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크란 협력체는 누가 만들었을까
발행: 2025-12-21 · 최종 업데이트: 2025-12-21
아치 코크란, 이언 챌머스, 피터 괴체의 역할로 정리하는 코크란 협력체의 탄생사
코크란 협력체는 누가 만들었을까
― 아치 코크란의 업적과 이언 챌머스, 피터 괴체의 정확한 역할
의학 논문이나 진료지침을 보다 보면 “코크란 리뷰(Cochrane Review)”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름 때문에 많은 분들께서는 코크란 협력체가 매우 오래된 조직이거나, 아치 코크란이라는 인물이 직접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하시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최근이며, 인물별 역할을 나누어 보면 훨씬 명확해집니다.
이 글에서는 코크란 협력체(Cochrane Collaboration)의 탄생 배경을 정리하고, 특히 아치 코크란의 대표적인 업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코크란 협력체는 언제 만들어졌나
Cochrane Collaboration는 1993년, 영국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했습니다.
20세기 중반이 아니라 1990년대에 만들어진 비교적 젊은 조직이라는 점은 종종 놀라움을 줍니다. 코크란이 오래된 전통 기관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출범 이후 짧은 시간 안에 전 세계 의학 가이드라인과 정책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아치 코크란: 근거중심의학의 문제를 제기한 사람
아치 코크란은 코크란 협력체를 만든 사람은 아니지만, 이 조직이 탄생하게 만든 문제의식을 가장 먼저 제기한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Effectiveness and Efficiency』(1972)
아치 코크란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1972년에 출간된 저서
Effectiveness and Efficiency 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당시 의료 시스템을 향해 매우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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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효과가 입증된 치료만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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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자원은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가?”
그는 많은 의료 행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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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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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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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
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며, 무작위 대조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이라는 객관적 방법으로 검증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책은 이후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의 철학적 출발점으로 평가받습니다.
2️⃣ 무작위 대조시험(RCT)의 윤리적 중요성 강조
아치 코크란은 RCT를 단순한 연구 방법이 아니라, 윤리적 의무로 보았습니다.
그의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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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가 있는지 모르는 치료를 관행대로 계속 사용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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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비윤리적 행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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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치료 효과를 공정하게 비교하는 시험이 필요하다
이 관점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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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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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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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가이드라인
의 기준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3️⃣ “체계적 문헌고찰이 없다”는 문제 제기
아치 코크란은 생전에 다음과 같은 지적을 남겼습니다.
“의학에는 무작위 대조시험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것들을 종합해 정리한 체계적 문헌고찰은 거의 없다.”
이 말은 훗날 코크란 협력체의 핵심 미션이 됩니다.
즉, 개별 연구를 늘리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연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라는 요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를 제기한 뒤, 1988년에 사망하였고, 실제 조직 설립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이언 챌머스: 사상을 조직으로 만든 사람

코크란 협력체의 실질적 창립 주도자는 이언 챌머스입니다. 이언 챌머스는 1980년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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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 결과가 흩어져 있어 실제 진료에 활용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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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불필요하거나 해로운 치료가 반복된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는 1992년 산과 분야에서 대규모 체계적 문헌고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이를 토대로 1993년 코크란 협력체를 공식 출범시켰습니다. 조직의 구조와 운영 원칙은 이언 챌머스의 설계에 기반합니다.
피터 괴체: 초기 핵심 멤버이자 비판적 분석가

피터 괴체는 코크란 협력체를 만든 인물은 아니지만, 출범 초기부터 활동한 핵심 멤버였습니다.
그는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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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맘모그래피 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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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암 PSA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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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효과와 부작용 평가
에서 통계와 설계를 다시 계산하는 재분석으로 큰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기검진의 이득이 과장되고, 과잉진단과 과잉치료의 피해가 축소되었다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종종 “코크란의 얼굴”처럼 인식되지만, 정확히 말하면 창립자가 아니라 가장 영향력 있는 초기 분석가 중 한 명입니다.
세 사람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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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 코크란:
효과와 효율을 기준으로 의료를 평가해야 한다는 사상과 문제의식을 제시 -
이언 챌머스:
그 사상을 실제 조직으로 구현한 코크란 협력체의 창립 주도자 -
피터 괴체:
출범 초기부터 참여해 가장 논쟁적인 재분석으로 영향을 미친 핵심 멤버
맺으며
코크란 협력체는 흔히 오래된 권위 기관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의학이 한 차례 낙관의 시대를 지나온 뒤, 그 결과를 냉정하게 검토하기 위해 등장한 조직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조직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의료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질문했던 아치 코크란의 업적이 있었습니다.
이 배경을 알고 코크란 리뷰를 읽으면, 단순한 결론 이상의 역사적 맥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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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hrane A. Effectiveness and Efficiency: Random Reflections on Health Ser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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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lmers I. et al. The Cochrane Collaboration: Preparing, maintaining, and disseminating systematic reviews of the effects of health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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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hrane Collaboration 공식 역사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