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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벡과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의 역사

발행: 2025-12-14 · 최종 업데이트: 2025-12-17

필라델피아 염색체와 BCR-ABL 융합 유전자 발견에서 출발해, 이마티닙(글리벡) 표적치료가 CML 치료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역사적으로 정리합니다.

글리벡(이마티닙)과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의 역사

만성골수성백혈병(CML, Chronic Myeloid Leukemia)은 “혈액에 생긴 암”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CML은 현대 암 연구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원인을 비교적 명확하게 지목할 수 있었고, 그 원인을 정면으로 겨냥한 약물이 실제 치료 성적을 크게 바꿨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이마티닙(Imatinib), 상품명 글리벡(Gleevec/Glivec)입니다.

“골수성”이라는 말이 뜻하는 것

혈액 세포는 뼛속의 골수에서 만들어집니다. 골수는 백혈구·적혈구·혈소판의 생산 공장처럼 작동합니다. 백혈구는 면역 기능을 담당하지만, 그 계통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 림프계(림프구 계열): B세포, T세포 등 (정밀한 면역 반응과 기억 면역)

  • 골수계(마이엘로이드 계열): 호중구, 단핵구 등 (빠른 선천면역 반응에 중요한 축)

CML은 이 중에서 골수계 백혈구 계열에서 시작되는 질환으로 이해됩니다. 다만 CML이 “외부 병원체가 들어와 생기는 병”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유전자 하나만 바뀌면 모든 게 끝”처럼 단순화할 수도 없습니다. CML은 매우 강력한 핵심 구동 요인(driver)이 알려져 있는 질환이지만, 병의 진행과 예후에는 추가적인 변화와 환경 요인이 함께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60년,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단서’가 되다

1960년 피터 노웰(Peter C. Nowell)과 데이비드 헝거포드(David A. Hungerford)는 CML 환자 세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비정상적으로 작은 염색체를 보고합니다. 이것이 이후 필라델피아 염색체(Philadelphia chromosome)로 불리게 됩니다.

이 발견은 “암은 유전적 이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실험실 수준에서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즉, 특정 암에서 특정 유전적 표지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1973년, ‘짧아진 염색체’의 정체가 밝혀지다

초기에는 22번 염색체가 단순히 “짧아진 것처럼” 보였지만, 1973년 재닛 로울리(Janet Rowley)는 이를 정밀 분석해 9번과 22번 염색체 사이의 상호 전위 t(9;22)라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이 전위로 인해 생기는 것이 BCR-ABL 융합 유전자이며, 이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은 항상 켜진 상태의 티로신 키나제(tyrosine kinase)처럼 작동해 세포 증식 신호를 과도하게 유지시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 단계에서 CML은 “정체가 불분명한 백혈병”이 아니라, 분자적 원인에 접근 가능한 질환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4) 글리벡 이전 시대: 치료는 있었지만 ‘근본 표적’은 아니었습니다

글리벡이 등장하기 전에도 CML 치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치료의 중심은 다음과 같은 전략이었습니다.

  • 증식 억제 중심의 약물 치료(혈구 수를 낮추는 방식)

  • 인터페론 기반 치료(일부 환자에서 효과가 있었지만, 부작용과 반응의 한계가 문제)

  • 조혈모세포 이식(골수이식)(치료 가능성이 있으나 대상·위험·접근성 제한)

즉, 치료는 존재했지만 “원인 자체를 정밀하게 겨냥한다”는 개념은 아직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CML이 표적치료의 교과서가 된 이유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단백질(ABL 키나제)을 직접 억제하는 약물이 실제로 강력한 임상 효과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표적치료의 상징: BCR-ABL 억제제 이마티닙(글리벡)

브라이언 드루커(Brian J. Druker) 연구팀은 BCR-ABL의 키나제 활성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후보 물질(STI-571)을 임상에서 평가했고, 2001년 NEJM에 발표된 연구는 당시 치료에 실패했던 환자에서도 의미 있는 항백혈병 효과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어 2003년 NEJM의 대규모 비교 연구에서는, 새로 진단된 만성기 CML에서 이마티닙이 기존 치료(인터페론 + 저용량 시타라빈)보다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고 보고됩니다.

그리고 2001년 FDA 승인 문서와 이후 승인 요약 논문에서도, 이마티닙이 CML 치료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점이 공식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내성과 후속 약물: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글리벡은 CML 치료의 판도를 바꿨지만, 모든 환자에게 항상 동일한 효과를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부에서는 치료 중 내성이 생길 수 있고, 그에 따라 2세대·3세대 티로신 키나제 억제제(예: 다사티닙, 니로티닙, 포나티닙 등)가 개발되어 치료 선택지가 넓어졌습니다.
이 흐름이 중요한 이유는, 표적치료가 “정답 하나로 끝나는 치료”가 아니라 장기 관리와 전략(전환·병용·내성 대응)을 포함하는 체계로 진화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글리벡이 남긴 의미

필라델피아 염색체 발견에서 시작된 CML 연구는 “암을 유전자 수준에서 이해하고, 그 기전을 직접 겨냥한다”는 정밀의학의 방향을 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글리벡은 그 흐름을 상징하는 약물로 남아 있으며, 한 질환의 치료 성적 변화뿐 아니라 암 치료가 어떻게 ‘표적 중심’으로 이동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습니다.

관련 글

References

  1. Nowell PC. Discovery of the Philadelphia chromosome. (Review, PMC).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934591/

  2. Rowley 관련 정리: Translation of the Philadelphia chromosome into therapy for CML. Blood (ASH). https://ashpublications.org/blood/article/112/13/4808/24918/Translation-of-the-Philadelphia-chromosome-into

  3. Druker BJ, et al. Efficacy and Safety of a Specific Inhibitor of the BCR-ABL Tyrosine Kinase in CML. NEJM (2001).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200104053441401

  4. O’Brien SG, et al. Imatinib compared with interferon and low-dose cytarabine for newly diagnosed CML. NEJM (2003).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022457

  5. U.S. FDA. Gleevec (imatinib mesylate) NDA approval document / approval summary. https://www.accessdata.fda.gov/drugsatfda_docs/nda/2001/21-335_Gleevec_Approv.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