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루킨-1 유전자 클로닝: 염증 사이토카인의 분자적 실체가 드러나다. 그리고 IL-1 스캔들 이야기
발행: 2026-01-04 · 최종 업데이트: 2026-01-04
1984년 PNAS에 발표된 IL-1 cDNA 클로닝 논문을 중심으로, 내인성 발열물질 연구가 분자면역학으로 전환된 역사적 순간을 정리합니다.
발열이라는 임상 현상에서 출발한 질문
인터루킨-1(interleukin-1, IL-1)의 역사는 화려한 분자생물학 실험실이 아니라, 임상에서 너무도 흔한 증상인 ‘발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논문의 교신저자인 Charles Dinarello는 레지던트 시절부터 발열 환자를 보며 한 가지 질문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몸 안에서 무엇이 체온을 올리는가?”
당시 발열을 연구하는 표준적인 방법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원시적이었습니다. 의심되는 물질을 토끼에 주사한 뒤 직장 체온을 연속적으로 측정해, 전형적인 발열 곡선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악해 보이는 방법 덕분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분명해졌습니다.
백혈구를 LPS(lipopolysaccharide)로 자극하면, 어떤 강력한 발열 유도 물질이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이 물질은 외부 독소가 아니라 숙주 세포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이를 내인성 발열물질(endogenous pyrogen)이라 불렀습니다.
내인성 발열물질과 림프구 활성 인자의 수상한 동행
문제는 이 물질의 정체였습니다. 호중구인지, 단구/대식세포인지, 림프구인지—어떤 세포가 만드는지도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1970년대 초 등장한 개념이 하나 더해집니다. 바로 LAF(Lymphocyte Activating Factor, 림프구 활성 인자)입니다. 이는 대식세포 유래 물질이 T 세포의 증식을 강하게 보조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개념이었습니다.
Dinarello가 수년간 정제 실험을 반복하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관찰이 축적됩니다.
내인성 발열 활성과 LAF 활성이 정제 과정에서 항상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우리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여러 생물학적 활성들이, 사실은 하나의 분자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되었습니다.
‘정공법’ 단백질 정제의 한계
Dinarello는 이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 했습니다. 말초혈액 단핵세포에서 얻은 상등액을,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젤 여과 컬럼에 부어가며 분획을 하나하나 토끼 발열 시험으로 측정했습니다.
이 방식은 이론적으로는 옳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사이토카인은 10⁻¹¹ M 수준의 극미량으로도 강력한 생물학적 효과를 냅니다. 즉, 바이오어세이에서는 분명히 활성이 보이는데, 실제로 정제할 수 있는 단백질의 양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연구자들 스스로도 훗날 이 시기를 돌아보며 “우리는 그냥 바퀴만 헛돌리고 있었다(spinning your wheels)”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전략 전환: 단백질 대신 유전자를 잡다
이 논문의 진정한 전환점은 여기에서 나옵니다.
“단백질을 끝까지 정제하는 대신, 유전자를 클로닝하자.”다행히 Dinarello 연구팀은 이미 두 가지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IL-1 활성을 중화할 수 있는 항-IL-1 항체 둘째, IL-1/LAF 활성을 정량할 수 있는 민감한 바이오어세이
이 두 도구를 발판 삼아, 연구팀은 본격적인 유전자 클로닝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인간 단구에서 mRNA를 얻다
이 연구가 특히 인상적인 이유 중 하나는, 마우스가 아닌 인간 단구/대식세포를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임상의였던 Dinarello는 처음부터 인간 질환과 직접 연결되는 결과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LPS로 자극한 인간 단구에서 총 RNA를 추출한 뒤, poly-A tail을 이용해 mRNA만 선택적으로 농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mRNA는 전체 RNA의 약 5%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이렇게 얻은 poly-A RNA가, 이후 모든 실험의 출발점이 됩니다.
세포 없는 번역 시스템의 위력
연구팀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번역 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는 토끼 망상적혈구 용해액(reticulocyte lysate) 시스템이었고, 다른 하나는 Xenopus(아프리카 발톱개구리) 난자(oocyte) 시스템이었습니다.
특히 Xenopus 난자 시스템은, mRNA를 직접 주입한 뒤 분비된 단백질의 생물학적 활성을 바로 측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IL-1 활성 측정에는 기존보다 훨씬 민감한 IL-2 의존성 T 세포 클론 기반 바이오어세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기술 덕분에, 극미량의 IL-1 활성도 정량적으로 검출할 수 있었습니다.
IL-1 전구체의 정체가 드러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확보된 cDNA는 약 1,500 염기쌍길이였고, 269 아미노산, 약 30 kDa 단백질을 암호화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기존에 예상되던 약 15 kDa 크기의 IL-1과 맞지 않는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연구팀은 이를 전구체(pre-IL-1)로 해석했습니다.
즉, 세포 내에서 먼저 큰 단백질로 합성된 뒤, 프로세싱을 거쳐 절반 크기의 활성형 IL-1이 만들어진다는 개념입니다.
신호 서열이 없다는 불편한 진실
이 논문에서 가장 도발적인 발견 중 하나는, 이 IL-1 전구체에 전형적인 신호 서열(signal peptide)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는 IL-1이 우리가 알고 있던 분비 단백질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연구팀은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합니다.
IL-1은 정상적인 분비 경로가 아니라, 세포 손상이나 죽음과 연관되어 방출될 수 있다.
당시에는 상당히 불편하고 논쟁적인 해석이었지만, 이후 IL-1β의 비고전적 분비 경로는 반복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IL-1, IL-6, TNF로 이어지는 염증의 핵심 축
이 논문 이후, IL-1은 IL-6, TNF(종양괴사인자)와 함께 주요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 세 분자는 패혈증, 사이토카인 폭풍, 면역치료 부작용 등 현대 의학에서 가장 위험한 염증 반응의 분자적 기반을 형성합니다.
과학, 우선권, 그리고 특허의 시대
이 논문의 뒷이야기는 1980년대 생명공학 시대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Nature 리젝, 경쟁 연구 그룹과의 충돌, IL-1α와 IL-1β 명명 문제, 그리고 특허 분쟁까지—
이 모든 과정은 과학이 순수한 진리 탐구이면서 동시에 치열한 경쟁의 장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IL-1 스캔들, IL-1이라는 이름에 이르기까지
― 염증의 성배를 둘러싼 집착, 경쟁, 그리고 스캔들
앞서 언급했듯이, IL-1 관련해서는 스캔들이 있습니다.
우선 첫번째 주자는 보스턴의 Tufts와 MIT 연구자들이 협력한 Auron–Dinarello 팀입니다. 이들은 인간 단핵구를 LPS로 강하게 자극해 IL-1을 최대한 만들어내는 조건을 설정했고, 그 세포들에서 poly-A mRNA를 직접 추출했습니다. 그리고 세포 없는 번역 시스템과 항-IL-1 항체를 이용해, 그 mRNA가 정말로 문제의 물질을 만들어내는지를 하나하나 검증했습니다.
1984년, 이 노력은 결실을 맺습니다.
이들은 약 269개 아미노산, 30 kDa 남짓한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cDNA를 보고했고, 이것이 바로 인간 IL-1 전구체임을 주장했습니다. 이 논문은 PNAS에 실렸고, 훗날 인간 IL-1β 전구체 cDNA를 최초로 클로닝한 논문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순간, 이미 또 다른 주자가 같은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미국 서부, 시애틀의 생명공학 회사 Immunex입니다.
이 회사에는 IL-2 연구로 명성을 얻은 Steve Gillis와, 사업적 감각이 뛰어난 Chris Henney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IL-1을 단순한 학문적 발견이 아니라, 미래의 치료제와 특허로 이어질 핵심 자산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Immunex 팀은 곧 더 큰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IL-1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1985년 Nature에 발표된 이들의 논문은 두 개의 서로 다른 IL-1 cDNA를 제시하며, 이를 IL-1α와 IL-1β로 구분했습니다. 이 명명법은 이후 교과서에 그대로 자리 잡았고, IL-1 연구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과학이 순조롭게 진보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긴장이 끓고 있었습니다.
Auron–Dinarello 팀은 사실 Immunex보다 먼저 Nature에 논문을 투고했습니다. 문제는 그 논문의 심사자 중 한 명이, 바로 IL-1을 두고 경쟁 중이던 Gillis였다는 점입니다. 그는 심사 의견에서 “이 서열이 진짜 IL-1인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코멘트를 남겼고, Nature는 결국 논문을 거절합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이해충돌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기준이 지금만큼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갈등은 학회장에서 폭발합니다. 1984년 독일 Schloss Elmau에서 열린 회의에서, Auron이 자신들의 IL-1 cDNA 서열을 발표하자마자, 청중석에 있던 이뮤넥스의 Henney가 벌떡 일어나 공개적으로 말합니다.
“저 서열은 IL-1이 아닙니다.”
그 순간은 이후 여러 연구자들의 회고 속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장면이 됩니다. 학문적 토론이라기보다, 경쟁과 이해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일련의 사건을 “IL-1 스캔들”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태는 특허 단계에서 더욱 복잡해집니다. Auron 논문에 실린 초기 서열에는 몇 개의 염기 오류가 있었고, 이는 나중에 수정됩니다. 그런데 훗날 공개된 Immunex의 특허 문서에서, 같은 오류가 그대로 발견됩니다. 이는 이뮤넥스가 copy했다는 의심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두 그룹 사이의 긴장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결국 양측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특허를 확보하며, 법적으로는 모두 ‘승자’가 되는 기묘한 결말에 이릅니다.
이 사건을 돌아보면, 과학적 결론 자체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IL-1β 전구체 cDNA를 가장 먼저 보고한 것은 Auron과 Dinarello였고, IL-1α/β라는 이원 구조와 명명 체계를 확립한 것은 Immunex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과학사에 남긴 인상은 데이터보다도 다른 데 있습니다.
경쟁자가 익명 심사자로 참여했던 일, 학회장에서의 공개적인 공격, 특허 문서에 남은 흔적들. 이 모든 것은 1980년대 이후 생명과학이 어떻게 학문과 산업, 명성과 자본의 교차점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IL-1은 TNF, IL-6와 함께 염증 반응의 핵심 분자로 자리 잡았고, 이를 억제하는 약물들은 실제 환자 치료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자 뒤편에는, 발열의 정체를 밝히려던 집요한 임상의의 질문과, 그 질문을 둘러싸고 벌어진 인간적인 경쟁과 갈등의 이야기가 함께 남아 있습니다.
과학은 늘 데이터로 기록되지만, 그 데이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언제나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IL-1의 역사는 그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관련 논문
- Auron, Philip E., et al. "Nucleotide sequence of human monocyte interleukin 1 precursor cDNA."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81.24 (1984): 7907-7911. 논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