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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암세포는 왜 항산화에 중독되는가: NRF2–KEAP1 축의 두 얼굴

발행: 2025-12-17 · 최종 업데이트: 2025-12-24

NRF2는 세포를 보호하는 항산화 전사인자이지만, 암세포에서는 생존을 고정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항산화 패러독스를 NRF2–KEAP1 축을 통해 살펴봅니다.

같은 활성산소인데, 왜 결과는 정반대일까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운동 중 생성되는 과산화수소(hydrogen peroxide)는 미토콘드리아 적응을 유도하는 중요한 신호로 작용합니다. 정상 세포는 이 신호를 이용해 항산화 능력을 강화하고, 대사 효율을 개선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같은 과산화수소가 암세포에서는 생존 신호가 아니라 사멸 신호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활성산소의 양 때문이 아니라, 세포가 그 신호를 처리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암세포는 이미 한계 상태에 있다

암세포는 빠른 증식을 위해 대사를 극단적으로 재구성한 상태입니다. 많은 암세포는 미토콘드리아 대사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지만, 에너지와 생합성 물질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과정에 강하게 의존합니다.

이 과정에서 암세포는 이미 다음과 같은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 높은 대사 속도

  • 지속적으로 증가한 활성산소 수준

  • 항산화 시스템의 상시 가동

즉, 암세포는 정상 세포에 비해 산화 스트레스의 여유 공간이 거의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당과정을 쓰는데, 왜 활성산소가 중요한가

암세포가 해당과정에 강하게 의존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을 워버그 효과, 혹은 바르부르크 효과라고 합니다. 해당과정은 미토콘드리아 전자전달계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 경로 자체에서는 활성산소가 거의 생성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암세포와 활성산소의 관계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암세포가 해당과정을 사용한다고 해서 미토콘드리아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암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유지하며, 해당과정에서 얻은 탄소를 TCA 회로와 다양한 생합성 경로로 연결합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여전히 대사 중간체 공급, NADH와 NADPH 균형, 철-황 클러스터 합성 등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중요한 점은 활성산소 생성이 에너지 생산량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활성산소는 전자 흐름의 안정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는 정상 세포에 비해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ATP 생산은 해당과정에서 주로 이루어지더라도, 활성산소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암세포는 이 활성산소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습니다. 일정 수준의 활성산소는 증식 신호와 전사 조절에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암세포는 에너지는 해당과정에서 확보하면서도, 활성산소 신호는 미토콘드리아에서 관리하는 방식으로 대사를 분리해 운영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암세포를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합니다. 활성산소가 너무 적어도 증식 신호가 약해지고, 조금만 증가해도 항산화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암세포가 산화 스트레스에 유독 취약한 이유는, 해당과정 의존이 활성산소를 회피하는 전략이 아니라 활성산소를 관리하려는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정상 세포의 과산화수소 신호는 ‘조절된 위험’이다

정상 세포에서 과산화수소는 제한된 범위에서 생성되고, 정밀하게 조절됩니다. 미토콘드리아에서 생성된 과산화수소는 신호로 사용된 뒤, 퍼옥시레독신(peroxiredoxin)이나 글루타치온 시스템을 통해 비교적 빠르게 제거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일시적이고 가역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신호가 끝나면 균형은 다시 회복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정상 세포가

  • 충분한 NADPH 공급

  • 다양한 대사 경로의 유연성

  • 손상 복구 능력

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암세포에서는 같은 신호가 ‘돌이킬 수 없는 스트레스’가 된다

암세포는 이미 항산화 시스템을 최대한 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과산화수소 증가는 곧바로 대사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 글루타치온 고갈

  • NADPH 부족

  • 단백질의 비가역적 산화

  •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이 상태에서는 과산화수소가 더 이상 신호로 작동하지 못하고, 실질적인 손상 요인으로 전환됩니다.

앞서 언급한 산화형 비타민 C 연구에서 관찰된 암세포 사멸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항산화 네트워크가 무너지면서, 암세포는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신호를 더 이상 처리하지 못하게 됩니다.

항산화 패러독스는 어디에서 고정되는가

앞선 글들에서 살펴본 것처럼, 활성산소는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운동 중 정상 세포에서는 적응 신호로 작용하지만, 암세포에서는 생존 한계를 시험하는 스트레스로 전환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암세포는 이 불안정한 상태를 일시적으로 버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아예 한 방향으로 고정시키려 합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NRF2–KEAP1 축입니다.

NRF2는 무엇을 하는 단백질인가

NRF2는 항산화 반응을 조절하는 대표적인 전사인자입니다. 정상 세포에서 NRF2는 산화 스트레스가 증가했을 때 활성화되어, 다음과 같은 유전자들의 발현을 유도합니다.

  • 항산화 효소

  • 글루타치온 합성 관련 효소

  • NADPH 생성에 관여하는 대사 효소

  • 해독 및 스트레스 대응 유전자

이 시스템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일시적인 산화 스트레스를 견디고,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역할만 놓고 보면 NRF2는 분명히 “보호자”입니다.

KEAP1은 왜 필요한가

KEAP1은 NRF2를 억제하는 단백질입니다. 평상시에는 KEAP1이 NRF2를 붙잡아 분해로 유도함으로써, 항산화 유전자 발현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조절합니다.

즉,

  • NRF2는 가속 페달이고

  • KEAP1은 브레이크입니다

이 두 요소가 균형을 이룰 때, 세포는 산화 스트레스에 필요한 만큼만반응할 수 있습니다.

암세포에서는 이 균형이 깨진다

많은 암에서 KEAP1 돌연변이나 NRF2 과활성화가 관찰됩니다. 이 경우 NRF2는 더 이상 “필요할 때만 작동하는 보호자”가 아니라, 상시 켜져 있는 생존 프로그램으로 변합니다.

그 결과 암세포에서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나타납니다.

  • 글루타치온 합성의 지속적 증가

  • NADPH 공급 경로의 상시 활성화

  • 산화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 강화

  • 항암 치료에 대한 저항성 증가

암세포는 이렇게 해서 높은 대사 속도와 지속적인 활성산소 발생을 견딜 수 있는 상태로 고정합니다.

NRF2는 항산화를 ‘과잉’시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오해를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NRF2가 활성화된 암세포는 활성산소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암세포는

  • 증식에 필요한 활성산소 신호는 유지하면서

  • 치명적인 수준의 손상만 피하는
    아주 좁은 범위의 균형점을 유지합니다.

NRF2의 역할은 항산화를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대사를 계속 가능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 점에서 NRF2는 항산화 패러독스의 핵심 요소입니다.

왜 이것을 ‘항산화 중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NRF2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된 암세포는, 더 이상 이 경로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항산화 시스템이 약화되는 순간, 그동안 감당해 왔던 대사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 암세포는 항산화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고

  • 그 의존성은 곧 취약성이 되며

  • 추가적인 산화 스트레스에 극도로 민감해집니다

그래서 NRF2는 암세포를 강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특정 조건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항산화 패러독스는 여기서 완성된다

이제 항산화 패러독스는 단순한 개념이 아닙니다.

  • 운동에서는 적응 신호

  • 암세포에서는 감당 불가능한 스트레스

  • 그리고 NRF2–KEAP1 축에서는
    → 그 불안정한 상태를 고정시키는 장치

항산화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 의미는 세포가 어떤 상태에 있고, 그 균형이 얼마나 유연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정리하며

  • NRF2는 정상 세포에서 산화 스트레스를 완충하는 보호자입니다

  • 암세포에서는 NRF2–KEAP1 균형이 깨져 생존 프로그램으로 고정됩니다

  • 이는 암세포를 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항산화 의존성을 증가시킵니다

  • 이 의존성은 항산화 패러독스의 핵심적인 취약점입니다

항산화는 암세포를 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암세포를 가장 불안정한 상태에 묶어두는 족쇄이기도 합니다.

다음 글 예고

다음 편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를
노화와 장수 연구로 가져가 보겠습니다.

  • 왜 항산화 보충제는 장수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실패했는가

  • 왜 생명은 활성산소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았는가

  • 스트레스와 수명의 역설적 관계

이제 질문은 이것입니다.

생명은 왜 이렇게 불안정한 시스템을 끝까지 유지해 왔을까?

관련 글

참고문헌

  1. Kansanen E et al. The Keap1–Nrf2 pathway: mechanisms of activation and dysregulation in cancer. Redox Biology. 2013.

  2. DeNicola GM et al. NRF2 regulates serine biosynthesis in non-small cell lung cancer. Nature Genetics. 2015.

  3. Hayes JD, Dinkova-Kostova AT. The Nrf2 regulatory network provides an interface between redox and intermediary metabolism. Trends in Biochemical Sciences.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