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혈청을 처음으로 분리하다: Tiselius와 Kabat의 전기영동 연구(1939)
발행: 2026-01-08 · 최종 업데이트: 2026-01-08
1939년 Tiselius와 Kabat은 전기영동법을 이용해 항체가 감마 글로불린에 속함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 논문은 면역화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항체의 정체를 둘러싼 20세기 초 면역학의 질문
20세기 초반 면역학은 이미 항체라는 개념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항원을 주입한 동물의 혈청에서 특정 반응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그 반응을 매개하는 물질이 정확히 무엇이며 어떤 성질을 지니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의 면역 반응 연구는 주로 개체 수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동물 전체를 하나의 반응 단위로 보고, 항원을 투여한 뒤 혈청에서 침전이나 응집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면역 반응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에는 유용했지만, 항체 자체를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특히 연구자들을 괴롭혔던 문제는, 같은 항원 자극이 어떤 경우에는 보호 면역을 유도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치명적인 과민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려면 항체의 물리적·화학적 성질을 규명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단백질을 분리하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
이러한 배경 속에서 단백질을 물리적으로 분리하고 분석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됩니다. 그 중심에 있던 기술이 바로 전기영동(electrophoresis)과 초원심분리(ultracentrifugation)였습니다.

전기영동은 단백질이 지닌 전하 특성에 따라 전기장 내에서 이동 속도가 달라진다는 점을 이용한 방법입니다. 반면 초원심분리는 강력한 원심력을 가해 분자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침강 속도를 비교하는 기술이었습니다. 이 두 방법은 서로 다른 원리를 기반으로 하지만, 단백질을 정량적·재현성 있게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도구였습니다.
이 기술적 혁신의 중심지 중 하나가 스웨덴 Uppsala였으며, 이곳에서 활동하던 인물이 바로 Arne Tiselius였습니다. 그는 전기영동을 단백질 연구의 핵심 도구로 정착시킨 인물로, 이후 이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Kabat과 면역화학의 출발점
이 연구에서 실질적인 실험을 수행한 인물은 당시 젊은 연구자였던 Elvin A. Kabat이었습니다. Kabat은 이미 뉴욕에서 Michael Heidelberger와 함께 항체를 화학적으로 정량하려는 연구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Heidelberger 연구실에서 항체-항원 반응이 단순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일정한 비율과 질량 관계를 따르는 화학 반응임을 배운 Kabat에게, Uppsala에서의 경험은 결정적인 도약의 기회였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전기영동이라는 새로운 물리적 도구를 항체 연구에 처음으로 본격 적용하게 됩니다.
혈청 단백질 분획과 감마 글로불린
Tiselius와 Kabat이 연구를 시작할 당시, 혈청 단백질은 전기영동을 통해 이미 몇 개의 주요 분획으로 나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가장 빠르게 이동하는 알부민(albumin)을 시작으로, 알파(alpha), 베타(beta), 감마(gamma) 글로불린이 순차적으로 관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획들은 단순한 이동 패턴일 뿐, 각각이 어떤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항체가 이 중 어느 분획에 속하는지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과면역 혈청이 보여준 결정적 증거
Kabat은 다양한 동물을 과면역시켜 얻은 혈청을 분석 대상으로 사용했습니다. 말, 토끼, 염소, 기니피그 등 여러 종의 동물이 사용되었지만, 특히 토끼 혈청은 항체 생산량이 매우 높아 분석에 적합했습니다.
실험 결과는 일관되었습니다. 항체 활성이 높은 혈청일수록 감마 글로불린 분획이 현저히 증가했으며, 항체를 항원으로 제거한 뒤에는 해당 분획이 감소하거나 사라졌습니다. 즉, 항체 활성은 감마 글로불린 분획과 직접적으로 일치했습니다.
말에서 유래한 항체의 경우, 베타와 감마 분획 사이에 새로운 피크가 형성되었는데, 이는 항체가 항상 동일한 물리적 특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며, 종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관찰이었습니다.
항체를 ‘정의 가능한 분자’로 만들다
이 논문의 가장 큰 의의는 항체를 처음으로 정량적이고 재현 가능한 물리화학적 대상으로 만든 데 있습니다.
전기영동을 통해 항체가 혈청 단백질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항원-항체 복합체를 형성시킨 뒤 이를 분리해 항체를 정제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더 나아가 초원심분리 결과와 결합함으로써, 이후 7S와 19S 면역글로불린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는 기초가 마련되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항체는 단순히 “면역 반응의 결과물”이 아니라, 분리·측정·비교가 가능한 분자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면역학은 생리학적 관찰의 단계에서 벗어나 화학과 물리학의 언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짧지만 결정적인 고전
1939년에 발표된 이 논문은 분량으로 보면 매우 짧은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이후 수십 년간의 면역학 연구 전반에 깊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감마 글로불린이라는 용어가 항체와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는 이유, 임상에서 혈청 단백 전기영동이 질병 진단의 기초 도구가 된 배경, 그리고 면역글로불린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있었던 출발점이 바로 이 연구에 있습니다.
Tiselius와 Kabat의 논문은 면역학이 분자 과학으로 진입하는 문턱에서, 그 문을 처음으로 열어젖힌 고전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흐름 속 위치 — 항체공학으로 이어진 계보
1939년 Tiselius와 Kabat의 연구는 단순히 하나의 분석 기법을 제시한 논문이 아니었습니다. 이 논문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전개될 항체 연구의 방향을 처음으로 분자 수준에서 규정한 출발점에 해당합니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항체가 혈청 속에서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처음으로 명확히 했다는 점입니다. 전기영동을 통해 항체 활성이 감마 글로불린(γ-globulin) 분획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주면서, 항체는 더 이상 추상적인 면역 반응의 결과물이 아니라 특정 분획에 속한 단백질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분획의 확인”이라는 첫 단계였습니다.
이후 항체 연구는 구조적 이해로 빠르게 확장됩니다. 1959년, Gerald Edelman과 Rodney Porter는 항체가 중쇄(heavy chain)와 경쇄(light chain)로 이루어진 대칭적 구조를 가진 분자임을 규명했습니다. 이는 항체 기능의 특이성과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분자적 틀이었으며, 항체 연구는 “구조의 규명” 단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이 흐름은 1970년대에 들어 Georges Köhler와 César Milstein의 단일클론 항체(monoclonal antibody) 기술 개발로 이어집니다. 항체를 하나의 분자로 정의하는 데서 나아가, 동일한 특이성을 지닌 항체를 공학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1939년의 전기영동 연구에서 시작된 계보는 분획의 확인 → 구조의 규명 → 공학적 생산으로 이어지는, 면역학의 분자화와 산업화가 연속적으로 전개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업적 계승 — 웁살라에서 파마시아로
Tiselius가 이끌었던 웁살라(Uppsala) 학파의 특징은 단순한 발견보다도, 분리와 분석을 통해 생물학적 실체를 규정하려는 철학에 있었습니다. 이 접근법은 학문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산업으로 확장됩니다.
1947년 설립된 Pharmacia AB는 이러한 웁살라 학파의 분석 철학이 산업화된 대표적 사례입니다. Tiselius의 제자 세대에 속하는 Per Flodin과 Jerker Porath는 1959년 덱스트란(dextran) 기반 겔 여과 매체인 Sephadex를 개발합니다. 이 기술은 단백질을 크기 차이에 따라 안정적으로 분리할 수 있게 하며, 단백질 정제를 일상적인 실험 과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Pharmacia는 Sepharose, Protein A 크로마토그래피, 그리고 FPLC(고속 단백질 정제 시스템)로 기술을 확장해 나갑니다. 이러한 기술들은 오늘날 항체 의약품 생산과 바이오공정의 표준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재 연이은 회사의 합병과 분사로 최종적으로 Cytiva로 이어지는 계보는, 전기영동이라는 분석 원리가 산업용 크로마토그래피 플랫폼으로 진화한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즉, 1939년의 전기영동 실험은 학문적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단백질 정제와 항체 생산이라는 산업적 기반까지 직접적으로 연결된 출발점이었습니다.
노벨상과 그 유산 — 정확한 수상자와 의미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8년 노벨 화학상은 Arne Wilhelm Kaurin Tiselius에게 수여됩니다. 노벨위원회는 그의 업적으로 “전기영동과 흡착 분석에 관한 연구, 특히 혈청 단백질의 복합적 본성에 관한 발견”을 명시했습니다.
이 수상은 특정 기술의 개발을 넘어, 생물학적 현상을 물리화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음을 증명한 데 대한 평가였습니다. 혈청 단백질이 단일한 물질이 아니라 여러 성분의 조합이며, 그중 항체가 독립된 분획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후 면역학, 생화학, 의학 전반에 걸쳐 분석적 사고방식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항체 치료제, 진단용 항체, 백신 평가 기술까지 이어지는 광범위한 응용의 뿌리에는, 1939년 웁살라 실험실에서 수행된 이 전기영동 연구가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관련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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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selius, Arne, and Elvin A. Kabat. “An Electrophoretic Study of Immune Sera and Purified Antibody Preparations.”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 vol. 69, no. 1, 1939, pp. 119–131. https://doi.org/10.1084/jem.6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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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delberger, Michael. “Quantitative Studies on the Precipitin Reaction.”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 1929. https://rupress.org/j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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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bat, Elvin A. Structural Concepts in Immunology and Immunochemistry. Holt, Rinehart and Winston, 1968. https://archiv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