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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전해지는 최초의 유방 종양 환자, 아토사

발행: 2025-12-10 · 최종 업데이트: 2025-12-17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통해 살펴본 아토사와 고대 세계의 유방 종양 인식

다리우스 왕의 왕비 아토사
그림 1. 페르시아 다리우스 왕의 왕비 아토사, 그녀는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유방암 환자라고 알려져 있다.

고대 인물 가운데 질병의 구체적인 증상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토사(Atossa)는 예외적인 사례입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길지 않지만, 역사와 의학 양쪽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토사는 페르시아 제국의 핵심 인물일 뿐 아니라, 유방에 발생한 종양을 앓았다고 이름과 함께 전해지는 가장 이른 사례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토사가 특별한 이유는 그녀가 다리우스 1세(Darius I)의 왕비였다는 점,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아토사는 누구였는가

아토사는 아케메네스 왕조 출신으로,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인 키루스 2세(Cyrus the Great)의 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이복형제인 캄비세스 2세(Cambyses II)의 아내가 되었고, 이후 정변을 거쳐 즉위한 다리우스 1세의 왕비가 됩니다. 또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으로 유명한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크세르크세스 1세는 영화 300에서 "나는 관대하다"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 맞습니다. 영화속에서는 희화되었지만 그도 유명한 페르시아의 왕입니다.

이러한 가계만 보더라도, 아토사는 단순한 왕비가 아니라 제국의 핵심 권력층 한가운데에 있었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대 사료에서는 그녀가 왕위 계승 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다리우스 1세와 페르시아 제국

아토사의 남편인 다리우스 1세는 흔히 마라톤 전투의 패배로만 기억되지만, 역사적으로는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과 통치 체계를 정비한 뛰어난 군주로 평가됩니다. 그는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도로망과 조세 제도를 정비했으며, 이른바 ‘왕의 길(Royal Road)’로 불리는 교통망을 구축했습니다.

그의 통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일화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등장합니다. 다리우스는 서로 다른 민족에게 장례 풍습을 묻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각 문화가 자기 관습만을 정상으로 여기고 타문화는 야만으로 판단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는 제국을 다스리는 통치자에게 관용과 상대성 인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토사는 단순히 왕의 배우자가 아니라, 제국의 사상적·정치적 중심부에 있던 인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토사의 유방 종양 기록

아토사의 질병에 대한 기록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의 『역사』 제3권에 등장합니다. 그는 아토사의 가슴에 종양이 생겼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병변이 악화되었다고 서술합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병이 처음 발생했을 때 아토사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증상이 악화되자, 그녀는 당시 페르시아 궁정에 있던 그리스인 의사 데모케데스(Democedes)를 불러 자신의 상태를 보여주게 됩니다.

데모케데스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치료의 대가로 한 가지 약속을 요구합니다. 그는 치료 후 자신이 요청하는 일을 들어달라고 했고, 대신 수치심을 느낄 만한 요구는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후 아토사는 회복된 것으로 서술되며, 그 대가로 다리우스를 설득해 그리스 원정을 지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것은 정말 유방암이었을까

현대의 의학사 연구자들은 이 기록을 유방암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슴에 발생한 종양, 시간이 지나며 악화되는 경과, 그리고 외과적 개입이 암시된 점은 이러한 해석의 근거가 됩니다. 당시 유방 종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외과적 제거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수술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다만, 냉정하게 보자면 이 기록만으로 해당 질환을 확정적으로 유방암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염증성 질환이나 농양과 같은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토사의 사례가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이유는, 이름이 특정된 인물의 유방 종양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록된 가장 이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아토사의 이후 삶

헤로도토스는 아토사의 병 이후 삶을 상세히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아들 크세르크세스의 즉위를 적극적으로 후원했고, 그가 기원전 486년에 왕위에 오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분명히 전해집니다. 이를 고려하면, 아토사는 병 이후에도 상당 기간 생존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그녀가 70대 중반까지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시 의료 환경을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인 생존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며

아토사의 이야기는 암 치료의 성공 사례라기보다는, 고대 세계에서 질병이 어떻게 인식되고 기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기록을 지나치게 현대적 개념으로 해석하려는 유혹을 경계할 필요도 있습니다. 유방암이라는 진단은 어디까지나 후대의 해석일 뿐이며, 확정된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토사는 ‘이름과 증상이 함께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유방 종양 환자’라는 점에서, 의학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인물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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