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이야기대사와 면역

암과 바르부르크 효과: 종양미세환경의 포도당 쟁탈전과 T세포 탈진

발행: 2026-08-25 · 최종 업데이트: 2026-08-27

Series8/15
미토콘드리아와 면역

암세포의 호기성 해당작용(Warburg effect), 미토콘드리아의 대사 전구물질 공급, 종양미세환경(TME)에서의 포도당 고갈과 젖산 축적이 면역세포(T세포, TAM)를 무력화하는 기전을 살펴봅니다.

1920년대 오토 바르부르크의 발견과 현대적 재해석

1920년대 독일의 생화학자 오토 바르부르크(Otto Warburg)는 암 연구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적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암세포는 산소가 충분하고 미토콘드리아 호흡을 유지하면서도 포도당을 젖산으로 빠르게 분해하는 해당과정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를 '호기성 해당작용(Aerobic Glycolysis)' 또는 **'바르부르크 효과(Warburg effect)'**라고 부릅니다.

초기에 바르부르크는 이를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 호흡 기능이 영구적으로 망가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분자종양학은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가 결코 단순히 고장 난 것이 아님을 밝혀냈습니다. 암세포는 에너지를 덜 만들더라도 매우 빠르게 분열하고 증식하기 위해 뉴클레오타이드, 지질, 아미노산 같은 '세포 분열의 벽돌(생합성 중간체)'을 대량 공급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해당과정과 미토콘드리아 TCA 회로를 전략적으로 재편한 것입니다.

암세포는 해당과정과 미토콘드리아 사이를 오갑니다

암세포가 해당과정을 많이 쓴다고 해서 산화적 인산화가 꺼진 것은 아닙니다. 많은 암세포는 기능적인 TCA 회로와 전자전달계를 유지하며, 미토콘드리아에서 ATP뿐 아니라 아스파르트산·지질·핵산 합성에 필요한 재료와 산화환원 균형을 얻습니다.

종양 안의 포도당과 산소가 부족해지거나 항암치료를 받으면 암세포는 지방산과 글루타민 같은 다른 연료의 사용을 늘리고 미토콘드리아 호흡 의존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포도당이 풍부한 부위에서는 해당과정을 빠르게 돌릴 수 있습니다. 암세포의 강점은 어느 한 경로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연료와 에너지 생산 방식을 바꾸는 대사적 유연성입니다.

종양의 영양·산소·치료 환경 변화→포도당·지방산·글루타민 이용 재편→해당과정과 TCA·OXPHOS의 기여도 전환→생합성 재료·ATP·산화환원 균형 유지→암세포 생존과 치료 저항성 지원

이 때문에 이미 형성된 암에서 미토콘드리아를 일률적으로 활성화하거나 보호하는 접근이 항상 유리하지는 않습니다. 정상세포의 품질관리를 지키는 문제와 암세포가 이용하는 미토콘드리아 대사를 차단하는 문제는 구분해야 합니다.

종양미세환경(TME)의 영양 쟁탈전

암세포 주변의 미세환경(TME, Tumor Microenvironment)에는 암세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혈관 내피세포, 섬유아세포, 암세포를 공격하러 온 면역세포(세포독성 T세포, NK세포, 대식세포 등)가 좁은 공간에서 같은 영양분을 두고 다툽니다.

많은 종양에서 암세포는 포도당 수송과 해당과정을 높이지만, 종양별·부위별 차이가 큽니다. 일부 종양미세환경에서는 포도당 이용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활성화된 세포독성 T세포(CD8+ T cell) 역시 그랜자임, 퍼포린과 IFN-γ를 충분히 만들기 위해 해당과정을 활용하므로 영양 부족과 저산소증의 영향을 받습니다.

암세포와 면역세포 사이의 영양 경쟁은 일부 모델에서 T세포 기능 저하에 기여합니다. 그러나 T세포 탈진은 지속적인 항원 자극, 억제 수용체, 저산소증, 젖산·지질 대사와 면역억제세포 등 여러 요인이 함께 만드는 상태입니다. 후속 연구에서는 일부 종양에서 골수계 세포가 암세포보다 포도당을 더 많이 흡수하기도 해, 단순한 암세포–T세포 포도당 쟁탈전만으로 모든 종양을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줬습니다.

젖산 축적과 종양 관련 대식세포(TAM)의 변절

해당과정이 활발한 암세포가 젖산(lactate)과 수소이온(H+)을 많이 내보내면 종양미세환경이 산성화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는 종양의 종류와 위치, 혈류와 대사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산성화된 환경은 여러 면역세포의 기능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젖산을 포함한 종양 유래 신호는 대식세포를 종양 성장과 혈관 신생을 지원하는 종양 관련 대식세포 (TAM, Tumor-Associated Macrophage)의 일부 상태로 유도할 수 있습니다. 다만 TAM의 대사와 기능은 종양 종류와 위치에 따라 이질적이며, 모두가 산화적 인산화·지방산 산화에 의존하거나 같은 사이토카인을 분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온코메타볼라이트(Oncometabolite)와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

일부 암에서는 IDH, SDH(succinate dehydrogenase), FH(fumarate hydratase) 같은 TCA 회로 관련 효소의 유전적 변이가 종양 발생을 촉진하는 핵심 사건이 됩니다. 이때 2-하이드록시글루타레이트(2-HG), 숙신산, 푸마르산 같은 대사물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될 수 있습니다.

이 비정상 대사산물들을 **'온코메타볼라이트(oncometabolite)'**라고 부릅니다. 2-HG·숙신산·푸마르산은 α-ketoglutarate를 사용하는 TET DNA 탈메틸화효소와 히스톤 탈메틸화효소 등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DNA와 히스톤의 메틸화 상태, 세포 분화와 HIF 신호가 달라져 종양 형성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IDH2 변이 급성골수성백혈병에 사용하는 에나시데닙 (enasidenib)은 이 연결을 실제 치료에 이용합니다. 변이 IDH2가 만드는 2-HG를 줄여 비정상적인 DNA·히스톤 메틸화와 분화 차단을 완화하고, 미성숙 백혈병 세포가 성숙한 골수계 세포로 분화하도록 유도합니다. 모든 암의 미토콘드리아 대사를 정상화하는 약이 아니라, 특정 변이가 만든 대사 이상을 정확히 겨냥한 치료입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암세포의 사멸 관문이기도 합니다

세포가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받으면 미토콘드리아 외막에 있는 BAX와 BAK가 활성화되어 막에 통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미토콘드리아 외막 투과화 (MOMP)라고 합니다. MOMP가 일어나면 cytochrome c가 세포질로 나오고 apoptosome과 caspase-9, caspase-3/7이 차례로 활성화되어 세포가 제거됩니다.

일부 혈액암은 BCL-2 같은 항사멸 단백질을 많이 사용해 BAX·BAK의 작동을 막습니다. 베네토클락스 (venetoclax)는 BCL-2를 억제하여 막혀 있던 MOMP와 미토콘드리아 세포사멸을 다시 작동시킵니다.

BCL-2 의존 암세포→BAX·BAK와 MOMP 억제→cytochrome c 방출 차단→세포사멸 회피→베네토클락스가 BCL-2 억제→MOMP·caspase 경로 재활성화

에나시데닙은 병적인 미토콘드리아 대사산물을 줄여 세포 분화를 회복시키고, 베네토클락스는 암세포가 잠가 놓은 미토콘드리아 사멸 장치를 엽니다. 두 약은 모두 미토콘드리아 생물학을 이용하지만 치료 방향은 서로 다릅니다.

일부 종양에서 해당과정 증가→영양 부족·저산소증·젖산 축적과 산성화→T세포 기능 저하 + 면역억제성 TAM 상태 증가→암세포의 면역 회피에 기여

면역항암치료와 대사적 재프로그래밍

면역항암치료(면역관문억제제, CAR-T 등)의 큰 난관 중 하나가 이 대사 장벽입니다. 면역 브레이크(PD-1/PD-L1)를 풀어도 T세포의 미토콘드리아 기능과 연료 이용이 떨어져 있으면 암세포를 제대로 죽이기 어렵습니다.

암세포나 면역세포의 대사를 조절해 면역치료 반응을 높이려는 전략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암세포와 면역세포가 같은 영양 경로를 공유하기 때문에 한쪽 대사를 차단하거나 강화하는 치료는 예상치 못한 효과를 낼 수 있으며, 대부분의 접근은 아직 임상적으로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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