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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 암과의 전쟁: 닉슨의 선언과 기초과학의 긴 우회로

발행: 2026-05-05 · 최종 업데이트: 2026-05-09

미국 국가암법과 '암과의 전쟁'이 어떤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고, 왜 단기간의 정복에는 실패했지만 현대 암 연구의 기반을 만들었는지 정리합니다.

전쟁이라는 언어가 의학에 들어오다

1971년 12월 23일,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국가 암 법(National Cancer Act)**에 서명했습니다. 이 법은 국립암연구소(NCI)의 권한과 예산을 크게 확대했고, 암 연구를 국가적 사업으로 밀어 올렸습니다. 이후 이 흐름은 흔히 **암과의 전쟁(War on Cancer)**이라고 불립니다.

당시 미국 사회에는 강한 낙관주의가 있었습니다. 아폴로 계획으로 달 착륙을 이룬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과학과 막대한 예산을 결합하면 암도 정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퍼져 있었습니다. 암은 두렵고 흔한 질병이었으며, 정치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집중 투자할 명분”이 분명했습니다.

메리 래스커와 연구비 정치

이 흐름을 만든 인물 중 하나가 자선가이자 보건의료 로비스트였던 **메리 래스커(Mary Lasker)**입니다. 래스커는 의학 연구에 더 많은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치권과 언론을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그의 활동은 암 연구를 실험실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공적 과제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장점과 위험이 함께 있었습니다. 장점은 분명했습니다. 연구비가 늘었고, 암 연구 인프라가 커졌고, 젊은 과학자들이 암 생물학으로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넓어졌습니다. 위험도 있었습니다. 정치적 언어는 종종 과학의 속도를 과대평가합니다. “전쟁”은 명확한 적과 승리를 전제하지만, 암은 하나의 병이 아니라 서로 다른 원인과 진화 경로를 가진 질병들의 집합입니다.

왜 단기간에 끝나지 않았나

1970년대 초의 과학은 암을 빠르게 정복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DNA 복제, 유전자 조절, 세포주기, 종양 바이러스, 면역반응에 대한 지식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지만, 암세포가 어떤 단계들을 거쳐 악성화되는지에 대한 전체 그림은 희미했습니다.

초기 전략 중 일부는 지나치게 단순했습니다. 암을 특정 바이러스 하나의 문제로 보거나, 더 강한 세포독성 치료로 밀어붙이면 해결될 것처럼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암은 유전자 변이, 염색체 불안정성, 미세환경, 면역 회피, 대사 변화가 얽힌 복잡한 과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1986년 존 베일러와 일레인 스미스는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미국의 암 사망률 변화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며, 막대한 투자에도 전체 암 사망률 개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평가는 암과의 전쟁이 즉각적인 임상 승리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실패만은 아니었던 이유

그럼에도 1971년의 국가적 투자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암을 10년 안에 정복한다”는 식의 기대는 비현실적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현대 생명과학의 핵심 기반이 만들어졌습니다.

  1. 종양 바이러스 연구는 온코진과 원시종양유전자 개념으로 이어졌습니다.
  2. 세포주기와 DNA 손상 반응 연구는 p53, Rb 같은 암 억제 유전자의 의미를 밝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3. 임상시험 네트워크와 암 등록, 대규모 연구 인프라는 이후 표적치료와 면역치료 평가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암과의 전쟁은 정치적 약속으로는 과장되었지만, 연구 생태계로는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했습니다. 단기전으로는 실패했고, 장기전의 기반으로는 성공한 셈입니다.

오늘의 관점

현재 우리는 암을 하나의 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유방암 안에도 HER2 양성, 호르몬 수용체 양성, 삼중음성처럼 서로 다른 생물학이 있고, 폐암 안에도 EGFR, ALK, KRAS 등 치료 선택을 바꾸는 표적이 있습니다. 면역관문억제제와 CAR-T 치료는 암과 면역계의 관계를 치료의 중심으로 끌어왔습니다.

이 변화는 “암과의 전쟁”이라는 구호가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전쟁의 대상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는 뜻입니다. 암 연구의 역사는 빠른 정복보다 정확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971년의 선언은 암을 단숨에 끝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암을 국가적 연구 의제로 만들었고, 그 결과 암 생물학은 이후 반세기 동안 가장 빠르게 성장한 의학 분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References

  1. National Cancer Act of 1971. Pub. L. No. 92-218, 85 Stat. 778.
  2. Bailar JC 3rd, Smith EM. Progress against cancer?. N Engl J Med. 1986;314(19):1226-1232.
  3. DeVita VT Jr, Rosenberg SA. Two hundred years of cancer research. N Engl J Med. 2012;366(23):2207-2214.
  4. Mukherjee S. The Emperor of All Maladies: A Biography of Cancer. Scribner; 2010.
  5. Rettig RA. Cancer Crusade: The Story of the National Cancer Act of 1971.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