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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계는 언제 ‘자기’를 배우는가: 메더워·빌링엄·브렌트의 능동 획득 면역 관용

발행: 2026-01-09 · 최종 업데이트: 2026-01-09

1953년 메더워, 빌링엄, 브렌트는 배아 시기에 외래 세포를 노출하면 면역계가 이를 ‘자기’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논문은 면역 관용이라는 개념을 실험적으로 확립한 고전이다.

The Active Acquired Tolerance of Foreign Cells
R. E. Billingham, L. Brent, P. B. Medawar · Nature · 1953
배아 시기에 외래 세포를 노출하면 면역계가 이를 ‘자기’로 인식하게 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면역 관용 연구의 출발점.

질문의 전환: 왜 어떤 외래 조직은 제거되지 않는가

1950년대 초반의 면역학은 여전히 항체 중심 세계관에 놓여 있었습니다. 메더워의 1944년 피부 이식 연구와 체이스의 1945년 세포 전달 실험은 이미 그 틀에 균열을 내고 있었지만, 면역계가 언제, 어떻게 ‘자기(self)’를 정의하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 논문이 바로 1953년 피터 메더워, 루퍼트 빌링엄, 레슬리 브렌트가 발표한 The Active Acquired Tolerance of Foreign Cells입니다.

이 논문은 단순히 이식이 잘 되었다는 보고가 아니라, 면역계가 스스로의 반응성을 ‘학습’한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실험적으로 증명한 연구였습니다.

이론적 배경: 버넷의 가설과 실패

이 연구의 이론적 출발점은 맥팔레인 버넷의 가설이었습니다. 버넷은 1949년, 배아 시기에는 면역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항원을 노출하면, 이후 그 항원에 대해 반응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추론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클론 선택 이론(clonal selection theory)으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사유였지만, 버넷 본인은 이를 실험적으로 입증하지는 못했습니다. 즉,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실험적 해법이 없던 상태였습니다.

자연이 먼저 보여준 사례: 레이 오언의 키메라 송아지

흥미롭게도, 실험실이 아닌 자연에서 먼저 단서가 등장했습니다. 1945년 레이 오언은 소의 이란성 쌍둥이에서 혈액 키메라 현상을 보고했습니다.

소는 태반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 쌍둥이 태아 사이에 혈액 전구세포가 교환됩니다. 그 결과 태어난 송아지들은 서로 다른 유전형의 적혈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이를 외래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배아 시기에 노출된 항원이 이후 면역 반응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자연 실험이었습니다.

실험 설계의 핵심: 배아에게 ‘외래’를 먼저 보여주다

빌링엄·브렌트·메더워의 접근은 명확했습니다. 면역계가 형성되기 전에 외래 세포를 먼저 주입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임신 15–16일 차의 CBA 계통 생쥐 배아에, 성체 A 계통 생쥐에서 얻은 비장·신장·고환 유래 세포 혼합물을 극소량 주입했습니다. 이 시점은 면역계가 아직 완전히 기능하지 않는 발생 단계였습니다.

이후 태어난 생쥐들이 성체가 되었을 때, 연구진은 A 계통 피부를 이식해 반응을 관찰했습니다.

결과: 거부되지 않는 피부

대조 실험에서는 A 계통 피부를 이식하면 약 11일 만에 항상 거부 반응이 나타났고, 재이식 시에는 더 빠른 두 번째 세트 거부 반응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배아 시기에 A 계통 세포를 주입받은 생쥐들 중 일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식된 A 계통 피부는 수개월 동안 정상적으로 유지되었고, 반복 이식에도 거부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생쥐들이 면역결핍 상태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계통(B, C 등)의 피부를 이식하면 정상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였습니다.

즉, 이 관용 상태는

  • 항원 특이적이며

  • 선택적이고

  • 전신 면역 기능은 정상인 상태였습니다.

관용은 이식편의 문제가 아니다

연구진은 중요한 통제 실험을 수행합니다. 관용 상태의 생쥐에, A 계통에 대해 이미 면역이 형성된 다른 개체의 면역 세포를 주입한 것입니다.

그 결과, 수개월 동안 유지되던 피부 이식편은 단기간 내에 거부되었습니다. 이는 이식편이 변형되었거나 항원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숙주의 면역계가 해당 항원을 공격하지 않도록 ‘침묵’ 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연구진은 이를 “면역계의 실패”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획득된 관용(active acquired tolerance)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네 가지 핵심 결론

논문은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정리됩니다.

  1. 조류와 포유류 모두에서 면역 관용은 발생할 수 있다.

  2. 면역 관용은 항원 특이적이다.

  3. 관용은 이식편이 아니라 숙주의 면역 반응성 변화에 의해 설명된다.

  4. 관용 개체의 생식 능력은 정상이며, 관용은 유전되지 않는다.

이 네 가지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면역 관용의 정의입니다.

그럼에도 남아 있던 한계

흥미로운 점은, 이 논문에서도 여전히 항체 형성 체계가 면역 반응의 중심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메더워 자신이 이미 1944년에 항체가 아닌 반응을 관찰했음에도, 1953년에도 면역 반응의 “표준 언어”는 여전히 항체였습니다.

이는 면역학이 현상을 관찰하는 수준과, 그것을 설명하는 개념적 언어 사이에서 겪던 지연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역사적 의미: ‘자기’는 태어날 때 결정된다

이 논문은 이후 중앙 관용(central tolerance), 자기–비자기 구분, 림프구 교육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됩니다. 면역계는 완성된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발생 과정 속에서 자기의 경계를 학습한다는 생각이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이 공로로 피터 메더워맥팔레인 버넷은 196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됩니다.

결론: 제거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면역계

면역계의 본질은 단순히 “외래를 제거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기능은 무엇을 제거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1953년의 이 논문은 면역학이 그 질문에 처음으로 실험적 답을 내놓은 순간이었습니다.

관련 글

관련 문헌 (MLA)

Billingham, R. E., & Brent, L. (1956). Acquired tolerance of foreign cells in newborn animal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Series B-Biological Sciences, 146(922), 78-90. https://www.nature.com/articles/172603a0

Burnet, F. M., & Fenner, F. (1949). The Production of Antibodies. Monograph of the Walter and Eliza Hall Institute, Melbourne.

Owen, R. D. (1945). Immunogenetic consequences of vascular anastomoses between bovine twins. Science, 102(2651), 40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