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학의 토대를 뒤흔들다: 인간 T 세포 항원수용체의 실체를 드러낸 1983년
발행: 2026-01-02 · 최종 업데이트: 2026-01-02
1983년 발표된 인간 T 세포 항원수용체(TCR) 논문은 T 세포가 어떻게 항원을 인식하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처음으로 제시하며, 현대 면역학의 출발점을 마련했다.
면역학이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질문
1980년대 초반까지 면역학에는 하나의 거대한 미해결 문제가 있었습니다.
T 세포는 도대체 무엇으로 항원을 인식하는가?
B 세포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항체(immunoglobulin)가 항원수용체라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T 세포는 달랐습니다. 기능은 분명한데, 수용체의 실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T 세포 항원수용체를 규명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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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세포 면역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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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자기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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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 기억과 특이성을 분자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1983년 2월에 발표된 이 논문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가장 먼저,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 연구였습니다.
출발점은 T3(CD3)에 대한 오래된 의문
이 연구의 배경에는 Ellis Reinherz와 Stuart Schlossman연구팀의 축적된 작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 모든 인간 T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T3 분자 복합체(CD3)를 규명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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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T3 항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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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세포 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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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독성 T 세포(CTL) 생성을 모두 차단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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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T3가 단순한 표지자가 아니라 항원 인식과 밀접하게 연결된 구조임을 시사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T3는 모든 T 세포에 공통적이다.그렇다면 항원 특이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CD4·CD8 연구가 던진 더 큰 질문
같은 시기, 연구진은 T4(CD4)와 T8(CD8)에 대해서도 중요한 사실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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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4 → MHC class II 인식과 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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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8 → MHC class I 인식과 연관
그러나 단일클론항체 실험에서 드러난 결과는 미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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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CD4, 항-CD8 항체는 CTL 생성은 막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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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식 자체는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CD4와 CD8이 항원 인식에 관여하긴 하지만 ‘그 자체가 수용체는 아니다’라는 강력한 암시였습니다.
결국 논리는 하나로 수렴했습니다.
B 세포의 항체처럼, T 세포에도 반드시 ‘클론 특이적’ 항원수용체가 존재해야 한다.
명확한 전략 : T 세포 클론에서 답을 찾는다
연구진이 택한 전략은 단순하지만 대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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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원 특이적 인간 T 세포 클론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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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클론 자체로 마우스를 면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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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 클론만 인식하는 단일클론항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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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항체가 인식하는 구조가 바로 T 세포 항원수용체 후보다
이 접근은 이론적으로는 명확했지만, 기술적으로는 당시 기준에서 매우 어려운 실험이었습니다.
클론 3과 clonotypic 항체의 탄생
연구진은 리미팅 딜루션법으로 여러 T 세포 클론을 확보했고, 그중 CT8-3(클론 3)이라는 항원 특이적 CTL 클론을 선택합니다.
이 클론으로 마우스를 면역해 얻은 하이브리도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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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론 3에는 반응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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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T 세포 클론에는 반응하지 않는
두 개의 단일클론항체(A, B)를 선별합니다. 이 순간, 논문의 핵심 개념이 탄생합니다.
“clonotype” → T 세포마다 다른, 항원 특이적 표면 구조
이 항체들이 보여준 결정적 증거
이 clonotypic 항체들은 단순한 표지 항체가 아니었습니다.
1️⃣ 기능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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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체 A, B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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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원 특이적 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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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L 생성을 모두 강력하게 억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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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 구조가 기능적으로 핵심임을 의미합니다.
2️⃣ T3와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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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notypic 항체 처리 시
- T3 분자의 modulation이 함께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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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항체가 인식하는 분자는 T3 자체는 아님
즉, 항원수용체는 T3(CD3)와 물리적으로 연관된, 그러나 서로 다른 분자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3️⃣ 분자 구조의 실마리
면역침강 실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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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 조건: 49 kDa, 43 kDa 두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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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환원 조건: 약 90 kDa 단일 밴드
이는 항원수용체가 이량체(heterodimer) 구조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습니다.
왜 이 논문이 ‘면역학의 토대’를 흔들었는가
이 논문이 위대한 이유는 단지 새로운 분자를 제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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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세포 항원수용체의 존재를 실험으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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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원 특이성, 증식, CTL 기능을 하나의 구조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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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3, CD4, CD8의 역할을 통합적 틀안에 배치
이후 1983년 한 해 동안, Reinherz 연구팀은 JEM, Nature, Cell 등에서 연속적으로 논문을 발표하며 인간 TCR 개념을 사실상 완성합니다.
동시에 마우스 모델에서 같은 문제를 풀고 있던 Kappler–Marrack 팀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 T 세포에서는 이미 CD3·CD4·CD8이라는 언어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며
이 1983년 논문은 이렇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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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세포 항원수용체를 처음으로 ‘잡아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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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학이 기능 중심 학문에서 분자 구조 중심 학문으로 이동한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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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수십 년간의 TCR, 신호전달, 면역치료 연구의 출발선
Ellis Reinherz는 훗날 이 논문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20세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논문 중 하나다. 이후 면역학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일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과장이 아닙니다. 이 논문 이후, 면역학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학문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