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코코르티코이드 면역억제의 분자적 의미: NF-κB를 묶는다는 발상의 전환
발행: 2026-01-05 · 최종 업데이트: 2026-01-05
1995년 Michael Karin 그룹의 Science 논문을 통해, 글루코코르티코이드가 NF-κB를 직접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IκB 합성을 유도함으로써 면역과 염증 반응을 전반적으로 조절한다는 개념이 어떻게 확립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글루코코르티코이드 면역억제의 분자적 의미:
NF-κB를 ‘막는’ 것이 아니라 ‘묶는다’는 발상의 전환
1995년 Science에 실린 Michael Karin 그룹의 논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의 분자 기전을 설명한 연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논문의 진짜 가치는, 면역학이 수십 년 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사고방식을 정면에서 수정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글루코코르티코이드는 1950년대부터 임상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가장 강력한 면역억제·항염증 약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알레르기, 자가면역 질환, 염증성 질환, 심지어 백혈병과 림프종에 이르기까지,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경험적으로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강력한가?”라는 질문은 놀라울 정도로 오랫동안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효과가 분명하니, 굳이 분자적 기전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실제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 논문은 바로 그 안일함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 연구입니다.
60년의 공백이 생긴 이유
글루코코르티코이드의 면역억제 효과는, Peter Nowell의 PHA 림프구 활성화 실험 직후인 1961년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PHA로 유도되는 림프구 증식이 스테로이드에 의해 강하게 억제된다는 사실은, 세포면역학의 출발점과 거의 동시에 관찰된 현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이 현상은 “스테로이드는 면역을 억제한다”는 현상적 진술에 머물렀습니다. 분자 수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호한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면역억제를 ‘비특이적 효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세포를 죽이거나, 전반적인 대사를 떨어뜨리거나, 어딘가를 막연히 ‘망가뜨리기’ 때문에 면역이 억제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런 인식은 1970–80년대를 거치며 점차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IL-2가 T세포 증식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면역 반응이 점점 정밀한 유전자 조절의 결과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부터입니다.
1990년대 초반의 그럴듯한 오해
1990년대 초반에 제시되었던 지배적 모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는 핵으로 이동한 뒤, IL-2 유전자 발현에 중요한 전사인자(AP-1, 이후에는 NF-κB)와 직접 결합하여 이들이 DNA에 결합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방해한다는 모델입니다.
이 모델은 꽤 설득력 있어 보였습니다. 실제로 과발현 시스템에서는 전사인자와 수용체 사이의 상호작용도 관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델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 실험들의 대부분이 생리적 조건과는 거리가 먼 인위적인 시스템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Michael Karin은 바로 이 지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핵 안에서 단백질들이 서로 몸싸움을 벌여 전사를 막는다”는 설명이 과연 생체 내에서도 주된 기전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Karin 논문의 핵심 전환점
이 논문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글루코코르티코이드가 NF-κB를 직접 억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데 있습니다.
NF-κB는 면역계에서 가장 중심적인 전사인자 중 하나입니다. 수많은 사이토카인, 염증 매개 분자, 항원제시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좌우합니다. 이런 분자를 직접 때려 눕히는 방식은, 오히려 위험하고 조잡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Karin 그룹이 제시한 해법은 훨씬 단순하고, 동시에 우아했습니다.
글루코코르티코이드는 NF-κB 자체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대신 IκBα의 합성을 증가시킵니다.
IκB는 NF-κB를 세포질에 붙잡아 두는 ‘억제 단백질’입니다. 세포가 활성화되면 IκB가 분해되고, 그 틈을 타 NF-κB가 핵으로 이동합니다.
Karin의 모델에서 글루코코르티코이드는 이 균형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습니다.
새로운 IκB를 대량으로 만들어, NF-κB를 다시 묶어 두고, 이미 핵에 들어간 NF-κB마저 끌어내립니다.
즉, 이 면역억제는 공격이 아니라 재봉인(sequestration)입니다.
왜 이 메커니즘이 결정적인가
이 설명이 중요한 이유는, NF-κB가 관여하는 유전자의 범위가 압도적으로 넓기 때문입니다.
IL-2 하나를 억제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IL-1, IL-6, TNF, IFN-γ, GM-CSF,
그리고 MHC 분자 발현까지,
면역 반응과 염증 반응의 거의 모든 축이 이 경로의 영향을 받습니다.
IκB 합성을 유도하는 단 하나의 기전으로, 이 모든 반응을 동시에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은, 글루코코르티코이드의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효과”를 처음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이 설명은, 왜 글루코코르티코이드가 특정 항원이나 특정 세포만이 아니라 면역 반응 전체의 톤을 낮추는 약물로 작동하는지도 이해하게 해 줍니다.
현대 의학에서의 의미
이 논문의 의미는 결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덱사메타손이 생명을 구한 이유 역시, 바이러스를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NF-κB 중심의 염증 회로를 낮췄기 때문입니다.
중증 감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병원체 자체보다, 그에 대한 과도한 면역 반응입니다. Karin 논문은 이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합니다.
이 지점에서 이 논문은, 단순한 면역학 고전이 아니라 ‘의학적 면역학(Medical Immunology)’이라는 사고방식의 기초 문헌이 됩니다.
정리하며
이 논문은 새로운 분자를 발견한 연구가 아닙니다. 이미 알려져 있던 NF-κB와 IκB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재배치한 연구입니다.
그리고 그 재배치는, 60년 동안 경험에만 의존해 사용되던 약물을 비로소 이해의 대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 점에서 Karin의 1995년 논문은, “면역억제는 왜 이렇게 강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첫 번째로 설득력 있는 분자적 해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만약 스테로이드 저항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이것은 다시 내장지방이 왜 발생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것이 뇌와 면역계의 갈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면서 우리 생활에 어머 어마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