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F는 어떻게 쇼크의 원인이 되었는가: 캐케틴 논문이 바꾼 염증의 패러다임
발행: 2026-01-04 · 최종 업데이트: 2026-01-04
1986년 Science에 발표된 캐케틴(TNF) 논문을 통해, 패혈성 쇼크의 원인이 세균이 아닌 숙주 면역계라는 개념이 어떻게 확립되었는지를 정리합니다.
이 연구는 록펠러 대학과 코넬 메디컬 스쿨의 협업으로 수행되었고, 특히 Kevin Tracey가 논문에 포함된 대부분의 생체 실험을 직접 수행했습니다.
캐케틴이라는 이름의 출발점
이야기는 ‘캐케틴(cachectin)’이라는 다소 낯선 이름에서 시작됩니다. 캐케틴은 처음부터 종양이나 쇼크를 염두에 두고 발견된 분자가 아니었습니다. Cerami는 젊은 시절 아프리카에서 연구 펠로우로 일하며, 만성 감염 환자들이 극도로 마르고 쇠약해진 상태, 즉 악액질(카켁시아,cachexia)에 빠져 있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게 됩니다. 그는 단순한 영양 결핍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현상에 의문을 품었고, 결국 “몸 안에서 체중 소모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어떤 물질이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도달합니다.
이 질문은 실험실로 이어졌습니다. Cerami와 동료들은 실험동물에 LPS(lipopolysaccharide), 즉 세균의 내독소를 주입했을 때, 환자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전신 쇠약, 발열, 쇼크, 체중 감소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 현상을 매개하는 물질을 추적한 끝에, 대식세포가 분비하는 하나의 단백질을 분리해 냅니다. 그것이 바로 캐케틴이었습니다. 이후 이 분자가 이미 알려져 있던 TNF(tumor necrosis factor)와 동일한 분자라는 사실도 밝혀집니다.
쇼크의 원인은 세균이 아니라 숙주였다
이 논문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 때문에 오히려 기존의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쇼크의 직접 원인은 세균의 LPS가 아니라, LPS에 자극된 숙주 면역세포가 만들어내는 캐케틴, 즉 TNF라는 주장입니다. 이전까지는 LPS 자체가 ‘독소’이며, 이 독소가 쇼크와 사망을 유발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는 LPS를 단지 방아쇠로 위치시키고, 실제로 장기 손상과 쇼크를 일으키는 주범은 숙주가 스스로 만들어낸 TNF라고 선언합니다. 말하자면, 패혈증의 진짜 독소는 세균이 아니라 우리 몸이 만든 물질이라는 관점의 전환이었습니다.
LPS 감수성 마우스가 알려준 결정적 단서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LPS에 대한 마우스 계통 간 반응 차이였습니다. C3H/HeJ 마우스는 LPS에 저항성을 보여 쉽게 죽지 않는 반면, C3H/HeN 마우스는 동일한 양의 LPS에도 치명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이미 알려져 있던 사실은, 이 차이가 대식세포를 포함한 조혈계 세포의 반응성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생사를 가르는 것은 LPS 자체가 아니라, LPS에 반응하는 대식세포의 성질이었습니다.
Cerami와 Beutler는 캐케틴이 바로 이 대식세포에서 분비되는 단백질이며, 특정 수용체를 통해 작용하는 ‘호르몬과 같은 물질’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때부터 TNF는 단순한 염증 매개체가 아니라, 전신 생리를 조절하는 물질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재조합 TNF를 이용한 정공법 실험
논문에서 사용된 TNF는 카이론(Chiron)에서 생산한 재조합 인간 TNF였습니다. 이 단백질은 효모에서 발현되었고, 전체 분비 단백질의 상당 부분이 TNF가 되도록 설계되어 대량 생산이 가능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대장균에서 발현했을 때 피할 수 없는 LPS 오염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는 점입니다. Beutler가 이미 확립해 두었던 정제 방법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SDS-PAGE에서 단일 밴드로 확인되는 고순도 TNF가 확보되었습니다.
TNF 단독 투여로 재현된 패혈성 쇼크
이렇게 준비된 TNF를 이용해 연구팀은 결정적인 실험을 수행합니다. Sprague–Dawley 랫드에 TNF를 정맥 주입하고, 용량에 따른 생존율을 관찰한 것입니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명확했습니다. 저용량에서는 모두 생존했지만, 용량이 증가할수록 생존율은 급격히 떨어졌고, 고용량에서는 모든 동물이 전형적인 패혈성 쇼크 양상을 보이며 사망했습니다. 더 이상 LPS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TNF 단독 투여만으로 쇼크가 재현된 것입니다.
항-TNF 항체가 보여준 명확한 인과관계
그리고 이 실험의 진짜 결정타는 이어진 항체 실험이었습니다. 동물에게 항-TNF 단일클론 항체를 먼저 투여한 뒤, 치명적인 용량의 TNF를 주입했을 때, 모든 동물이 살아남았습니다. 쇼크도, 장기 손상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한 장면으로, 쇼크의 인과 관계는 완전히 재정의되었습니다. TNF는 단순한 연관 물질이 아니라, 쇼크와 장기 손상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TNF가 만들어낸 장기 손상의 실체
연구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TNF가 유발하는 장기 손상을 육안과 조직학적 수준에서 모두 확인합니다. TNF를 투여한 지 몇 시간 만에 적출한 장은 전체가 출혈성 괴사를 보였고, 이는 패혈성 쇼크 환자에서 관찰되는 전형적인 ‘쇼크 장’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폐에서는 폐포 공간이 염증세포와 출혈로 가득 차 있었고, 이는 오늘날 우리가 ARDS, 즉 쇼크 폐라고 부르는 병리 소견과 동일했습니다. 신장에서는 급성 세뇨관 괴사가 관찰되었고, 이는 패혈증에서 흔히 보이는 급성 신부전의 병리학적 근거였습니다. 단 하나의 내인성 단백질이, 전신의 주요 장기를 동시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명확히 입증된 순간이었습니다.
TNF는 독이 아니라 전신 조절자였다
논문의 토론 부분에서 저자들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의학 역사상, 단 하나의 숙주 유래 단백질이 전신 쇼크와 다발성 장기 부전, 그리고 사망을 유발할 수 있음이 입증된 것은 이 연구가 처음이라는 점입니다. TNF는 특정 수용체를 통해 작용하며, 그 수용체가 거의 모든 세포에 존재하기 때문에 전신적 효과를 피할 수 없습니다. TNF는 독이 아니라, 호르몬처럼 작동하는 전신 조절자라는 개념이 여기서 확립됩니다.
TNF, IL-1, IL-6로 이어지는 염증의 정점
이후 연구들은 TNF가 염증 반응의 정점에 서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TNF가 대식세포를 자극하면 IL-1이 분비되고, IL-1은 다시 T 세포를 자극해 IL-2와 IL-6 분비로 이어집니다. 이른바 사이토카인 폭풍의 연쇄 반응입니다. 그래서 TNF, IL-1, IL-6은 지금도 주요 프로염증 사이토카인의 ‘삼두체’로 불립니다.
실패한 패혈증 치료, 성공한 만성 염증 치료
흥미로운 점은, 항-TNF 치료가 급성 패혈증에서는 실패했지만, 만성 염증 질환에서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류마티스 관절염, 크론병, 건선과 같은 질환에서 항-TNF 치료제는 현대 면역치료의 상징이 됩니다. 급성과 만성, 시간 축의 차이가 치료 성패를 가른 셈입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반복된다
오늘날 우리는 COVID-19, 고용량 IL-2 면역치료, CAR-T 치료 부작용에서 나타나는 사이토카인 폭풍을 새로운 현상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 논문을 읽고 나면, 이 모든 병태생리가 이미 1986년에 거의 완성된 형태로 제시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름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논문이 고전으로 남은 이유
이 논문은 단순히 TNF라는 분자를 발견한 연구가 아닙니다. 쇼크를 바라보는 시선, 염증을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몸이 스스로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제시한 역사적 문서입니다.
관련 문헌
- Tracey, K. J., Beutler, B., Lowry, S. F., Merryweather, J., Wolpe, S., Milsark, I. W., ... & Cerami, A. (1986). Shock and tissue injury induced by recombinant human cachectin. Science, 234(4775), 470-474. 문헌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