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 암 치료의 성과를 부정한 통계학적 도전
발행: 2025-12-21 · 최종 업데이트: 2025-12-21
Bailar–Smith 논문은 왜 근치수술을 포함한 20세기 암 치료 패러다임에 근본적 의문을 던졌는가
근치수술을 흔든 통계학적 충격
암 치료는 오랫동안 꾸준히 ‘진보’해 왔다고 여겨졌습니다. 새로운 항암제가 등장했고, 수술은 더 정교해졌으며, 방사선 치료 역시 기술적으로 크게 발전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의학 내부에서는 자연스러운 성과로 받아들여졌고, 사회적으로도 암 치료는 분명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인식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의학적 기술의 발전이 실제로 암 사망의 감소로 이어졌는가 하는 점입니다. 치료가 정교해졌다는 사실과, 사람들이 실제로 덜 죽고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같은 뜻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통계 해석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의학적 진보’라고 부를 것인지, 그리고 그 진보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암처럼 오랜 시간 막대한 연구와 자원이 투입된 분야에서는, 치료 기술의 발전과 인구 수준의 결과를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Bailar와 Smith는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렸습니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암 치료는 발전하고 있다”는 말을 감정적으로 부정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발전이 실제로 어떤 성과로 나타나고 있는지, 가장 냉정한 지표로 다시 확인하자는 데 있었습니다.
Bailar–Smith 논문은 무엇을 문제 삼았는가
1986년, 미국 의학계는 한 편의 논문으로 큰 충격을 받습니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이었습니다. “암에 대한 진보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에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은 특정 수술법 하나를 직접 비판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근치수술을 포함한 20세기 암 치료 전반의 성과를 인구 수준의 통계로 다시 묻는 논문이었습니다.
이 논문이 미친 영향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이 논문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국제적으로는 파장이 컸습니다. 이 글은 “현대의학은 암 치료에서 실제로 얼마나 성과를 냈는가”라는 질문을 공론장으로 끌어냈고, 그 과정에서 주류 암 치료에 대한 회의와 대체요법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졌습니다. 물론 이런 변화가 이 논문 하나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당시의 낙관적 분위기에 강한 제동을 건 상징적 사건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논문의 저자와 성격
이 논문의 저자는 존 C. 베일러와 일레인 M. 스미스입니다.
이들은 외과의사도, 종양내과 의사도 아니었습니다. 통계학과 역학의 언어로 암 치료를 평가하던 연구자들이었습니다.
이 점은 중요합니다. 이 논문은 “어떤 수술이 더 좋으냐”를 다투는 글이 아니라, 우리는 정말로 암을 정복하고 있는가라는 더 큰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연구 방법: 치료 성과가 아니라 ‘사망률’을 보았다
당시 암 치료 연구는 주로 종양 크기 감소, 무병 생존 기간, 5년 생존율 같은 지표를 사용했습니다. Bailar와 Smith는 이런 지표를 의도적으로 뒤로 미뤘습니다. 대신 가장 단순하지만 피하기 어려운 지표를 앞세웠습니다.
연령 보정 암 사망률 (age-adjusted cancer mortality)
이 지표의 장점은 분명합니다. 진단이 더 많이 되었는지, 조기 발견이 늘었는지와는 별개로, 실제로 암 때문에 죽는 사람이 줄었는지만 묻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미국의 공식 통계를 이용해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암 사망률의 흐름을 분석했습니다.
핵심 결과: “거의 진보가 없다”
논문의 결론은 단순하지만 충격적이었습니다. 전체 암 사망률은 수십 년 동안 거의 감소하지 않았고, 일부 암에서 보인 개선은 다른 암의 악화에 의해 상쇄되었습니다. 저자들은 당시 널리 이야기되던 치료의 발전 중 상당 부분이, 인구 수준에서 보면 진단 증가와 통계적 착시에 가까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중요한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We are losing the war against cancer.
(우리는 암과의 전쟁에서 지고 있다)
이 결론은 곧바로 다음과 같이 읽혔습니다. 광범위한 수술과 공격적인 치료, 조기 발견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인구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암 사망은 기대만큼 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이 논문이 ‘근치수술’과 연결되는가
Bailar-Smith 논문은 근치적 유방절제술을 직접 겨냥한 글은 아닙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는 근치수술 패러다임 전체를 다시 묻게 만드는 논문이었습니다.
이 논문이 던진 질문은 명확합니다. 더 일찍 발견했는데 왜 사망률은 줄지 않는가, 더 크게 절제했는데 왜 전체 생존은 크게 변하지 않는가, 그리고 치료 성과를 개별 환자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결과로 보면 무엇이 남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 물음은 결국 “조기 발견 + 광범위 절제 = 생존 연장”이라는 오래된 공식을 흔들었습니다. 근치수술은 바로 이 전제 위에 세워진 전략이었기 때문입니다.
의학계의 반응: 격렬한 반발과 불편한 침묵
논문 발표 직후 반응은 크게 갈렸습니다. 외과와 종양학 쪽에서는 “현장의 실제 발전을 통계가 왜곡했다”는 반발이 나왔고, 예방의학과 역학 쪽에서는 “불편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평가가 뒤따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논문이 명확하게 철회되거나 완전히 반증된 적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대신 공개적으로 정면 반박하기보다는, 점차 덜 인용되고 덜 언급되는 방향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논문은 과학적으로만 논쟁적인 글이 아니라, 의학계에 사회적으로도 불편한 글이었습니다.
이 논문이 남긴 결정적 의미
Bailar-Smith 논문의 진짜 영향은 “암 치료는 쓸모없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에 있지 않습니다.
그 핵심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치료 효과는 ‘잘 고른 환자’가 아니라 ‘전체 인구’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이 관점은 이후 근치수술의 축소, 무작위 대조군 연구의 강조, 그리고 생존율보다 사망률을 더 중시하는 평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음 글의 주제인 유방암 임상시험과 메타분석이 등장합니다. 즉, 개별 치료의 인상적인 성과보다 인구 수준의 결과를 더 엄격하게 따지는 흐름이 본격화된 것입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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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ilar JC, Smith EM. Progress Against Cancer?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1986.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19860508314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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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kherjee S. The Emperor of All Maladies: A Biography of Cancer. Scribner, 2010. https://www.yes24.com/product/goods/531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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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h HG. Overdiagnosed: Making People Sick in the Pursuit of Health. Beacon Press, 2011.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991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