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 부신피로는 실제 질병일까: 부신피질, HPA 축, 만성피로를 구분해서 읽기
발행: 2026-03-04 · 최종 업데이트: 2026-04-21
Cadegiani와 Kater의 2016년 체계적 문헌고찰을 중심으로 부신피로 개념의 한계를 정리하고, ME/CFS와 Long COVID의 신경염증 가설을 함께 읽습니다.
“부신피로”라는 말은 피로를 설명하기에 아주 편리합니다. 스트레스를 오래 받으면 몸이 지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부신피질에서 만들어지니, 결국 부신이 지쳐서 피로가 온다는 설명은 직관적으로 잘 맞아 보입니다. 문제는 의학에서 직관은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진단명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Cadegiani와 Kater가 2016년에 발표한 체계적 문헌고찰은 바로 이 지점을 확인한 논문입니다. 저자들은 “adrenal fatigue”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상태가 실제 질환으로 성립하려면,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에게서 부신 축의 일관된 이상이 반복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PubMed, MEDLINE, Cochrane 자료를 검색해 코르티솔과 피로 또는 에너지 상태를 함께 평가한 연구를 모았습니다. 처음 검색된 문헌은 3,470편이었고, 최종 분석에는 58편이 포함되었습니다.
결론은 분명했습니다. 연구마다 피로를 정의하는 방식도 달랐고, 코르티솔을 재는 방식도 달랐으며, 결과 역시 일정한 방향으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연구에서는 아침 코르티솔이 낮게 보였고, 어떤 연구에서는 정상이거나 반대로 높게 보였습니다. 코르티솔 awakening response, 타액 코르티솔 리듬, 야간 코르티솔, 24시간 소변 코르티솔 같은 지표도 연구마다 해석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부신피로가 실제 의학적 질환이라는 근거가 없다고 결론냈습니다.
이 말은 피로가 가짜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부정된 것은 “피로의 원인이 부신피질의 소진이다”라는 특정 설명입니다. 만성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고통을 겪습니다. 다만 그 고통을 설명하는 모델이 부신피로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검증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부신피로와 부신기능저하는 다르다
이 주제에서 가장 중요한 구분은 부신피로와 부신기능저하를 섞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 부신피질 기능저하(adrenal insufficiency)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원발성 부신기능저하, 즉 애디슨병에서는 부신피질 자체가 코르티솔을 충분히 만들지 못합니다. 이차성 또는 삼차성 부신기능저하에서는 뇌하수체의 ACTH 또는 시상하부의 CRH 조절 문제가 원인이 됩니다.
이런 질환은 피로, 체중 감소, 저혈압, 전해질 이상 같은 증상을 만들 수 있고, 표준화된 내분비 검사로 평가합니다. 반면 대중적으로 말하는 부신피로는 일반 검사에서 뚜렷한 부신기능저하가 없는데도 “만성 스트레스 때문에 부신이 약해졌다”고 가정하는 개념입니다. 둘은 이름이 비슷해도 의학적으로 같은 범주가 아닙니다.
부신이라는 말 자체도 조금 더 정확하게 써야 합니다. 코르티솔을 만드는 곳은 부신 전체가 아니라 부신피질(adrenal cortex)입니다. 부신수질(adrenal medulla)은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을 만드는 조직입니다. 따라서 코르티솔과 피로를 이야기할 때는 “부신이 지쳤다”보다 “부신피질-뇌하수체-시상하부 축에 일관된 이상이 있는가”라고 묻는 편이 정확합니다.
왜 부신피로 설명은 설득력 있게 들리는가
부신피로 개념이 널리 퍼진 이유는 완전히 비과학적인 상상이라서가 아닙니다. 스트레스와 코르티솔, 면역 반응, 수면, 혈압, 에너지 대사는 실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오래 받으면 코르티솔 체계가 무너지고, 그 결과 피로가 생긴다는 설명은 듣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Cadegiani와 Kater의 논문이 지적한 문제는 바로 그 다음 단계입니다. “그럴듯하다”와 “질병으로 입증되었다”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습니다. 부신피로가 질병이라면 피로 환자군에서 특정 코르티솔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야 하고, 검사법과 진단 기준도 어느 정도 정리되어야 합니다. 2016년 문헌고찰은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본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치료입니다. 부신피로라는 이름으로 코르티솔 또는 하이드로코르티손 같은 스테로이드를 쓰자는 주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논문 저자들은 스테로이드가 일시적인 안녕감이나 활력을 줄 수는 있어도, 그것이 부신피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스테로이드는 정신 증상, 골다공증, 근육병증, 녹내장, 대사 이상, 수면 장애, 심혈관 위험 같은 부작용을 만들 수 있으므로, 확립되지 않은 진단명만으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피로는 어디에서 오는가
부신피로라는 설명이 약하다고 해서, 만성 피로를 단순한 의지 문제나 심리 문제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최근 연구는 피로가 훨씬 복잡한 생리학적 상태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HPA 축, 자율신경계, 면역계, 신경염증입니다.
HPA 축은 hypothalamic-pituitary-adrenal axis의 약자로, 시상하부, 뇌하수체, 부신피질이 연결된 스트레스 조절 시스템입니다. 이 축은 코르티솔 분비만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수면, 각성, 면역 반응, 대사, 혈압 조절과도 연결됩니다. 따라서 피로를 설명하려면 부신피질 하나만 보는 것보다 이 전체 조절 회로를 보는 편이 더 타당합니다.
이 지점에서 ME/CFS, 즉 근육통성 뇌척수염/만성피로증후군 연구가 중요해집니다. ME/CFS는 단순히 “피곤하다”는 상태가 아니라, 휴식으로 회복되지 않는 피로, 활동 후 악화(post-exertional malaise), 수면 장애, 인지 기능 저하, 자율신경 증상 등을 포함하는 질환군입니다. 원인은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부신피로처럼 특정 장기 하나의 소진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Tate 등의 2022년 논문은 ME/CFS와 Long COVID를 신경염증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가설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확정된 진단법을 제시한 연구라기보다, 왜 감염이나 강한 스트레스 사건 이후 피로, brain fog, 수면 장애, 자율신경 증상, 재발-회복 주기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모델을 제안합니다.
저자들의 핵심 가설은 말초의 염증 또는 면역 조절 이상이 신경혈관 경로나 손상된 혈뇌장벽을 통해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 만성 신경염증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시상하부의 paraventricular nucleus(PVN)는 스트레스 반응과 HPA 축, 자율신경 조절에 중요한 영역으로 제시됩니다. 이 영역이 신경염증의 영향을 받으면 작은 스트레스에도 증상이 악화되고, 회복과 재발이 반복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 모델은 부신피로와 다릅니다. 부신피로는 부신피질이 소진되었다는 설명에 가깝지만, Tate 논문은 뇌, 면역계, 자율신경계, HPA 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조절 네트워크의 문제를 말합니다. 같은 피로를 다루더라도 설명의 수준이 다릅니다. “부신이 지쳤다”는 단순한 장기 중심 설명에서, “감염 또는 스트레스 이후 신경-면역-내분비 조절 회로가 회복되지 못했다”는 네트워크 설명으로 이동하는 셈입니다.
Long COVID가 이 논의를 바꾼 이유
Long COVID는 이 논의를 더 현실적인 문제로 만들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상당수의 사람들이 피로, 인지 저하, 수면 문제, 어지럼, 심박 조절 이상을 호소했습니다. 이 증상들은 ME/CFS와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Tate 논문도 Long COVID의 일부 하위군이 ME/CFS와 유사한 병태생리를 공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단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Long COVID의 원인은 하나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일부는 장기 손상, 일부는 혈관 또는 응고 문제, 일부는 면역 조절 이상, 일부는 자율신경계 문제와 더 관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현상은 만성 피로를 “부신이 지쳐서 생긴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따라서 부신피로라는 말을 비판하는 목적은 환자의 증상을 가볍게 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피로를 너무 단순한 이름으로 묶으면, 실제로 필요한 감별과 연구가 흐려집니다. 부신기능저하가 의심되면 표준 내분비 검사를 해야 하고, ME/CFS나 Long COVID 양상이 강하면 활동 후 악화, 수면, 자율신경 증상, 인지 증상, 감염 후 경과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정리
2016년 Cadegiani와 Kater의 논문이 보여 준 것은 부신피로라는 진단명이 과학적으로 약하다는 점입니다. 피로와 코르티솔 사이의 관계는 연구마다 일관되지 않았고, 부신피질 소진이라는 설명을 질병으로 확립할 근거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피로가 단순하거나 가볍다는 뜻은 아닙니다. 2022년 Tate 논문이 보여 주듯, ME/CFS와 Long COVID 연구는 피로를 신경염증, HPA 축, 자율신경계, 면역 조절의 문제로 다시 읽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더 정확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부신피로라는 말은 버리는 편이 낫지만, 피로라는 현상은 더 정교하게 연구해야 합니다. 문제는 부신 하나가 지쳤는지가 아니라, 몸의 스트레스 조절 회로가 왜 회복되지 못하는가입니다.
참고문헌
- Cadegiani FA, Kater CE. Adrenal fatigue does not exist: a systematic review. BMC Endocrine Disorders. 2016;16:48. https://doi.org/10.1186/s12902-016-0128-4
- Tate W, Walker M, Sweetman E, Helliwell A, Peppercorn K, Edgar C, Blair A, Chatterjee A. Molecular mechanisms of neuroinflammation in ME/CFS and Long COVID to sustain disease and promote relapses. Frontiers in Neurology. 2022;13:877772. https://doi.org/10.3389/fneur.2022.877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