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스테롤 가설에 생물학적 기전이 생기다
콜레스테롤 연구의 초기 역사는 혼란스러웠습니다. 1913년 아니치코프의 토끼 실험은 콜레스테롤과 동맥경화의 관계를 제시했지만,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후 식이요법 연구도 일관된 결론을 주지 못했고, 클로피브레이트(clofibrate) 같은 초기 약물은 관상동맥질환을 줄이면서도 전체 사망률을 증가시키는 예상 밖의 결과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1984년 지질연구클리닉 관상동맥 1차예방시험(Lipid Research Clinics Coronary Primary Prevention Trial, LRC-CPPT)에서는 콜레스티라민(cholestyramine)으로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자 관상동맥질환이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경계선에 있었고 전체 사망률 감소도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즉 1980년대 초까지의 문제는 분명했습니다.
혈중 콜레스테롤이 심장병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점점 확실해졌지만, 왜 그런지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과 이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방법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을 바꾼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LDL 수용체(LDL receptor)의 발견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틴(statin)의 발견입니다.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이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과 조지프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은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familial hypercholesterolemia)을 연구했습니다. 이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매우 높은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보이고 젊은 나이에도 심한 죽상경화와 관상동맥질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식습관의 차이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LDL이 높고 심혈관질환 위험도 컸기 때문에, 이 질환은 콜레스테롤 연구에서 중요한 자연실험과도 같았습니다.
브라운과 골드스타인은 이 문제를 세포 수준에서 연구해 LDL이 세포 안으로 들어갈 때 특정한 수용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바로 LDL 수용체입니다. 페데르센(Pedersen)은 이 발견을 스타틴의 개발과 함께 콜레스테롤 연구의 결정적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합니다. LDL 수용체의 발견과 콜레스테롤 대사 조절에 관한 연구로 브라운과 골드스타인은 198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LDL은 단순히 혈액 속에 떠다니는 지방이 아니었습니다
LDL 수용체의 발견은 LDL 콜레스테롤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전에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 혈액에 콜레스테롤이 많아졌다고 비교적 단순하게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LDL 수용체가 발견되면서 혈중 LDL 농도는 단순한 섭취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혈중 LDL은 얼마나 만들어지는가와 얼마나 제거되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특히 간은 LDL 수용체를 통해 혈액 속 LDL 입자(LDL particle)를 제거하는 핵심 기관입니다. LDL 수용체가 충분히 기능하지 않으면 혈액 속 LDL이 오래 남아 농도가 높아지며,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에서는 바로 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 발견은 콜레스테롤을 단순한 영양 문제에서 세포와 수용체가 조절하는 대사 문제로 바꾸었습니다.
세포는 콜레스테롤을 스스로 조절합니다
LDL 수용체 연구는 더 큰 생리학적 체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세포는 세포막을 만들고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합성하는 등 여러 과정에 콜레스테롤을 사용하지만, 너무 많은 콜레스테롤은 세포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포는 콜레스테롤 합성과 LDL 수용체를 통한 외부 콜레스테롤 흡수를 서로 조절합니다.
세포 내부의 콜레스테롤이 부족하면 LDL 수용체가 증가해 외부에서 LDL을 더 많이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세포 내 콜레스테롤이 충분하면 자체 합성을 줄이고 LDL 수용체도 감소시킵니다. 이 조절 시스템을 이해하면서 중요한 치료 아이디어가 생겨납니다.
간세포가 콜레스테롤을 적게 만들게 하면 어떻게 될까?
간세포 내부의 콜레스테롤이 줄어들면 이를 보충하기 위해 LDL 수용체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혈액 속 LDL을 더 많이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을 현실로 만든 약물이 스타틴입니다.
스타틴의 출발점은 일본의 발효 연구였습니다
스타틴의 역사는 독특합니다. 일본의 생화학자 엔도 아키라(Akira Endo)는 콜레스테롤 합성경로의 핵심 효소인 HMG-CoA 환원효소를 억제할 수 있는 물질을 미생물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미생물이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다른 생물의 스테롤(sterol) 합성을 방해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엔도는 산쿄(Sankyo)의 발효연구소(Fermentation Research Laboratories)에서 약 2년 동안 6,000개의 발효액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HMG-CoA 환원효소를 억제하는 물질을 발견했으며, 이 물질은 ML-236B, 이후 메바스타틴(mevastatin)이라고 불렸습니다.
1978년에는 메바스타틴이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에서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콜레스테롤 합성경로의 특정 효소를 선택적으로 억제해 혈중 콜레스테롤을 강력하게 낮출 수 있는 약물이 등장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머크도 같은 물질을 찾고 있었습니다
엔도의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머크(Merck) 역시 비슷한 물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머크는 토양 곰팡이인 *아스페르길루스 테레우스(Aspergillus terreus)*에서 HMG-CoA 환원효소를 억제하는 물질을 발견해 메비놀린(mevinolin)이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엔도는 *모나스쿠스 루버(Monascus ruber)*에서 모나콜린 K(monacolin K)를 발견했습니다.
이후 모나콜린 K와 메비놀린이 사실상 같은 분자라는 것이 밝혀졌고, 메비놀린은 훗날 로바스타틴(lovastati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집니다.
서로 다른 연구진이 서로 다른 곰팡이에서 비슷한 HMG-CoA 환원효소 억제제(HMG-CoA reductase inhibitor)를 찾아냈다는 점은 스타틴 역사의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이는 이런 물질이 우연히 한 번 발견된 특이한 화합물이 아니라, 자연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하나의 생물학적 전략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스타틴 개발은 한 번 중단될 뻔했습니다
스타틴 개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산쿄는 메바스타틴의 동물실험에서 심각한 부작용 가능성을 발견하고 개발을 중단했습니다. 머크 역시 이 소식을 듣고 메비놀린의 임상개발을 일시적으로 중단했습니다. 당시에는 이 약물군의 장기 안전성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증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를 치료하던 임상의들은 다른 약물로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 환자들에게 메비놀린을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습니다. 1982년부터 일부 중증 환자에서 동정적 사용(compassionate use)이 시작되었고, 예상보다 효과가 좋고 심각한 부작용이 적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1983년 정식 임상개발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1987년 로바스타틴이 미국에서 시판되면서 스타틴 시대가 열립니다.
스타틴은 단순히 콜레스테롤 합성을 막는 약물이 아닙니다
스타틴의 작용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HMG-CoA 환원효소 억제 → 콜레스테롤 합성 감소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스타틴의 LDL 저하 효과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 단계입니다.
간세포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이 감소하면 간세포 내부의 콜레스테롤이 줄어듭니다. 그러면 간세포는 외부에서 콜레스테롤을 더 가져오기 위해 LDL 수용체를 증가시킵니다. 페데르센은 HMG-CoA 환원효소 억제가 간에서 LDL 수용체의 메신저 RNA(mRNA)를 증가시키고 세포 표면의 LDL 수용체 밀도를 높인다는 것이 곧 확인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스타틴의 중요한 효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HMG-CoA 환원효소 억제
↓
간세포의 콜레스테롤 합성 감소
↓
간세포 내 콜레스테롤 감소
↓
LDL 수용체 증가
↓
혈중 LDL 제거 증가
↓
LDL-C 감소
이 과정에서 브라운과 골드스타인의 기초생화학과 엔도의 약물 발견이 정확히 연결됩니다. 기전과 치료제가 서로 맞물린 것입니다.
이것은 이전 콜레스테롤 저하제와 달랐습니다
초기 콜레스테롤 저하제는 효과가 제한적이거나 여러 지질을 동시에 변화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클로피브레이트는 LDL뿐 아니라 중성지방(triglyceride)과 다른 지질대사에도 영향을 미쳤고, 나이아신(niacin) 역시 여러 대사효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임상시험 결과가 좋거나 나빠도 그것이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해석하기 어려웠습니다.
스타틴은 상대적으로 명확했습니다. 콜레스테롤 합성경로의 핵심 효소를 억제하고, 그 결과 LDL 수용체를 증가시켜 LDL을 낮춥니다. 즉 LDL 가설을 시험하기에 훨씬 좋은 도구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LDL이 내려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스타틴이 LDL을 크게 낮춘다는 것은 약리학적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LDL을 낮추면 사람이 오래 산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초기 콜레스테롤 연구에서 이미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어떤 치료는 콜레스테롤을 낮추면서 심장병을 조금 줄였지만 전체 사망률에서는 이득이 없었고, 어떤 약물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일으켰습니다. 따라서 스타틴이 얼마나 LDL을 잘 낮추는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스타틴으로 LDL을 낮추면 심근경색뿐 아니라 전체 사망률도 감소하는가?
임상시험의 규모 자체가 달라져야 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수십 명이나 수백 명 규모의 연구로는 부족했습니다. 심혈관질환과 사망은 비교적 드문 사건이므로, 통계적으로 확실한 차이를 보려면 수천 명의 환자를 수년 동안 추적해야 합니다. 또한 사망률을 평가하려면 처음부터 충분한 사건 수와 검정력을 계산해야 했습니다.
페데르센은 1987년 스타틴이 곧 시장에 나올 것이 분명해지자 머크 스칸디나비아(Merck Scandinavia) 측에 전체 사망률(all-cause mortality)을 일차 평가변수(primary endpoint)로 하는 대규모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회고합니다. 그가 처음 만든 초안은 이후 북유럽 여러 국가의 연구진이 참여하는 대규모 임상시험으로 발전합니다. 그 연구가 바로 스칸디나비아 심바스타틴 생존연구(Scandinavian Simvastatin Survival Study, 4S)입니다.
콜레스테롤 가설은 이 시점에서 중요한 조건을 갖추게 됩니다
1913년 아니치코프의 연구에서 시작한 콜레스테롤 가설은 1980년대에 이르러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콜레스테롤을 먹이면 동맥경화가 생긴다는 동물실험이었지만, 이제는 혈중 LDL이라는 특정 지단백(lipoprotein)이 있고 이를 제거하는 LDL 수용체가 있으며, 간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을 조절하는 HMG-CoA 환원효소가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습니다. 나아가 이 효소를 억제하면 LDL 수용체가 증가해 실제로 혈중 LDL이 크게 감소한다는 기전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콜레스테롤 가설에 처음으로 강력한 생물학적 인과경로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과학에서 기전이 아름답다는 것은 최종 증명이 아닙니다. LDL 수용체와 스타틴이 아무리 정교하게 연결되어도 실제 환자의 심근경색과 사망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임상적으로 중요한 가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 단계에서는 더 이상 세포나 혈액검사 수치를 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실제로 덜 죽는지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994년 발표된 4S가 이 질문에 처음으로 매우 강한 답을 내놓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