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 암은 혈관을 부른다: 유다 포크먼과 신생혈관 억제의 역사
발행: 2026-05-05 · 최종 업데이트: 2026-05-09
유다 포크먼이 제안한 종양 신생혈관 가설이 어떻게 암 생물학과 표적치료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는지, 성과와 한계를 함께 정리합니다.
암세포만 보던 시대의 질문
20세기 중반 암 연구의 초점은 주로 암세포 자체에 있었습니다. 암세포가 왜 무한히 분열하는지, 어떤 바이러스나 유전자가 세포를 변형시키는지가 핵심 질문이었습니다. 혈관은 그 주변부에 있는 구조물처럼 보였습니다. 종양이 커지면 당연히 혈관도 따라 생긴다고 여겼지, 혈관 형성이 암의 진행을 결정하는 능동적 과정이라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외과의사이자 연구자였던 **유다 포크먼(Judah Folkman)**은 이 지점에서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암세포가 아무리 빠르게 분열할 수 있어도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일정 크기 이상 자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종양 성장은 암세포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종양이 주변 조직과 혈관계를 어떻게 동원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1971년의 가설: 암을 직접 죽이지 않고 공급로를 막는다
포크먼은 1971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한 논문에서 종양 성장이 **신생혈관형성(angiogenesis)**에 의존한다는 가설을 체계적으로 제시했습니다. 핵심은 단순했습니다. 작은 종양은 혈관 없이도 확산으로 버틸 수 있지만, 더 커지려면 새 혈관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치료 전략도 바꾸었습니다. 기존 항암치료가 주로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방식이었다면, 포크먼의 제안은 암의 생존 기반을 겨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암세포로 향하는 산소와 영양분의 통로를 제한하면 종양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당시에는 파격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종양을 혈관, 면역세포, 기질세포가 함께 만드는 생태계로 보는 관점이 아직 자리 잡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증거가 쌓이기까지 걸린 시간
포크먼의 주장은 처음부터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종양이 혈관을 유도한다는 개념은 실험적으로 보여주기 어렵고, 혈관을 막는 물질을 찾아 치료제로 만드는 일은 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각막과 같은 혈관이 적은 조직을 이용한 실험, 종양이 분비하는 혈관 형성 인자에 대한 연구, 내피세포 생물학의 발전이 이어지면서 가설은 점차 검증 가능한 연구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VEGF(vascular endothelial growth factor) 같은 혈관 형성 신호가 밝혀졌고, 종양미세환경이라는 개념도 암 연구의 중심으로 들어왔습니다. 암은 암세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조직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질병이라는 이해가 넓어진 것입니다.
아바스틴의 승인과 기대의 조정
2004년 미국 FDA는 VEGF를 겨냥하는 항체 치료제 **베바시주맙(bevacizumab, Avastin)**을 전이성 대장암 치료에 승인했습니다. 포크먼이 제안했던 “혈관을 겨냥하는 항암치료”가 임상에서 현실화된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다만 이 역사는 승리담으로만 읽기 어렵습니다. 혈관 억제제는 일부 암에서 생존기간을 늘리고 병의 진행을 늦추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암을 단독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약은 아니었습니다. 종양은 다른 혈관 형성 경로를 이용하거나, 저산소 환경에 적응하거나, 주변 조직을 다시 재편하며 치료 압력에 대응합니다.
그래서 신생혈관 억제 치료의 진짜 의미는 “암을 굶겨 없앤다”는 단순한 구호보다 더 정교합니다. 암 치료가 암세포만이 아니라 암이 의존하는 환경까지 겨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임상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남은 유산
포크먼의 신생혈관 가설은 현대 암 연구에 세 가지 유산을 남겼습니다.
- 암을 세포 내부의 유전자 이상만이 아니라 주변 미세환경과 함께 이해하게 만들었습니다.
- 항암치료의 표적을 암세포 밖으로 넓혔습니다.
- 하나의 강력한 가설이 임상 치료로 이어지려면 수십 년의 검증과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포크먼의 연구는 암을 단순한 덩어리가 아니라, 몸의 정상 시스템을 빌려 성장하는 조직으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면역치료, 혈관 억제제, 기질 표적치료가 함께 논의되는 배경에는 이 관점의 변화가 놓여 있습니다.
References
- Folkman J. Tumor angiogenesis: therapeutic implications. N Engl J Med. 1971;285(21):1182-1186.
- Folkman J. Angiogenesis in cancer, vascular, rheumatoid and other disease. Nat Med. 1995;1(1):27-31.
- Ferrara N, et al. Discovery and development of bevacizumab, an anti-VEGF antibody for treating cancer. Nat Rev Drug Discov. 2004;3(5):391-400.
- Cooke PV. Judah Folkman (1933-2008). Nature. 2008;451:781.
- Cao Y. Judah Folkman: a pioneer in the field of angiogenesis. J Intern Med. 2008;264(6):52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