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면역은 혈청이 아니라 세포에 있다: 체이스의 지연형 과민반응 전달 실험
발행: 2026-01-09 · 최종 업데이트: 2026-01-09
1945년 메릴 체이스는 결핵 항원에 대한 지연형 과민반응이 혈청이 아닌 세포의 전달로 매개됨을 증명했다. 이 논문은 세포매개 면역이 실험적으로 확립된 결정적 순간을 담고 있다.

항체로 설명되지 않는 피부 반응
20세기 중반까지 면역 반응의 표준적 설명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항원이 체내에 들어오면 혈청 속 항체가 이를 인식하고 결합해 제거한다는 모델이었습니다. 즉각적인 중화 반응, 보체 활성화, 응집 반응 등 대부분의 면역 현상은 이 틀 안에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피부에서 관찰되는 일부 면역 반응은 이 설명과 맞지 않았습니다. 특정 항원을 피부에 주입한 뒤 즉각 반응이 아니라 하루 이상 지나서 나타나는 염증, 그리고 그 염증이 항체 농도와 무관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은 기존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문제를 실험적으로 정면에서 다룬 인물이 바로 메릴 체이스입니다.
체이스의 배경: 접촉 과민반응 연구에서 출발하다
체이스는 뉴욕의 록펠러 연구소에서 칼 란트슈타이너와 함께 연구하며, 항체로 설명되지 않는 면역 반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란트슈타이너는 이미 혈액형 연구를 통해 항원 특이성 개념을 확립한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접촉성 과민반응(contact sensitivity)이라는 독특한 면역 현상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접촉성 과민반응의 대표적 예는 옻나무나 독성 식물에 의한 피부염입니다. 항체가 관여한다고 보기에는 반응이 너무 느리고, 혈청을 옮겨도 재현되지 않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체이스는 이 반응이 면역 반응이라면, 그 정보는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결핵 항원과 지연형 과민반응 모델
1945년 논문에서 체이스는 실험 모델로 결핵균 항원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사멸된 결핵균을 기름과 함께 동물에 주입해 면역을 유도했고, 수주 후 정제 단백질 유도체(PPD, purified protein derivative) 또는 당시 사용되던 올드 튜버큘린을 피부에 주사했습니다.
그 결과 주입 직후에는 아무 변화가 없지만, 24~72시간이 지나면서 국소적인 발적, 경결, 부종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오늘날 결핵 피부반응 검사로 잘 알려진 전형적인 지연형 과민반응(delayed-type hypersensitivity)입니다.
이 반응은 항원–항체 반응과 달리 시간 지연을 보이며, 조직 내 세포 침윤이 주요 병리 소견입니다.
핵심 질문: 이 반응은 무엇으로 전달되는가
체이스 논문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이 면역 반응은 혈청으로 전달되는가, 아니면 세포로 전달되는가?
이를 검증하기 위해 체이스는 당시로서는 매우 과감한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그는 면역이 형성된 동물의 복강 내에 무균성 염증을 유도해 복강 삼출 세포(peritoneal exudate cells)를 대량으로 확보했습니다.
이 세포 집단은 대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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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형핵 백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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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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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단핵세포
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체이스는 이 세포들을 그대로 다른 동물에게 주입했습니다.
입양 전달 실험의 결과
세포를 전달받은 동물은 일정 시간이 지난 뒤 결핵 항원에 대해 명확한 피부 과민반응을 보였습니다. 즉, 원래 결핵에 노출된 적이 없는 동물도, 세포만 전달받으면 동일한 면역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반면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반응이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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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청만 전달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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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를 가열 처리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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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를 냉동·해동했을 때
이는 면역 반응의 전달에 살아 있는 세포의 기능적 무결성이 필수적임을 의미합니다.
어떤 세포가 역할을 하는가
체이스는 자신이 전달한 세포 집단이 완전히 순수하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반응이 혈청으로는 절대 전달되지 않고, 세포 집단으로만 전달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복강 삼출 세포뿐 아니라 비장 세포와 림프절 세포역시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반응을 매개하는 세포가 림프계 조직에 널리 분포해 있음을 시사합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포들은 주로 항원 특이적 T 림프구였을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체이스 당시에는 림프구 아형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항체 면역과 다른 반응 양상
체이스가 기술한 지연형 과민반응은 기존 항체 반응과 명확히 구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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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 발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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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 부위에는 림프구와 단핵세포가 축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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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체 활성이나 즉각적인 중화 반응이 관찰되지 않습니다.
이는 면역 반응이 단일한 메커니즘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실행 경로를 가진 여러 체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논문의 역사적 의미
체이스의 1945년 논문은 단 두 페이지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매우 큽니다. 이 논문은 처음으로 다음 사실을 실험적으로 입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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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 반응은 혈청 없이도 전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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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면역 반응의 정보는 세포에 저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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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 반응에는 항체와 다른 실행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이는 이후 세포매개 면역(cell-mediated immunity) 개념이 정립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T 림프구 이전의 T 림프구 논문
체이스는 자신의 논문에서 T 림프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실험을 T 세포 면역의 최초의 기능적 증명으로 해석합니다.
T 세포가 흉선 유래 세포로 규정되고, 항원 인식 메커니즘이 밝혀지기까지는 이후 수십 년이 더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역 반응의 주체가 세포라는 사실은 이미 1945년에 실험적으로 증명되어 있었습니다.
결론: 세포가 기억하고 반응한다
체이스의 연구는 면역학의 언어를 바꾸었습니다. 면역 반응은 더 이상 “혈청 속 항체의 농도”로만 설명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특정 세포가 항원을 기억하고, 다시 만났을 때 반응한다는 개념이 실험적으로 확립된 것입니다.
이 짧은 논문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세포매개 면역이라는 개념의 출발점이며, 면역학이 복수의 실행 시스템을 가진 학문으로 발전하는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관련 문헌 (MLA)
Chase, Merrill W. “The Cellular Transfer of Cutaneous Hypersensitivity to Tuberculin.” Proceedings of the Society of Experimental Biology and Medicine, vol. 59, 1945, pp. 134–135.
https://pubmed.ncbi.nlm.nih.gov/21024317/
Landsteiner, Karl, and Merrill W. Chase. “Studies on the Sensitization of Animals with Simple Chemical Compounds.”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 vol. 73, 1941, pp. 431–438.
https://rupress.org/jem/article/73/3/431/4812
Silverstein, Arthur M. A History of Immunology. Academic Press, 2009.
https://www.sciencedirect.com/book/9780123705860/a-history-of-immun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