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리의 독소에서 BCG와 TNF까지: 감염은 어떻게 암면역치료의 언어가 되었나
발행: 2026-05-10 · 최종 업데이트: 2026-05-11
William Coley의 세균 독소 치료, Helen Coley Nauts가 이어간 기록 작업, BCG 방광암 치료, Carswell과 Lloyd Old 연구팀의 TNF 보고를 하나의 암면역치료 서사로 정리합니다.
감염이 암을 흔들 수 있다는 오래된 직감
현대 암면역치료는 매우 정교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PD-1, CTLA-4, CAR-T, 종양항원, T세포 탈진 같은 개념들이 중심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긴 이야기의 출발점은 훨씬 거칠고 위험한 관찰이었습니다.
19세기 말의 의사들은 때때로 이상한 일을 보았습니다. 심한 세균 감염을 앓고 살아남은 암 환자에서 종양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면역세포, 사이토카인, 선천면역 수용체 같은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직감은 가능했습니다. 강한 염증 반응이 종양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이 직감을 가장 집요하게 붙잡은 사람이 뉴욕의 외과의사 William B. Coley였습니다.
콜리의 독소: 위험했지만 질문은 정확했다
콜리는 젊은 골육종 환자를 잃은 뒤 병원 기록과 문헌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단독(erysipelas) 같은 고열성 세균 감염 뒤에 종양이 퇴축했다는 오래된 보고들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수술로 해결할 수 없는 암 환자에게 의도적으로 세균 감염을 일으키는 치료를 시도했습니다.
초기에는 살아 있는 연쇄상구균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매우 위험한 접근이었습니다. 환자에게 고열과 전신 염증을 일으켜 종양을 흔들겠다는 전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콜리는 살아 있는 균 대신, 사멸시킨 세균 혼합물과 그 배양 산물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훗날 Coley's toxins로 불린 치료입니다.
콜리의 독소는 표준 치료가 되지 못했습니다. 용량과 제조법이 일정하지 않았고, 반응은 불규칙했으며, 방사선치료와 항암화학요법이 등장하면서 의학의 중심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콜리가 남긴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암세포를 직접 독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숙주의 반응을 깨워 종양을 공격하게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한동안 주변부로 밀려났지만, 완전히 죽지는 않았습니다.
딸이 지켜낸 기록: Helen Coley Nauts와 CRI
콜리의 사후, 그의 작업을 다시 꺼내 든 사람은 그의 딸 Helen Coley Nauts였습니다. 그는 의사나 실험실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환자 기록과 전 세계 문헌을 집요하게 추적했습니다. 콜리의 독소를 받은 암 환자들, 자연 감염 뒤 종양이 줄어든 환자들, 반응한 사례와 실패한 사례를 모아 하나의 자료군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작업의 의미는 단순한 가족사의 복원이 아니었습니다. 주류 의학이 “재현성 없는 오래된 치료”로 밀어낸 기록을 다시 검토 가능한 형태로 붙잡아 둔 것입니다. 암면역치료라는 분야가 아직 이름도 제대로 얻지 못했던 시기에, Nauts는 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CRI를 병원이나 대학의 한 연구실처럼 생각하면 조금 헷갈립니다. CRI는 환자를 직접 보는 병원도, 연구자들이 모두 한 건물에 출근하는 단일 연구소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암면역학이라는 아직 주변부에 있던 분야를 붙잡고, 연구비와 학술 네트워크와 과학적 방향을 만들어 주는 조직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CRI의 역사는 조금 독특합니다. Helen Coley Nauts가 아버지의 기록을 지켜 낸 사람이었다면, CRI는 그 기록이 단순한 가족사의 추억으로 끝나지 않도록 만든 그릇이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이 그릇 안에서 중요한 과학적 얼굴이 된 사람이 Lloyd Old였습니다.
BCG: 세균 자극은 방광 안에서 살아남았다
콜리의 독소처럼 전신에 강한 염증을 일으키는 치료는 위험했습니다. 그러나 “세균 자극으로 암 주변 면역 반응을 깨운다”는 생각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BCG입니다.
BCG는 본래 결핵 예방을 위해 개발된 약독화 우결핵균 백신입니다. 하지만 면역학자들은 BCG가 강한 선천면역 자극을 일으킨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BCG를 암 면역치료의 보조 자극으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그중 가장 오래 살아남은 임상적 성공은 비근육침윤성 방광암에서의 방광내 BCG 주입요법입니다. 방광암을 절제한 뒤 BCG를 방광 안에 직접 주입하면, 방광 점막에서 국소 염증과 면역 반응이 유도되고 재발 위험을 낮출 수 있습니다.
이 치료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콜리의 독소가 전신 염증의 위험 때문에 밀려났다면, BCG 방광내 치료는 그 아이디어를 국소 면역 자극으로 바꾸어 임상 표준으로 살아남은 사례입니다. 세균이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방광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면역계를 불러들이고 종양 환경을 바꾸는 치료가 된 것입니다.
방광암에서 BCG 치료를 임상적으로 정착시킨 축은 Morales, Eidinger, Bruce 등의 연구로 이어지는 흐름이었습니다. 그와 나란히, 세균 자극이 숙주 안에서 어떤 항종양 반응을 만들어내는지를 실험실에서 해부하던 흐름도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Lloyd Old가 이끈 종양면역학 연구팀이 있었습니다.
Lloyd Old: 콜리의 현상을 실험실 언어로 바꾸다
Lloyd Old는 Memorial Sloan-Kettering을 기반으로 활동한 종양면역학자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CRI의 founding scientific and medical director로서, 암면역학이라는 아직 불안정하고 주변적인 분야에 과학적 방향을 잡아 주었습니다. MSK의 실험실과 CRI의 연구 네트워크가 그의 주변에서 겹치면서, 콜리 이후 흩어져 있던 질문들은 더 현대적인 실험 과제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Nauts가 콜리의 임상 기록을 붙잡아 두었다면, Old는 그 기록이 던진 질문을 실험실의 언어로 다시 번역했습니다. 감염 뒤 종양이 줄어드는 현상을 일화나 기적담으로 남겨두지 않고, 어떤 세포가 반응하고 어떤 물질이 만들어지며 그 물질이 종양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1970년대의 Old 연구팀은 오래된 질문을 다시 붙잡았습니다. 세균 성분을 투여했을 때 종양이 괴사하는 현상은 세균이 직접 종양을 독살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숙주가 어떤 물질을 만들어냈기 때문일까요?
1975년 Elizabeth Carswell, Lloyd Old, Robert Kassel, Saul Green, Nancy Fiore, Barbara Williamson이 발표한 논문은 이 질문에 결정적인 틀을 제공했습니다. 연구진은 먼저 마우스에 BCG를 투여해 면역계를 준비시킨 뒤, LPS를 주사했습니다. 그러자 혈청 안에 종양을 괴사시키는 활성이 나타났습니다. 이 혈청을 종양을 가진 다른 마우스에 주입하면 종양 내부에 출혈성 괴사가 유도되었습니다.
연구팀은 이 활성을 tumor necrosis factor, 즉 TNF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은 “Lloyd Old가 혼자 TNF를 발견했다”기보다, Carswell과 Old를 포함한 MSK 연구팀이 TNF라는 현상과 이름을 제시한 순간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순간 콜리의 오래된 관찰은 새로운 언어를 얻었습니다. 감염이나 세균 독소가 종양을 흔드는 것은 단순한 “독성”이 아니라, 숙주가 만들어내는 가용성 면역 인자의 작용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때의 TNF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분자적으로 정제되고 클로닝된 TNF-alpha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종양 괴사를 일으키는 혈청 속 인자”였고, 이후 분자생물학과 사이토카인 연구를 거치며 현대적 의미의 TNF로 자리 잡았습니다.
TNF: 항암 독소에서 염증 사이토카인으로
처음 TNF라는 이름은 매우 매력적으로 들렸습니다. 종양을 괴사시키는 인자라니, 암 치료제가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재조합 TNF가 만들어진 뒤에는 이를 항암제로 사용하려는 시도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TNF의 본질은 훨씬 복잡했습니다. 1985년 Bruce Beutler와 Anthony Cerami 계열의 연구는, 악액질(cachexia)을 유발한다고 여겨진 대식세포 유래 인자 cachectin이 TNF와 같은 분자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TNF는 종양만을 겨냥하는 특이 독소가 아니라, 전신 염증과 대사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사이토카인이었습니다.
이것은 암 치료의 기대를 꺾은 동시에, 면역학을 한 단계 앞으로 밀어냈습니다. TNF는 종양을 죽일 수 있지만, 같은 힘으로 혈압 저하, 쇼크, 전신 염증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신 TNF 치료는 독성 때문에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TNF 연구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연구는 사이토카인은 약한 보조 신호가 아니라, 몸 전체의 생리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조절자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암면역치료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더 신중해집니다. 면역계를 깨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디서, 얼마나, 어떤 맥락에서 깨울 것인가가 중요해집니다.
하나의 서사로 보면
콜리의 독소, BCG 방광암 치료, TNF의 보고는 서로 다른 시대의 사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질문으로 묶을 수 있습니다.
암은 면역계가 만들어내는 염증과 신호에 의해 통제될 수 있는가?
콜리는 이 질문을 환자에게서 보았습니다. Helen Coley Nauts는 그 질문이 잊히지 않도록 기록으로 붙잡았습니다. BCG 방광내 치료는 세균 자극을 위험한 전신 반응이 아니라 국소 면역치료로 바꾸어 살아남았습니다. Carswell과 Old 연구팀의 TNF 연구는 그 현상 뒤에 숙주가 만드는 분자 신호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현대 면역관문억제제와 세포치료는 훨씬 정밀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같은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면역계는 암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은 너무 약하면 효과가 없고, 너무 강하면 환자를 해칠 수 있습니다.
암면역치료의 역사는 그래서 단순한 승리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염증을 치료로 바꾸기 위해, 위험한 반응을 조절 가능한 신호로 번역해 온 역사입니다.
이 서사를 이루는 고전 논문들
이 글은 아래 고전 논문 해설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읽기 위한 길잡이입니다. 콜리의 독소에서 시작해, 능동면역치료와 BCG의 임상적 생존, TNF의 보고와 cachectin 동일성까지 따라가면 암면역치료가 어떻게 “감염의 관찰”에서 “조절 가능한 면역 신호”의 언어로 옮겨 왔는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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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ey WB. The Treatment of Malignant Tumors by Repeated Inoculations of Erysipelas. American Journal of the Medical Sciences. 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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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uts HC, Fowler GA, Bogatko FH. A Review of the Influence of Bacterial Infection and of Bacterial Products (Coley's Toxins) on Malignant Tumors in Man. Acta Medica Scandinavica.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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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cer Research Institute. CRI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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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ales A, Eidinger D, Bruce AW. Intracavitary Bacillus Calmette-Guerin in the treatment of superficial bladder tumors. Journal of Urology.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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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well EA, Old LJ, Kassel RL, Green S, Fiore N, Williamson B. An endotoxin-induced serum factor that causes necrosis of tumor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975;72(9):3666-3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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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utler B, Greenwald D, Hulmes JD, et al. Identity of tumour necrosis factor and the macrophage-secreted factor cachectin. Nature. 1985;316:552-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