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 가설 비판 논문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 주관적 검증이라는 함정
발행: 2025-12-28 · 최종 업데이트: 2025-12-28
콜레스테롤 가설을 재평가한다는 이 논문은 왜 설득력이 떨어질까. 선택적 회의주의가 아니라, 주관적 검증이라는 관점에서 비평한다.
최근 youtube에서 동맥경화증에 대해서 지질가설을 부정한다는 식의 논문을 소개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이런 영상을 볼 때마다 참 이런 논문은 어떻게 찾아냈는지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알려지지도 않은 논문이고 읽어보면 문제가 많은 논문이지만, 영상에서는 마치 대단한 논문인 것 처럼 소개해서 그 논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콜레스테롤 가설을 다시 묻는다는 논문
2018년에 발표된 _A Reappraisal of the Lipid Hypothesis_라는 논문은 제목부터 도발적입니다.
이 논문은 지난 수십 년간 심혈관질환 예방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 온 ‘지질 가설(lipid hypothesis)’, 즉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면 심혈관질환과 사망을 줄일 수 있다는 전제를 정면으로 문제 삼습니다.
논문의 핵심 주장은 단순합니다.
LDL을 낮춘 임상시험은 많지만,
전체 사망률을 일관되게 낮추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지질 가설은 실패한 것이 아닌가?
이 질문 자체는 정당합니다.
문제는 질문을 검증하는 방식입니다.
이 논문의 핵심 문제는 ‘주관적 검증'이다.
이 논문을 두고 흔히 “불리한 연구만 골라 비판했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을 말하는 전문 용어는 주관적 검증(subjective validation)입니다.
주관적 검증이란 무엇인가
주관적 검증이란 다음과 같은 태도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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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기준을 사전에 명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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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과가 ‘의미 있는지’를 저자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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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적·방법론적 합의보다 인상과 직관이 우선한다
이 논문은 임상시험들을 평가하면서
어떤 endpoint가 결정적인지,
효과 크기를 어떻게 해석할지,
연구 기간과 질환의 시간 축을 어떻게 고려할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히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결과는 항상 같은 기준으로 귀결됩니다.
“사망률이 줄지 않았다면 의미가 없다”
이 기준은 합의된 과학적 원칙이 아니라, 저자의 개인적 검증 기준입니다.
1. endpoint를 사후적으로 재선택하는 방식
대부분의 지질 강하 임상시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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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혈관 사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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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경색
-
뇌졸중
과 같은 심혈관 endpoint를 1차 목표로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논문은 각 연구가 무엇을 검증하려 했는지는 거의 존중하지 않고, 모든 연구를 ‘전체 사망률’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다시 채점합니다.
이는 비판이 아니라 사후적 재평가입니다.
검증 기준을 바꿔 놓고 “왜 통과하지 못했느냐”고 묻는 방식입니다.
2. 효과 크기를 숫자가 아니라 ‘느낌’으로 판정한다
논문에 등장하는 표현을 보면 다음과 같은 패턴이 반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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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비가 10~15% 감소 → “임상적으로 의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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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적으로 유의하지만 감소폭이 작음 → “실망스러운 결과”
그러나 이 판단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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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위험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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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T(Number Needed to Treat)
-
대상군의 기저 위험도
와 같은 객관적 지표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효과의 크고 작음이 통계가 아니라 저자의 인상에 따라 판정됩니다.
이 역시 주관적 검증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3. 시간 축을 고려하지 않는 것도 주관적 기준의 결과다
동맥경화는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질환입니다.
그럼에도 이 논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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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추적 연구
-
4년 연구
-
7년 연구
를 같은 표에 나열하고, 모두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망률이 줄었는가?”
짧은 기간에 사망률이 줄지 않았다는 이유로 질환 가설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질환의 자연사를 고려하지 않은 평가입니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그 이유조차 설명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단기간에 사망률이 줄어야 의미 있다’는 전제가 이미 주관적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이 특히 위험한 이유
이 논문이 문제적인 이유는 단지 학술적 허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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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의 형식은 학술지에 실린 리뷰처럼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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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조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비판처럼 읽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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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명시되지 않은 개인 기준으로 기존 연구를 재채점합니다
그 결과 이 논문은 종종 다음과 같이 소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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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스테롤은 의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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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틴은 쓸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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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의학은 틀렸다”
하지만 이 논문이 실제로 보여주는 것은 지질 가설의 붕괴가 아니라, 과학적 논쟁에서 검증 기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정리하며
이 논문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과학적 합의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이 논문은 지질 가설을 반박한 결정적 증거가 아니라,
저자 개인의 기준으로 임상시험을 다시 채점한 글입니다.
문제는 그 기준이 명시되지 않았고,
독자가 이를 객관적 검증으로 오해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비판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과학에서 비판은 검증 기준을 먼저 드러낼 때비로소 설득력을 갖습니다.
이 논문이 불편한 이유는 틀린 말을 해서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를 끝내 밝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논문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 DuBroff, R. (2018). A reappraisal of the lipid hypothesis. The American Journal of Medicine, 131(9), 993-997.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