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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F와 캐케틴은 같은 분자였다: 사이토카인을 ‘독소’에서 ‘호르몬’으로 바꾼 1985년

발행: 2026-01-02 · 최종 업데이트: 2026-01-03

1985년 Nature에 발표된 논문은 종양괴사인자(TNF)와 대식세포 유래 캐케틴(cachectin)이 동일한 분자임을 증명하며, 사이토카인을 단순한 항암 독소가 아닌 전신 생리 조절자로 재정의하는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었다.

Identity of tumor necrosis factor and the macrophage-secreted factor cachectin
Bruce Beutler, Greenwald, Homer, Chang, Pan, Mathison, Richard J. Ulevitch, Anthony Cerami · Nature · 1985
대식세포에서 분비되어 악액질(cachexia)을 유발한다고 여겨졌던 캐케틴(cachectin)이 종양괴사인자(TNF)와 동일한 분자임을 생화학적 정제, 생물학적 활성 분석, 아미노산 조성 및 N말단 서열 비교를 통해 증명함으로써, TNF를 단순한 항암 독소가 아닌 전신 염증·대사 조절 사이토카인으로 재정의한 고전 논문.

사이토카인 이야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논문

사이토카인 연구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떤 논문들은 단순히 “새로운 분자를 발견했다”는 수준을 넘어, 사이토카인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 버린 전환점으로 작용합니다.
1985년 8월 Nature에 발표된 이 논문은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이 논문 이전까지 tumor necrosis factor(TNF, 종양괴사인자)는 이름 그대로, “종양을 괴사시키는 특별한 독성 물질”이라는 이미지로 이해되고 있었습니다. 반면, cachectin(캐케틴)은 만성 감염이나 암 환자에서 관찰되는 악액질(cachexia), 즉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말라가고 쇠약해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대식세포(macrophage) 유래의 대사 교란 인자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이 논문이 던진 질문은 단순하지만 파괴적이었습니다.

“혹시 TNF와 캐케틴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같은 분자가 아닌가?”

두 개의 서로 다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연구

이 이야기는 두 연구 흐름이 교차하면서 시작됩니다.

한 축에는 뉴욕 Rockefeller UniversityAnthony Cerami연구실이 있었습니다. Cerami는 아프리카에서의 연구 경험과, 만성 감염 환자들이 점점 쇠약해지는 모습을 직접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악액질은 단순한 영양 결핍이 아니라, 어떤 분자적 신호에 의해 유도되는 능동적 과정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만성 감염 동물 모델에서, 몸은 마르고 있는데 혈중 중성지방(triglyceride)은 오히려 높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을 발견합니다. 이를 추적한 결과, 지방세포 표면의 지단백질분해효소(lipoprotein lipase, LPL) 활성이 억제되어 혈중 지방이 조직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LPS로 활성화된 대식세포가 분비하는 어떤 인자라는 점까지 도달합니다.

이 인자가 바로 cachectin이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악액질(cachexia)을 유발하는 물질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한 축에는 뉴욕의 또 다른 연구 중심지인 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Lloyd Old그룹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LPS를 생쥐에 주사했을 때 혈중에 생성되는 인자가 이식된 종양을 급격히 괴사시키는 현상을 발견하고, 그 물질을 tumor necrosis factor(TNF)라고 명명했습니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두 그룹 모두 LPS–대식세포–전신 효과라는 공통 경로를 보고 있었습니다.

“같은 물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Rockefeller의 Cerami 연구실에서 포스트닥으로 일하던 Bruce Beutler는 캐케틴을 정제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우리가 정제하고 있는 이 캐케틴이, Sloan Kettering에서 말하는 TNF 활성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시험해 보자.”

당시 TNF의 표준 in vitro 분석법은 L929라는 생쥐 섬유아세포 세포주에서의 세포독성(cytotoxicity) 시험이었습니다. Beutler와 Cerami는 Lloyd Old 그룹이 사용하던 이 방법을 그대로 적용해, 정제 중인 캐케틴을 L929 세포에 처리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명확했습니다. 정제된 캐케틴은 강력한 TNF 활성, 즉 L929 세포 사멸을 유도했습니다.

이 순간, 논문의 핵심 질문이 확정됩니다.

“캐케틴과 TNF의 동일성(identity)을 분자 수준에서 증명하자.”

정제와 분석: 생화학의 정공법

이 논문은 당시로서는 매우 정통적인, 그러나 극도로 치밀한 생화학적 정제 전략을 따릅니다.

  • RAW 계열 마우스 대식세포를 LPS로 활성화

  • 배양 상층액을 대량으로 모아 농축

  • 비이온성 계면활성제를 사용해 단백질 손실 방지

  • 음이온 교환 크로마토그래피

  • 겔 여과 크로마토그래피

  • 역상 HPLC

각 단계마다,

  • 3T3-L1 지방세포에서의 LPL 활성 억제로 캐케틴 활성을 측정하고

  • 동시에 L929 세포독성 시험으로 TNF 활성을 평가했습니다.

이 두 가지 생물학적 분석법이 정제 단계마다 완전히 겹치는 분획에서 나타난다는 점이 핵심이었습니다.

결정적 증거: 아미노산과 서열

정제의 마지막 단계에서, 연구진은 캐케틴 단백질의 아미노산 조성, N말단 아미노산 서열을 분석합니다.

그 결과는 더 이상 해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 마우스 캐케틴의 아미노산 조성은

  • 이미 알려져 있던 사람 TNF의 조성과 거의 완벽히 일치했고

  • N말단 서열 역시 상당 부분이 동일했습니다.

이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 논문은 단호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대식세포 유래 캐케틴은 종양괴사인자 TNF와 동일한 분자이다.

이 논문이 바꿔 놓은 관점

이 결론의 파장은 단순한 명명 문제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TNF는 더 이상 “종양을 죽이는 특이적 독소”가 아니라 정상 세포의 수용체에 결합하여 대사·염증·생리를 조절하는 사이토카인으로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Cerami와 Beutler는 이미, 방사성 표지 캐케틴이 정상 세포, 특히 간세포 표면의 특이적 수용체에 결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는 TNF가 독소(toxin)가 아니라, 호르몬과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신호 분자임을 의미했습니다.

항암제로서의 TNF, 그리고 좌절

이 논문 이후, 재조합 TNF 단백질이 대량 생산되면서 TNF를 항암제로 사용하려는 임상시험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결과는 냉혹했습니다.

용량을 조금만 올려도, 혈압 급강하, 전신 혈관 확장, 쇼크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TNF 항암요법은 사실상 중단됩니다.

하지만 이 실패는, TNF가 전신 염증과 패혈쇼크의 핵심 매개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습니다.

사이토카인의 본질을 드러낸 논문

이 1985년 논문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이것입니다.

사이토카인은 강력한 생리 조절자이며, 균형이 깨질 경우 생명을 위협하는 병리의 원인이 된다.

TNF는 이후

  • interleukin-1

  • interleukin-6

와 함께, 대표적인 전염증성(pro-inflammatory) 사이토카인으로 자리 잡았고, 패혈쇼크와 사이토카인 폭풍이라는 개념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이 논문은 단순히 “TNF와 캐케틴이 같다”는 사실을 보여준 연구가 아니라, 사이토카인을 독소에서 호르몬으로 재정의한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