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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성화 마커 CD25가 조절 T세포가 된 천재적인 발상은 어디서 나왔을까?

발행: 2026-01-05 · 최종 업데이트: 2026-01-05

1995년 Sakaguchi 논문에서 CD25가 조절 T세포의 표지자로 선택된 배경을 따라가며, 이 선택이 우연이 아니라 실험적 관찰에서 나온 필연적인 사고의 결과였음을 살펴본다

Immunologic self-tolerance maintained by activated T cells expressing IL-2 receptor α-chains (CD25)
Shimon Sakaguchi, Noriko Sakaguchi, Masahiro Asano, Masahiro Itoh, Masataka Toda · Journal of Immunology · 1995
말초 CD4⁺ T세포 중 CD25를 지속적으로 발현하는 소수 집단을 제거하면 자가면역이 발생하고, 다시 보충하면 억제된다는 사실을 통해 조절 T세포의 실체를 처음으로 분자 표지 수준에서 정의한 고전 논문.

문제 제기: IL-2의 수용체가 억제세포의 마커이라는 생각은 정말 엉뚱한 선택 아니었을까?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CD25가 조절 T세포(regulatory T cell)의 표지자라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1995년 당시로 돌아가 보면, 이 선택은 꽤 엉뚱해 보였습니다.

CD25는 잘 알려진 활성화 T세포 마커였습니다.
IL-2 수용체의 α사슬로서, 항원 자극을 받은 T세포가 증식 단계로 들어갈 때 발현이 증가하는 분자였습니다.
그런 분자가, 면역 반응을 _억제_하는 세포의 표지자일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색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사카구치는 하필 CD25를 조절 T세포의 후보로 보았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결과를 아는 현재의 시점이 아니라,
그가 당시 무엇을 알고 있었고,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카구치가 이미 붙잡고 있던 확실한 현상

1995년 논문은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디어의 산물이 아닙니다.
사카구치는 그 이전부터 말초 자기내성이라는 문제를 오랫동안 추적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미 확신하고 있던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말초에는 자가면역을 억제하는 특정 T세포 집단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신생아 흉선 절제 모델에서, 특정 T세포를 제거하면 자가면역이 발생하고, 다시 넣어주면 억제되는 현상은 반복적으로 관찰되었습니다.

둘째, 이 세포들은 항원 자극이 있을 때 잠깐 생겼다가 사라지는 세포가 아니라,
정상 개체의 말초에 항상 일정 비율로 존재해야 했습니다.

셋째, 이 세포들은 폭발적으로 증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가면역을 일으키는 병원성 T세포들과 달리, 억제 기능을 하는 세포들은 눈에 띄는 증식 패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T세포 집단은, 생각보다 찾기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여기서 IL-2–CD25 축이 다시 등장한다

이 지점에서 사카구치는, 당시 이미 잘 연구되어 있던 IL-2 시스템을 다시 바라봅니다.

IL-2는 T세포 증식의 핵심 성장 인자입니다.
IL-2를 만들어 분비하는 T세포는 대개 강하게 활성화되고, 빠르게 증식합니다.

그런데 사카구치가 찾고 있던 세포는 정반대였습니다.

  • 스스로는 잘 증식하지 않지만

  • 말초에서 오래 살아남고

  • 다른 T세포의 반응을 억제한다

그렇다면 이런 세포는 IL-2를 만들어 쓰는 세포일 가능성은 낮습니다.
대신, 외부에서 만들어진 IL-2를 아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세포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이 질문이 바로 사고의 전환점입니다.

“만드는 세포”가 아니라 “가장 잘 잡아먹는 세포”

IL-2 신호에 가장 민감한 세포는 어떤 세포일까요?
정답은 명확합니다. 고친화성 IL-2 수용체를 가진 세포입니다.

고친화성 IL-2 수용체는 α사슬(CD25), β사슬, γ사슬로 구성됩니다.
이 중 CD25는 리간드 결합 친화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사카구치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웁니다.

말초에서 항상 존재하면서,
스스로는 크게 증식하지 않지만,
다른 T세포의 반응을 억제하는 세포는
IL-2를 가장 잘 ‘잡아먹는’ 세포일 수 있다.

이 가설을 따르면, CD25는 더 이상 엉뚱한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합리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분자가 됩니다.

“활성화 마커일 뿐”이라는 반론을 넘어서다

물론 당시에도 즉각적인 반론이 있었습니다.
CD25는 활성화 T세포에서도 발현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세포 집단을 정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사카구치는 이 문제를 말로 설득하지 않았습니다. 실험으로 밀어붙였습니다.

  • CD25⁺ T세포를 제거하면 자가면역이 발생하고

  • CD25⁺ T세포를 다시 넣어주면 자가면역이 억제된다

이 현상은 항원 자극 여부와 무관하게 관찰되었습니다.
즉, CD25 발현은 단순한 “일시적 활성화 상태”가 아니라,
기능적으로 구별되는 세포 집단의 표지자라는 점이 in vivo에서 입증된 것입니다.

이 선택이 ‘천재적’인 이유

사카구치의 CD25 선택이 인상적인 이유는,
그가 분자 기전이나 전사인자를 먼저 찾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먼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현상을 유지하는 세포는
반드시 생존과 기능을 설명할 수 있는 전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략을 IL-2 이용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CD25는 그 해석의 출발점이자, 실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가설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조절 T세포라는 개념을 실험적으로 고정시키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놀랍도록 단순한 질문이었습니다.

정리하며

CD25는 처음부터 조절 T세포의 표지자로 “발견된” 분자가 아닙니다.
말초 자기내성이라는 현상을 끝까지 밀어붙여 생각한 결과,
그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선택된 분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선택은 엉뚱해 보이지만, 동시에 매우 실험가다운 선택입니다.

결과를 알고 나면 당연해 보이지만,
결과를 모른 상태에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점,
그 지점에 바로 사카구치 논문의 진짜 천재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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