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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 에를리히의 Croonian Lecture: 항체를 수용체로 상상하다

발행: 2026-04-20 · 최종 업데이트: 2026-04-20

Paul Ehrlich의 Croonian Lecture를 중심으로, side-chain theory가 항체를 세포 표면 수용체와 선택적 결합의 언어로 이해하게 만든 과정을 정리합니다.

Croonian lecture.—On immunity with special reference to cell life
Paul Ehrlich ·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 1900
항체를 세포 표면의 특정 side-chain 또는 receptor가 과잉 생산되어 혈액 속으로 방출된 산물로 해석하며, 항원-항체 특이성을 화학적 결합과 선택의 언어로 설명하려 한 고전적 이론입니다.

왜 이 이론이 필요했는가

1890년 폰 베링과 키타사토의 혈청 실험은 면역된 동물의 혈청이 디프테리아와 파상풍 독소를 중화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혈청 속의 보호 물질이 어떻게 생기고, 왜 특정 독소에만 작용하는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면역학은 항독소의 존재를 기능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특이성을 설명할 이론적 언어는 부족했습니다.

Paul Ehrlich의 side-chain theory는 바로 이 빈칸을 채우려 한 시도였습니다. 그는 세포를 화학적 결합의 장으로 보았고, 세포 표면에 다양한 결합 구조가 존재한다고 상상했습니다. 독소는 이 구조 가운데 자기와 맞는 것에 결합하고, 그 결합이 세포를 자극해 같은 구조가 더 많이 만들어지도록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바탕이 되는 논문은 에를리히가 1900년 3월 22일 Royal Society에서 한 Croonian Lecture입니다. 출판 기록상으로는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66권, 424-448쪽에 실렸고, CiNii와 Royal Society 메타데이터는 출판일을 1900년 12월 31일로 잡고 있습니다. DOI에 1899가 들어가지만, 이 글에서는 강연과 출판 맥락을 따라 1900년 고전으로 다룹니다.

정량화에서 시작한 면역 이론

원문을 읽어 보면 에를리히의 출발점은 추상적 면역철학이 아니라 정량화였습니다. 그는 독소를 살아 있는 세균이 만든 화학 물질로 보았고, 면역을 이해하려면 독소와 항독소의 작용을 숫자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물 개체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적혈구 현탁액을 이용한 시험관 실험을 중요하게 다루었습니다. 각 시험관을 하나의 일정한 "실험동물"처럼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독소-항독소 반응은 생명력의 문제가 아니라 화학 반응의 문제로 재해석됩니다. 온도가 높으면 반응이 빨라지고, 낮으면 느려지며, 농도가 높을수록 반응이 빠르다는 관찰은 에를리히에게 독소 중화가 화학적 결합이라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side-chain theory(측쇄 이론)

세포 표면에는 특정 물질과 결합할 수 있는 여러 side-chain, 즉 receptor가 있고, 독소나 항원이 이 receptor에 결합하면 세포가 같은 receptor를 과잉 생산하며 그 일부가 혈액 속으로 방출되어 항독소 또는 항체처럼 작용한다는 이론입니다.

에를리히가 상상한 항체의 출발점

Ehrlich에게 항체는 처음부터 완전히 독립된 혈청 단백질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원래 세포 표면에서 영양물질이나 독소와 결합하는 구조였습니다. 독소가 어떤 side-chain에 결합하면, 그 side-chain은 세포 기능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포는 손실된 결합 구조를 보상하기 위해 같은 side-chain을 더 많이 만들고, 과잉 생산된 side-chain이 떨어져 나와 혈액 속에서 독소를 중화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설명에서 중요한 것은 항체가 "혈액 속에 갑자기 생기는 신비한 물질"이 아니라, 세포 표면의 결합 구조와 연속선 위에 놓인다는 발상입니다. 에를리히는 항독소를 독소와 결합하는 자유로운 receptor처럼 상상했습니다. 세포에 붙어 있을 때는 독소의 표적이 되고, 떨어져 나와 혈액 속에 있을 때는 독소를 잡아 중화하는 미끼가 된다는 그림입니다.

에를리히는 이 과정을 Weigert의 재생과 과보상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독소가 side-chain을 점유하면 그 side-chain은 원래의 영양 기능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세포는 결손을 보충하기 위해 같은 side-chain을 다시 만들고, 반복 면역 과정에서는 그 생산이 필요량을 넘어 과잉으로 진행됩니다. 결국 세포가 더 이상 지닐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들어진 side-chain이 혈액 속으로 밀려나오고, 이것이 항독소가 된다는 설명입니다.

이 모델은 오늘날의 분자면역학과는 다릅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B세포 수용체가 그대로 떨어져 나와 항체가 되는 것은 아니며, 항체는 B세포가 분화해 분비하는 면역글로불린입니다. 그러나 Ehrlich의 직관은 놀라울 만큼 중요한 방향을 짚었습니다. 항체 특이성은 항원이 몸 안에서 새로 조각해 만든 것이 아니라, 항원이 결합할 수 있는 특정 구조와의 선택적 결합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그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haptophore group(결합기)

에를리히는 독소와 항독소의 결합을 화학적 결합 부위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후대 용어로 정리하면 haptophore group은 세포나 항독소 receptor에 달라붙는 결합 부위이고, toxophore group은 독성을 내는 부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haptophore, toxophore, toxoid

강연의 중요한 부분은 독소 분자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에를리히는 독소에 두 가지 기능적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항독소나 세포의 결합 구조에 붙는 haptophore group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독성을 내는 toxophore group입니다.

이 구분은 오래된 독소가 왜 독성은 약해졌는데도 항독소와 결합하는 능력은 유지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독성이 사라졌지만 결합기는 남은 분자는 toxoid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백신학에서 toxoid라는 말이 익숙한 이유도 여기와 연결됩니다. 독성을 담당하는 기능은 잃었지만, 면역계가 인식할 결합 구조는 남아 있는 물질이라는 생각입니다.

화학적 특이성이라는 언어

Ehrlich의 배경에는 염료화학과 독소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세포와 독소의 관계를 모호한 생명력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화학 구조 사이의 결합 문제로 이해했습니다. 항독소가 독소와 결합한다면, 그 결합은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맞는 짝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본 것입니다.

이 점은 항체 역사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항체는 단순히 “면역이 생긴 혈청의 효과”가 아니라, 특정 분자와 결합하는 구조적 특이성을 가진 물질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Landsteiner의 hapten 연구가 항체 특이성을 화학 구조 수준에서 보여 주고, Heidelberger와 Kendall이 항원-항체 반응을 정량 화학으로 다루게 되는 흐름은 이 문제의식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Royal Society에 실린 이 강연은 도식으로도 유명합니다. 에를리히는 세포 표면에 다양한 side-chain이 있고, 독소가 그중 특정 구조에 결합하며, 과잉 생산된 side-chain이 떨어져 나와 항독소처럼 작용한다는 그림을 제시했습니다. 이 그림 자체는 현대 면역학의 정답은 아니지만, 항원-항체 특이성을 "열쇠와 자물쇠"에 가까운 결합 문제로 상상하게 만든 강력한 시각적 모델이었습니다.

어디까지 맞았고 어디서 틀렸는가

이 이론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Ehrlich는 항체 유전자 재배열, B세포 클론, 형질세포 분화, 면역글로불린 구조를 알 수 없었습니다. 또한 세포 표면 receptor가 과잉 생산되어 단순히 떨어져 나간다는 그림은 현대적 설명과 다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살아남았습니다. 첫째, 항체와 항원 사이에는 구조적 특이성이 있습니다. 둘째, 세포 표면의 결합 구조와 혈청 속 항체는 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셋째, 항원은 면역계에 완전히 새로운 특이성을 “가르친다”기보다, 이미 존재하거나 생성 가능한 결합 구조 가운데 맞는 것을 선택한다는 방향으로 사고를 밀어 줍니다.

바로 이 세 번째 지점 때문에 Ehrlich의 이론은 1955년 Jerne의 natural-selection theory, 1957년 Burnet의 clonal selection theory와 역사적으로 연결됩니다. Jerne은 선택의 단위를 혈청 속 자연 항체로 보았고, Burnet은 그것을 림프구 클론으로 옮겼습니다. Ehrlich는 그보다 훨씬 앞서, 면역 특이성을 세포 표면 receptor와 선택적 결합의 언어로 상상한 셈입니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이 강연이 항독소만 다룬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후반부에서 에를리히는 hemolysin, bacteriolysin, immune body, complement 문제까지 확장합니다. 즉 그는 항독소 이론을 출발점으로 삼아, 혈청 속 다양한 결합 물질과 세포성 기원의 문제를 하나의 side-chain 언어로 묶으려 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항체, 보체, Fc 기능은 아직 분리되어 있지 않았지만, 면역 반응을 결합 구조들의 조합으로 설명하려는 방향은 이미 분명했습니다.

항체 역사 속에서의 위치

Ehrlich의 side-chain theory는 1900년대 초 항체 연구가 단순한 혈청효과의 관찰에서 벗어나 이론적 면역화학으로 이동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이론은 곧바로 현대 항체론으로 이어진 완성된 정답은 아니었지만, 항체를 특정 구조를 가진 결합 분자로 보는 관점을 열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항체 역사에서 폰 베링과 키타사토의 혈청치료와 Heidelberger-Kendall의 정량 면역화학 사이에 놓이는 이론적 다리로 읽는 편이 좋습니다. 1890년 혈청은 보호 효과를 보여 주었고, 1900년 Ehrlich는 그 보호 효과를 receptor와 선택적 결합의 문제로 바꾸어 생각했습니다.

한 줄 정리

Ehrlich의 side-chain theory는 항체를 세포 표면 receptor와 선택적 화학 결합의 산물로 상상함으로써, 항체 특이성을 설명할 첫 강력한 이론적 언어를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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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