는 T 세포에는 이런 구조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Podack와 Paula J. Konigsberg가 설정한 과제는 단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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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독성 T 세포에서 과립만 분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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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과립이 독립적으로 세포를 죽일 수 있는지시험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실험을 감행합니다.
10억 개의 T 세포로 시작된 ‘노가다의 결정판’
이 논문에서 핵심적으로 사용된 세포주는 CTLL-2였습니다. 이 세포주는 IL-2만 충분히 공급하면 무한 증식이 가능했기 때문에, 과립을 대량으로 확보하는 데 최적의 재료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양이었습니다. 과립을 분리·정제하기 위해 그들이 키운 세포 수는 10⁹개, 즉 10억 개였습니다.
이는 원심분리관 바닥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세포 펠릿을 의미하며, 엄청난 양의 조건배지와 극도의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배양은, 당시 대부분의 연구실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않던 수준이었습니다.
과립을 살려서 꺼내는 기술
과립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적 난제는 이것이었습니다.
“세포막은 부수되, 과립의 막은 보존해야 한다.”
일반적인 계면활성제(detergent)는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연구진은 질소 파열법(nitrogen cavitation)을 선택했습니다. 고압 질소로 세포를 처리한 뒤 급격히 압력을 낮추면, 세포막은 깨지지만 세포소기관의 막은 비교적 잘 보존됩니다.
이렇게 얻은 세포질 분획을 Percoll 밀도구배 원심분리로 나누고, 각 분획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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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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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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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현미경 상의 과립 존재 여부
를 하나하나 확인했습니다.
과립은 실제로 세포를 죽였다
그 결과는 매우 명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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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분획에서만 강한 세포독성 활성이 관찰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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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획에는 전자현미경으로 확인 가능한 과립이 풍부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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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단백질 양은 많지 않지만, 기능은 압도적이었습니다
분리된 과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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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적혈구를 빠르게 용혈시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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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세포에서도 강력한 세포독성을 보였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 과정이 칼슘 의존적이며, 37℃에서 수 분 이내에 완료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구멍이 실제로 생긴다”는 결정적 증거
이 논문의 백미는 전자현미경 사진입니다. 정제한 과립을 적혈구 막과 함께 처리한 뒤 관찰한 결과, 막 곳곳에 뚜렷한 구멍(pore)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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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 약 160 Å의 큰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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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0 Å 크기의 작은 구멍
이는 킬러 T 세포가 추상적인 “신호”로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막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핵심 개념의 정리
이 논문이 남긴 가장 중요한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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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립은 항원 특이성이 없다→ 기회만 주어지면 무엇이든지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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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선택은 TCR이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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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살상은 과립이 수행한다
즉, TCR은 조준 장치이고, 과립은 비특이적 살상 무기이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분업 개념은, 이후 모든 세포독성 T 세포 연구의 기본 틀이 됩니다.
이후의 전개: perforin과 granzymes
이 논문 이후, Podack은 곧바로 perforin정제에 착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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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perforin 단백질 정제 및 특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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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perforin 유전자 클로닝
이후 과립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효소들이 granzymes로 명명되며, 세포독성 메커니즘은 perforin–granzyme 시스템이라는 하나의 완결된 모델로 정리됩니다.
정리하며
1984년의 이 논문은, 킬러 T 세포의 세포독성을 추상적인 개념에서 분리 가능한 물질과 물리적 메커니즘으로 끌어내린 연구였습니다.
이 연구 이후, “킬러 T 세포는 어떻게 세포를 죽이는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미지의 영역이 아니라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 되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