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XP3와 조절 T 세포의 탄생: 말초 관용의 분자적 기초
발행: 2003-02-01 · 최종 업데이트: 2026-01-06
2003년 Science에 실린 사카구치 연구를 중심으로, FOXP3 전사인자가 조절 T 세포 발달과 자가면역 억제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역사적 맥락에서 정리합니다.
이 논문이 ‘조절 T 세포 시대’를 연 이유
면역학에서 자가면역(autoimmunity)은 오랫동안 “면역계가 자기 몸을 잘못 공격한다”는 현상적 설명으로만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2003년 Science에 실린 Hori·Nomura·Sakaguchi 논문은 자가면역을 말초 관용(peripheral tolerance)의 실패라는 틀로 정리하고, 그 중심에 FOXP3(Forkhead box P3)라는 전사인자(transcription factor)를 놓았습니다.
즉, 자가면역은 단순히 “공격이 과해서”가 아니라, 정상 상태에서 공격을 눌러주는 조절 시스템이 무너져서발생한다는 해석이 분자 수준에서 설득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배경 1: 신생아 흉선절제에서 드러난 ‘이상한 질병’
이야기는 1960년대 초로 올라갑니다. Jacques Miller는 흉선(thymus)의 면역학적 의미를 밝히기 위해 마우스에서 흉선을 제거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성체에서 흉선을 제거했을 때는 차이가 뚜렷하지 않았지만, 신생아 시기(neonate)에 흉선을 제거하면 시간이 지나며 건강이 나빠지고, 성장 지연과 전신 상태 악화가 나타나는 모델이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초기에는 면역결핍(immunodeficiency)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 결핍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병태로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흉선이 단지 면역세포를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면역계의 균형을 잡는 데 필수적인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싹텄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는 한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이후 일본 연구자들의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됩니다.
배경 2: 일본 연구자들이 포착한 ‘장기 특이적 자가면역’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걸쳐, 신생아 흉선절제 모델을 다시 파고든 연구자들은 이 마우스에서 단순한 감염 취약성만이 아니라 장기 특이적 자가면역(organ-specific autoimmunity)이 나타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 Shimon Sakaguchi는 이 모델을 포함한 여러 조건에서 나타나는 병태를 “어떤 T 세포 하위집단의 부재”라는 관점으로 보려 했습니다.
이 접근이 중요한 이유는, 자가면역을 “면역 반응이 생겼다”가 아니라 “원래 있어야 할 억제가 사라졌다”로 뒤집어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배경 3: 1990년대의 충격, IL-2와 CTLA-4 노크아웃 마우스
1990년대 초중반에는 유전자 변형 마우스(knockout mice) 연구가 급속히 확산되며, 서로 다른 분자들이 비슷한 치명적 질병을 만든다는 사실이 잇달아 드러났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다음과 같은 모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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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루킨-2(IL-2) 관련 결함 마우스에서 관찰되는 심각한 염증과 자가면역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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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LA-4결손 마우스에서 나타나는 광범위한 T 세포 활성화, 다장기 염증, 조기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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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urfy마우스에서 나타나는 전신 염증과 ‘통제되지 않는’ CD4⁺ T 세포 반응
겉보기에는 서로 다른 유전자 결함인데, 결과가 놀랍도록 비슷했습니다. 면역계가 전반적으로 비정상이고, 한편으로는 면역 기능이 무너진 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한 염증과 자가면역이 폭주하는 모순적인 상태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처럼 비슷한 병태가 반복된다면, 그 아래에는 공통된 ‘조절 회로’가 있는 것 아닌가?”
1995년의 결정적 단서: CD25로 잡아낸 조절 T 세포
사카구치가 1995년 발표한 연구는 조절 T 세포(regulatory T cell, Treg)를 실험적으로 다룰 수 있게 만든 전환점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그는 IL-2 수용체 알파 사슬(IL-2 receptor alpha chain, IL-2Rα), 즉 CD25를 강하게 발현하는 T 세포 하위집단이 자가면역을 억제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긴장이 있습니다. CD25는 한편으로는 “활성화된 T 세포의 표지”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즉, 같은 표지가 효과 T 세포(effector T cell) 쪽에서도 보일 수 있어 혼란을 낳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활성화와 억제가 같은 분자 축(IL-2 축)에서 만난다”는 복잡한 면역 조절의 특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CD25는 조절 T 세포를 손에 잡히는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다음 단계는 “그 세포를 결정하는 더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인가”였습니다.
FOXP3의 등장: scurfy와 IPEX를 잇는 공통 분자
2001년 전후로 FOXP3가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는 두 갈래의 증거가 거의 동시에 쌓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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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urfy 마우스에서 문제가 되는 유전적 결함이 FOXP3와 연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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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서도 IPEX 증후군(Immune dysregulation, Polyendocrinopathy, Enteropathy, X-linked) 환자에서 FOXP3 변이가 확인됨
IPEX는 이름 그대로 면역 조절 실패(immune dysregulation), 내분비 이상(polyendocrinopathy), 장병증(enteropathy)이 함께 나타나는 중증 질환입니다. “자가면역 + 알레르기 + 면역결핍이 동시에 보인다”는 서술 자체가, 앞서 언급한 여러 마우스 모델의 모순적인 병태와 겹칩니다.
결국 질문은 다음으로 수렴합니다.
“FOXP3가 조절 T 세포를 만들고 유지하는 핵심 스위치라면, FOXP3를 만졌을 때 조절 T 세포의 정체성과 기능을 직접 바꿀 수 있는가?”
2003년 Science 논문이 보여준 핵심 실험들
이 논문은 크게 세 단계로 논리를 전개합니다. “어디에 있나 → 만들 수 있나 → 실제로 병을 막나”입니다.
1) FOXP3는 어디에서 발현되는가
연구진은 흉선(thymus)과 말초(periphery)의 여러 면역세포 집단을 나누어 FOXP3 발현을 비교합니다. 핵심 관찰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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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선에서 FOXP3 발현은 주로 CD4 단일 양성(CD4 single positive) 구간에서 두드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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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초에서 FOXP3 발현은 B 세포나 CD8⁺ T 세포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고, CD4⁺ T 세포 안에서도 특히 CD25⁺ 하위집단에 집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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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CD4⁺ 풀(pool)로 보면 FOXP3가 강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정량 비교를 통해 “FOXP3를 강하게 발현하는 세포가 CD4⁺ T 세포의 일부(대략 10% 미만)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강화합니다.
즉, FOXP3는 “아무 CD4⁺ T 세포나”가 아니라, 조절 T 세포 레퍼토리(regulatory repertoire)에 해당하는 특정 집단을 특징짓는 분자라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2) FOXP3를 강제로 발현하면 조절 T 세포처럼 되는가
다음 실험은 매우 직관적입니다. FOXP3를 평범한 CD4⁺ T 세포에 도입(forced expression)했을 때, 그 세포가 조절 T 세포와 비슷해지는지를 봅니다.
결과는 일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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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식(proliferation)이 강하게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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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2, IFN-γ 등 활성화 T 세포가 흔히 내는 사이토카인(cytokine) 생산이 전반적으로 억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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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으로 “잘 커지고 많이 분비하는” 쪽이 아니라, “커지지 않고 과열을 막는” 방향으로 성격이 이동합니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FOXP3가 단지 표지(marker)가 아니라, 세포의 운명과 프로그램을 바꾸는 결정 인자로 읽히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3) FOXP3⁺ 세포는 다른 T 세포를 억제할 수 있는가
조절 T 세포의 상징적 기능은 ‘억제(suppression)’입니다. 연구진은 FOXP3를 발현하는 세포를 섞어 넣었을 때, 다른 T 세포의 증식이 비율 의존적으로 억제되는지를 확인합니다.
FOXP3⁺ 세포의 비율이 증가할수록 표적 T 세포의 증식이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나며, FOXP3 발현이 “조절 T 세포의 전형적 기능”과 연결된다는 점이 강화됩니다.
4) 생체 내에서 자가염증을 완화할 수 있는가
마지막은 in vivo 검증입니다. FOXP3를 발현하는 세포를 이식(transfer)했을 때, 체중 변화와 조직 병리(위, 대장 등)에서 염증이 줄어드는지 봅니다.
이 단계는 논문의 메시지를 실험실 접시(in vitro)에서 생명체(in vivo)로 끌어올립니다. “FOXP3가 조절 기능을 만든다”가 실제 병태 완화로 연결된다는 점이 설득력 있게 제시됩니다.
이 논문이 남긴 해석: 자가면역은 ‘말초 관용의 붕괴’이다
이 논문의 가장 큰 해석적 기여는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자기반응성(self-reactive) T 세포는 완벽히 제거되지 않을 수 있으며, 말초에서는 FOXP3⁺ 조절 T 세포가 이를 지속적으로 눌러 자가면역을 막는다.
흉선에서의 음성 선택(negative selection)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일상적인 건강 상태는 말초에서의 지속적인 조절, 즉 말초 관용(peripheral tolerance)에 의해 유지된다는 관점이 강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FOXP3 변이(예: IPEX)나 FOXP3 기능 상실(예: scurfy)은 이 말초 조절 축을 무너뜨리고, 그 결과 “면역결핍처럼 보이면서도 자가면역이 폭발하는” 이상한 조합의 병태가 나타난다는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CD25보다 FOXP3가 ‘더 본질적인 표지’라는 주장과 현실적 한계
논문은 조절 T 세포를 규정할 때 CD25보다 FOXP3가 더 적합한 표지(marker)라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개념적으로는 자연스럽습니다. CD25는 활성화 효과 T 세포에서도 올라갈 수 있지만, FOXP3는 조절 프로그램 자체를 가리키는 분자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실험 기술 측면에서 현실적인 제한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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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25는 세포 표면(surface) 분자라 살아 있는 세포를 분리(sorting)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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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P3는 세포 내(intracellular) 전사인자라,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살아 있는 세포를 그대로 분리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이 간극은 이후 reporter 마우스나 다양한 표지 조합 전략으로 조금씩 해결되지만, 당시에는 분명한 실험상의 제약이었습니다.
이후 연구가 던진 질문들: FOXP3는 무엇을 어떻게 조절하는가
2003년 논문은 “FOXP3가 조절 T 세포를 만든다”를 보여 주었지만, 동시에 큰 질문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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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P3는 어떤 표적 유전자(target genes)를 조절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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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P3는 어떤 전사인자들과 복합체를 이루어 작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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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절 T 세포의 억제는 어떤 기전들(예: 접촉 의존, 사이토카인 매개, 대사 조절 등)로 분담되는가
이후 연구에서는 FOXP3가 T 세포 활성화 프로그램을 재배선(rewiring)하는 방식으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조절 T 세포가 IL-2 축과 깊이 얽혀 있다는 점도 반복적으로 강조되었습니다. 특히 조절 T 세포가 IL-2에 의존하며, 높은 수준의 IL-2Rα(CD25) 발현과 연결된다는 관점은 “조절이 성장 인자 축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마무리
Hori·Nomura·Sakaguchi(2003)는 조절 T 세포를 “있을지도 모르는 억제 세포”가 아니라, FOXP3라는 분자 프로그램을 가진 세포 집단으로 제시했습니다.
자가면역을 단순한 과잉 반응이 아니라 조절 회로의 붕괴로 읽게 만들었고, 말초 관용(peripheral tolerance)이라는 개념을 분자 수준에서 굳혀 주었습니다.
조절 T 세포 연구가 복잡해질수록, 오히려 이 논문의 장점이 더 선명해집니다. 질문을 단순화하고, 분자와 기능을 한 축으로 연결해 “면역 조절이 무엇인가”를 다시 정의한 논문이기 때문입니다.
관련 문헌 (M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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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i, Shohei, Takashi Nomura, and Shimon Sakaguchi. “Control of Regulatory T Cell Development by the Transcription Factor Foxp3.” Science, vol. 299, no. 5609, 2003, pp. 1057–1061. https://doi.org/10.1126/science.1079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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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kaguchi, Shimon, et al. “Immunologic Self-Tolerance Maintained by Activated T Cells Expressing IL-2 Receptor α-Chains (CD25).” Journal of Immunology, vol. 155, no. 3, 1995, pp. 1151–1164. https://pubmed.ncbi.nlm.nih.gov/7636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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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enot, Jason D., Marc A. Gavin, and Alexander Y. Rudensky. “Foxp3 Programs the Development and Function of CD4+CD25+ Regulatory T Cells.” Nature Immunology, vol. 4, 2003, pp. 330–336. https://doi.org/10.1038/ni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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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attri, Raghavan, et al. “An Essential Role for Scurfin in CD4+CD25+ T Regulatory Cells.” Nature Immunology, vol. 4, 2003, pp. 337–342. https://doi.org/10.1038/ni90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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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i, Nomura, and Sakaguchi. 2003. Science. https://doi.org/10.1126/science.1079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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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kaguchi et al. 1995. Journal of Immunology. https://pubmed.ncbi.nlm.nih.gov/7636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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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enot, Gavin, and Rudensky. 2003. Nature Immunology. https://doi.org/10.1038/ni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