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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 HLA-A2 구조가 바꾼 면역학: MHC가 펩타이드를 담는 방식

발행: 2026-01-04 · 최종 업데이트: 2026-01-04

1987년 Nature에 발표된 HLA-A2 구조 논문을 통해 본 T세포 항원 인식의 구조적 기초

The structure of human class I histocompatibility antigen, HLA-A2
Pamela J. Bjorkman, Jack L. Strominger et al. · Nature · 1987
인간 MHC class I 분자(HLA-A2)의 3차원 구조를 처음으로 규명해, 펩타이드–MHC 복합체를 T세포가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기반을 제시한 획기적인 연구.

1. 1987년, 면역학이 구조를 갖게 되다

1987년 10월, Nature에는 면역학의 역사를 바꾼 논문 두 편이 나란히(back-to-back) 실렸습니다. 이 논문들의 공통 주제는 하나였습니다. “T세포는 항원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첫 번째 논문의 제1저자는 Pamela J. Bjorkman으로, 당시 Don C. Wiley연구실의 대학원생이었습니다. 공동 저자로는 면역학자 Jack L. Strominger가 참여했습니다.

이 조합 자체가 이 논문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면역학자와 결정학자(crystallographer)의 협업, 즉 면역 반응의 핵심 분자를 구조로 풀어내려는 시도였습니다.

2. 왜 이 논문이 필요했을까

1980년대 중반까지, T세포 항원 인식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실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T세포는 외부 항원(foreign antigen) 단백질 전체를 그대로 인식하지 않고, 항원은 세포 안에서 분해되어 짧은 펩타이드(peptide) 형태가 되며, T세포는 그 펩타이드가 자기(self) MHC 분자에 결합된 상태에서만 반응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T세포는 “펩타이드 + 자기 MHC” 복합체를 인식한다는 개념이 이미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의 MHC 분자가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펩타이드를 결합할 수 있는가?

당시 알려진 MHC–펩타이드 결합의 해리 상수(Kd)는 대략 마이크로몰(10⁻⁶ M) 수준이었습니다. 이는 결합이 가능하긴 하지만, 극도로 강력한 상호작용은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조적으로 어떤 장치가 이런 “느슨하지만 선택적인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3. 연구 대상: HLA-A2

이 논문에서 연구자들이 선택한 분자는 인간 MHC class I 분자인 HLA-A2였습니다.

논문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 structure of human class I histocompatibility antigen, HLA-A2

이 연구의 목표는 단순했습니다. HLA-A2의 3차원 구조를 실제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은 EB 바이러스(EBV)로 불멸화된 인간 B세포주(JY)를 무려 200리터 규모로 배양했습니다. 이는 단일 막단백질을 구조 분석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4. 막단백질을 구조로 만들다

가장 큰 기술적 난관은 MHC 분자가 세포막에 박혀 있는 단백질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은 파파인(papain)이라는 단백질분해효소를 사용해, MHC 분자를 막 관통부(transmembrane region) 바로 위에서 절단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막 관통 영역과 세포질 꼬리는 제거하고, 세포 외부에 노출된 도메인만을 따로 정제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이후 수많은 막단백질 구조 연구의 전형적인 전략이 됩니다.

5. 처음 드러난 MHC class I의 구조

결정 구조가 밝혀졌을 때, 그 모습은 면역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MHC class I 분자는 α1, α2, α3 도메인으로 이루어진 중쇄와, 여기에 결합하는 별도의 분자인 β₂-마이크로글로불린(beta₂-microglobulin)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결정적인 부분은 α1과 α2 도메인이 만들어내는 구조였습니다. 이 두 도메인은 양쪽의 두 개의 α-나선(α-helix)과 그 아래의 β-병풍(beta-pleated sheet)으로 이루어진 길고 얕은 홈(groove)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구조는 흔히 “핫도그 번(hot dog bun)”에 비유됩니다. 빵 사이의 홈에 소시지가 들어가듯, 바로 그 홈 안에 펩타이드가 길게 누워 있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6. 펩타이드는 이미 거기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자들이 처음 구조를 해석했을 때 홈 내부의 전자 밀도를 MHC 자체의 원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전자 밀도는 실제로 내생 펩타이드(endogenous peptide)였습니다.

즉, HLA-A2 분자는 펩타이드가 결합된 상태로 정제·결정화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MHC class I 분자는 본질적으로 펩타이드를 담기 위한 구조로 설계된 분자이다.

7. 두 번째 논문이 완성한 그림

같은 호에 실린 두 번째 논문은 MHC 분자의 어떤 부분이 다양성을 담당하는지를 구조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입체(stereo) 그림을 통해 분석한 결과, MHC의 다형성(polymorphism)은 주로 홈의 바닥과 내부 측면에 위치한 아미노산 곁사슬(side chain)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곧 그 부위가 펩타이드 결합 특이성을 결정하는 동시에, T세포 수용체(TCR)가 인식하는 핵심 영역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로써 연구자들은 처음으로 “펩타이드–MHC–TCR 인식”의 구조적 모델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8. 그 이후의 시간표

이 연구 이후에도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1996년에는 Don Wiley 연구실이 TCR–MHC class I 공결정 구조를 처음으로 규명했고, 1999년에는 Ellis L. Reinherz 연구팀이 MHC class II에 결합한 TCR 구조를 최초로 해결했습니다.

즉, 1987년 HLA-A2 구조는 이후 10여 년간 이어질 구조면역학(structural immunology)의 출발점이었습니다.

9. 마무리하며

항체(면역글로불린)의 구조가 1950–60년대에 밝혀진 이후, 이 HLA-A2 논문은 면역 반응의 또 다른 핵심 분자에 대한 첫 번째 본격적 구조 정보였습니다.

“T세포는 무엇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수십 년간의 질문에 대해, 이 논문은 처음으로 형태를 가진 답을 제시했습니다.

그 의미에서 이 연구는 단순한 구조 논문을 넘어, 면역학 전체의 사고방식을 바꾼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 Bjorkman, Pamela J., et al. “The structure of human class I histocompatibility antigen, HLA-A2.” Nature, 1987.

  • Bjorkman, Pamela J., et al. “The foreign antigen binding site and T-cell recognition regions of class I MHC-encoded molecules.” Nature, 1987.

  • Wilson, Ian A., and Don C. Wiley. “Structure of the MHC class I antigen HLA-A2.” Nature,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