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2를 잡아라: 단클론 항체로 연 면역학의 정량 시대
발행: 2026-01-02 · 최종 업데이트: 2026-01-02
1983년 Journal of Immunology에 발표된 인간 IL-2 단클론 항체 제작 논문은, IL-2를 친화 정제·정량·중화 가능한 분자로 끌어내리며 이후 IL-2–IL-2 수용체 이론과 현대 사이토카인 생물학의 출발점을 마련했다.
1983년 이 논문은, IL-2라는 분자를 연구 ‘대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첫 번째 완성된 기술 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논문 이전에도 IL-2는 분명 존재했고, 생물학적 활성을 기준으로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논문 이후, IL-2는 비로소 정제할 수 있고, 정량할 수 있으며, 항체로 조작할 수 있는 분자가 됩니다.
왜 단클론 항체가 필요했는가
1980년대 초반까지 IL-2 연구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PHA나 콘카나발린 A로 자극한 림프구 배양 상층액, 즉 conditioned medium을 사용해 IL-2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이 상층액에는 분명 T 세포 성장 활성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다른 단백질과 분자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정제를 시도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IL-2 활성은 분명 단일 단백질에 의해 나타나고, 분자량과 등전점까지 어느 정도 규명되었지만, 정제 단계를 한 번 거칠 때마다 활성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순도는 높은데 양은 거의 없는” 상태에 도달하곤 했습니다.
Smith가 내린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이제는 생화학만으로는 안 된다.
IL-2를 인식하는 항체가 필요하다.” **
항체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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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화 크로마토그래피로 IL-2를 직접 잡아낼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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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표지 IL-2 결합 분석으로 수용체 연구가 가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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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IL-2를 ‘호르몬처럼’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작은 단백질에 대한 단클론 항체라는 도전
이 결심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단클론 항체 기술은 1975년 Georges Köhler와 César Milstein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 성공 사례의 대부분은 양 적혈구나 세포 표면 항원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분자량이 약 15.5 kDa에 불과한 작은 수용성 단백질에 대해, 그것도 생물학적 활성을 중화할 수 있는 단클론 항체를 만든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거의 “예술에 가까운 기술”로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Smith의 지인인 Max Schrei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Smith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핵심 실행자는 Margaret Favata였습니다. 그녀는 하이브리도마 제작에 있어 탁월한 기술을 갖춘 연구자였고, 이 논문의 실질적인 실험 대부분을 감당해 냅니다.
인간 IL-2를 선택한 전략적 이유
이 논문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선택 중 하나는 ‘인간 IL-2’를 항원으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면역학자들은 마우스를 연구했고, 마우스 IL-2에 대한 항체를 얻기 위해 마우스에 마우스 IL-2를 면역시키려 했습니다. 이는 자기 단백질과의 유사성 때문에 항체 생성이 매우 어렵다는 치명적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Smith의 접근은 달랐습니다. 진화적으로 인간과 마우스는 약 8,000만 년 전에 갈라졌기 때문에, 마우스에게 인간 IL-2를 주입하면 훨씬 강한 면역반응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선택 하나가 이후의 모든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JURKAT 세포가 해결한 ‘물량’ 문제
단클론 항체 제작에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항상 같습니다. “면역에 쓸 만큼의 항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 문제는 Smith의 이전 제자였던 Steve Gillis가 발견한 Jurkat세포주 덕분에 해결됩니다. Jurkat 세포는 PHA와 PMA로 자극하면 엄청난 양의 IL-2를 분비했습니다. 이 세포주 덕분에 연구진은 처음으로 “충분한 양의 인간 IL-2”라는 출발점을 확보하게 됩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이 논문에서 혈청이 없는 배지(serum-free medium)를 사용해 하룻밤 동안만 IL-2를 생산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불필요한 단백질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매우 계산된 선택이었습니다.
중화만으로는 부족했다: 스크리닝의 함정
이 논문의 기술적 깊이를 보여주는 대목은 항체 스크리닝 전략입니다.
IL-2는 IL-2 수용체에 대한 친화도가 극도로 높기 때문에, 실제로 IL-2에 결합하는 항체라 하더라도 수용체와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중화능 없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하이브리도마 상층액은 대부분 영양분이 고갈된 spent medium이기 때문에, 이를 IL-2 의존 세포(CTLL)에 처리하면 IL-2가 중화되지 않았는데도 증식이 줄어드는 가짜 양성(false positive)이 쉽게 발생합니다.
이 함정을 피하기 위해 연구진은 중화 bioassay, 방사면역침전(RIA), ELISA를 반드시 병행했습니다.
이 전략 덕분에, “결합은 강하지만 중화는 약한 항체”와 “실제로 생물학적 활성을 차단하는 항체”를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DMS 항체들과 친화 정제의 완성
그 결과 얻어진 세 가지 단클론 항체, DMS-1, DMS-2, DMS-3는 각각 서로 다른 성질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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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S-1, DMS-2: 강한 중화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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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S-3: 결합력은 매우 강하지만 중화능은 약함
이 차이는 결정적으로 중요했습니다.
친화 크로마토그래피에는 DMS-3가 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항체를 고정화한 컬럼을 사용하면, Jurkat 상층액을 한 번 통과시키는 것만으로 밀리그램 단위의 순수한 IL-2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전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규모였습니다.
이 논문이 남긴 가장 큰 유산
이 논문의 진정한 가치는 “IL-2 항체를 만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연구자들은 처음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순수한 IL-2를 사용했다.”
이 한 문장은 이후의 모든 IL-2 연구, 특히 1984년 Science에 발표된 IL-2 T 세포 시스템 논문의 출발점이 됩니다. IL-2 농도, 수용체 밀도, 결합 지속시간이라는 정량적 변수들이 의미를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논문 덕분이었습니다.
정리하며
1983년 이 논문은 IL-2를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효능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T 세포 성장 인자”에서 정제·정량·조작 가능한 단백질 호르몬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이론이 아니라, 전술(strategy and tactics)의 승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