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 - 혈청학의 탄생: 폰 베링과 키타사토의 1890년 논문
발행: 2026-01-08 · 최종 업데이트: 2026-04-21
디프테리아와 파상풍 연구를 통해 항체와 혈청치료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1890년 고전 논문을 살펴봅니다.


베를린에서 태어난 새로운 면역 개념
1890년 12월 4일, 에밀 폰 베링과 시바사부로 키타사토는 독일의 의학 주간지에 짧지만 대담한 논문을 발표합니다. 논문의 제목은 “디프테리아 면역과 파상풍 면역이 동물에서 어떻게 형성되는가”였고, 그 첫 문장은 사실상 선언에 가까웠습니다. 이들은 디프테리아와 파상풍을 치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방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단 두 쪽짜리 글이었지만, 그 안에는 혈청치료와 수동면역의 핵심 아이디어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연구는 우연히 등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럽 의학계는 파리를 중심으로 한 루이스 파스퇴르학파와, 베를린의 로베르트 코흐학파 사이의 치열한 경쟁 속에 있었습니다. 폰 베링과 키타사토는 바로 코흐의 연구실에서 일하던 젊은 연구자들이었습니다.
독이 문제였다: 균이 아니라 독소(toxin)
이 논문의 사상적 배경에는 독소 연구가 있었습니다. 디프테리아에서는 에밀 루(Émile Roux)와 알렉상드르 예르생(Alexandre Yersin)이 세균 배양액 속 독성 물질을 보여 주었고, 파상풍에서는 키타사토의 배양과 독소 연구가 이어졌습니다. 질병의 직접 원인이 세균의 존재 자체만이 아니라, 세균이 만들어 내는 독성 물질일 수 있다는 생각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당시 디프테리아는 단순한 실험실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1880년대 프러시아에서는 어린아이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였고, 특히 영유아와 유아에게 큰 부담을 주었습니다. 따라서 독소를 중화하는 혈청이 정말 치료제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면역학의 개념 변화인 동시에 공중보건의 돌파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폰 베링과 키타사토는 “그렇다면 면역의 표적은 균이 아니라 독소여야 한다”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시에는 단백질(protein)이라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그들은 실험을 통해 이 가설을 밀어붙였습니다.
토끼와 생쥐로 증명한 ‘혈액의 힘’
두 사람은 파상풍 실험을 중심으로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실험 설계를 사용했습니다. 논문은 먼저 명제를 세웁니다. 파상풍에 면역된 토끼와 생쥐의 면역은 혈액의 세포 성분이 아니라, 혈액의 액체 성분이 파상풍균이 만드는 독성 물질을 무해화하는 능력에 있다는 것입니다.
실험은 단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파상풍에 면역된 토끼는 정상 토끼를 죽일 수 있는 양의 20배에 해당하는 독소를 견뎠습니다. 이 토끼의 혈액을 채취해, 응고 전 액체 혈액 0.2 ml 또는 0.5 ml를 생쥐 복강에 주사했습니다. 24시간 뒤 강한 파상풍균으로 감염시키자 대조군 생쥐는 36시간 안에 죽었지만, 혈액을 받은 생쥐는 계속 건강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무세포 혈청 실험이었습니다. 면역 토끼 혈액을 세워 두어 혈청을 얻은 뒤, 생쥐 여섯 마리에게 각각 0.2 ml씩 주입했습니다. 24시간 뒤 감염시켰을 때 여섯 마리 모두 살아남았고, 대조군은 48시간 안에 죽었습니다. 원문은 이 성질이 혈관 밖으로 나온 혈액과 그로부터 얻은 세포 없는 혈청에서도 확인된다고 정리합니다.
면역된 개체가 만든 보호 성분(보통은 항체)을 다른 개체에게 옮겨 즉각적인 보호 효과를 주는 현상입니다. Behring과 Kitasato의 혈청 실험은 항체라는 분자명이 생기기 전에 수동면역을 기능적으로 보여 준 대표적 사례입니다.
혈청은 예방뿐 아니라 치료에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논문은 동물을 먼저 감염시킨 뒤 혈청을 복강에 주입해도 치료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면역 토끼 혈청 5 ml와 무균화한 파상풍 배양액 1 ml를 섞어 24시간 반응시킨 뒤, 생쥐에게 주사하는 중화 실험도 수행했습니다. 이 혼합물 속 독소량은 보통 생쥐를 죽이는 양의 300배가 넘었지만, 실험 생쥐 네 마리는 모두 살아남았습니다.
반대로 비면역 토끼의 혈액과 혈청, 그리고 소·송아지·말·양 혈청은 보호 효과도 독소 무해화 효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파상풍 독소에 중독된 비면역 토끼의 혈액과 흉강 transudate는 죽은 뒤에도 생쥐에게 파상풍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효과는 단순한 혈액 일반의 성질이 아니라, 면역된 동물의 혈액 액체 성분에 생긴 특이적 능력이었습니다.
이 논문은 오늘날 우리가 항체라고 부르는 존재를 처음으로 기능적으로 묘사한 연구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때까지 “항체”라는 용어조차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항독소는 특정 독소를 중화할 수 있는 혈청 속 보호 활성을 뜻합니다. 당시에는 분자 구조를 알지 못했지만, 이 기능적 개념이 뒤의 항체 개념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존 면역 이론에 대한 도전
폰 베링과 키타사토는 기존 면역 이론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당시 한 축은 엘리 메치니코프가 제시한 식세포 작용(phagocytosis) 중심의 설명이었고, 다른 한 축은 파스퇴르가 주장한 “약독화된 생균이 숙주의 영양을 고갈시켜 면역이 생긴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디프테리아와 파상풍은 이 설명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두 질병은 독소만으로도 치명적이었고, 생균이 없어도 면역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은 면역을 체액성(humoral) 현상으로 설명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무엇을 아직 몰랐는가
이 논문은 항체를 발견한 논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항체 분자를 규명한 논문은 아닙니다. 저자들은 혈청 속 어떤 성분이 독소를 무해화한다는 사실을 기능적으로 보였을 뿐, 그 성분의 단백질성, 구조, 특이성의 분자적 근거는 알지 못했습니다. 항독소가 나중에 감마 글로불린과 면역글로불린, 더 뒤에는 항체 단백질로 정리되는 데에는 20세기 전반의 면역화학과 단백질 연구가 더 필요했습니다.
또한 이 논문의 상세한 실험 제시는 파상풍 쪽이 중심입니다. 제목에는 디프테리아와 파상풍이 함께 들어가지만, 원문에서 길게 제시되는 결정적 실험은 파상풍 면역 토끼의 혈액과 혈청을 이용한 보호·중화 실험입니다. 디프테리아 혈청치료는 곧이어 Behring의 실용화 작업과 말 혈청 생산을 통해 역사적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이후의 갈림길: 영광과 그림자
동물실험에서 사람 치료로 넘어가는 과정은 곧장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개, 양, 염소 같은 동물이 혈청 공급원으로 쓰였고, 1891년 말 베를린의 임상 현장에서 어린 환자에게 디프테리아 혈청이 시험되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결과는 충분히 설득력 있지 않았습니다. 항독소의 양이 너무 적었고, 어느 정도의 혈청을 어떤 환자에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공백을 메운 사람이 파울 에를리히였습니다. 에를리히는 항독소의 효력을 측정하고 표준화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환자의 나이와 병세에 맞는 투여량을 계산할 수 있게 했습니다. 혈청치료가 실험실 발견에서 재현 가능한 의약품으로 바뀌려면, 항독소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효과를 숫자로 재고, 제조 단위마다 비교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1892년부터는 Farbwerke Höchst가 디프테리아 혈청 생산에 참여했고, 곧 더 많은 혈액을 얻기 위해 말(horse)이 중요한 생산 동물이 되었습니다. 1894년에는 Höchst의 혈청 생산 시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었고, 같은 해 Otto Heubner가 디프테리아 환자 치료 경험을 공개적으로 보고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1890년의 짧은 동물실험 논문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산업적 혈청 생산과 병상 치료로 연결되었습니다.
1891년, 키타사토는 일본으로 귀국해 감염병 연구소를 설립하며 일본 미생물학의 토대를 닦습니다. 반면 폰 베링은 대량 혈청 생산과 디프테리아 혈청치료의 실용화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고, 그 공로로 1901년 최초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합니다. 이 상은 디프테리아 연구에 대해서만 수여되었고, 키타사토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 선택은 오늘날까지도 과학사에서 논쟁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1890년 이 짧은 논문이 없었다면 이후의 혈청학, 항체 개념, 그리고 현대 면역학의 절반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혈액은 ‘특별한 액체’였다
논문에서 두 사람은 고대 문헌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혈액은 특별한 액체이다.”
이 문장은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이후 한 세기를 관통하는 면역학의 출발 선언에 가까웠습니다. 세포가 아니라, 혈액 속 보이지 않는 분자가 질병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이 논문을 통해 과학의 언어로 정리되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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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n Behring, Emil, and Shibasaburo Kitasato. “Über das Zustandekommen der Diphtherie-Immunität und der Tetanus-Immunität bei Thieren.” Deutsche Medizinische Wochenschrift,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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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ke, Ulrike. “125 Jahre Diphtherieheilserum: Das Behring’sche Gold.” Deutsches Ärzteblatt 112, no. 49 (2015): A2088-A2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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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stein, Arthur M. A History of Immunology. Academic Pres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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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uber, Alfred I. The Immune Self: Theory or Metaphor?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