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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과 임호텝

발행: 2025-12-10 · 최종 업데이트: 2025-12-17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를 통해 살펴본 인류 최초의 암 기록과 고대 이집트 의학의 태도

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

생활면역

임호텝의 상
그림 1. 임호텝의 상. 고대 이집트 제3왕조 시기의 인물로 전해지며, 의학과 건축을 동시에 상징하는 존재로 서사화되어 왔다.

대중문화 속에서 ‘임호텝’이라는 이름은 영화 _미이라_의 악역으로 더 익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설정은 허구이며, 실제 임호텝(Imhotep)은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실존 인물입니다. 고대 이집트 인물 중 현대까지 이름과 업적이 비교적 분명하게 전해지는 사례는 많지 않은데, 임호텝은 그중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임호텝은 기원전 27세기경 이집트 제3왕조 조세르(Djoser) 파라오 시대의 재상이었으며, 동시에 건축가이자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의학과 관련된 역할은 후대 기록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며, 단순한 신화적 인물이라기보다는 실제 지식인으로 평가됩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사카라(Saqqara)에 위치한 조세르 계단 피라미드의 설계입니다.

임호텝이 만든 피라미드
그림 2. 임호텝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사카라에 위치한 조세르 계단 피라미드

이 피라미드는 기존의 마스타바 무덤을 여러 단으로 쌓아 올린 형태로, 이후 대피라미드 건축으로 이어지는 기술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높이 약 60미터에 달하는 이 구조물은 석회암 블록으로 만들어졌으며,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제의 공간과 담장을 포함한 거대한 건축 단지였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인해 임호텝은 사후에 점차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게 됩니다. 특히 의술과 지혜의 상징으로 숭배되었다는 점은, 그가 단순한 건축가를 넘어 의학적 권위를 지닌 인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의 발견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
그림 3. 1862년 에드윈 스미가가 구입한 파피루스로, 수술에 대한 교과서적 해부학적 관찰과 질병 및 예후에 대해서 적해 있다. 특히 이 파피루스에는 최초의 암에 대한 기록이 실려있다.

1858년, 미국의 골동품 상인이었던 에드윈 스미스(Edwin Smith)는 이집트 룩소르에서 한 파피루스 문서를 입수합니다. 이 문서는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고, 길이는 약 5미터에 달했습니다. 문자는 히에라틱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으며, 당시에는 내용을 해독할 수 없었습니다.

이 파피루스는 이후 학계로 전달되었고, 20세기 초 이집트학자 제임스 헨리 브레스티드(James Henry Breasted)에 의해 번역·해석됩니다. 그 결과, 이 문서는 주문이나 주술이 아닌, 외상과 질병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외과학 문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오늘날 이 문서는 발견자의 이름을 따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로 불립니다.

이 문서에는 총 48개의 임상 사례가 수록되어 있으며, 각 사례는 진찰, 진단, 예후, 치료 여부를 명확히 구분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이 사례 45입니다.

사례 45와 유방암 기록

사례 45에서는 가슴 부위에 발생한 종양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종양은 단단하고 차갑게 만져지며, 고름이나 분비물이 없고, 액체가 흐르지 않는 상태로 기술됩니다. 손으로 만졌을 때 둥글고 단단한 덩어리처럼 느껴진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사례의 치료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병에는 치료법이 없다.”

현대 의학사 연구에서는 이 기록을 유방암에 대한 기술로 해석합니다. 종양의 성질과 임상적 특징, 그리고 치료 불가능하다는 판단까지 포함된 이 문서는, 암에 대해 비교적 명확하게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질환을 신의 벌이나 저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태도는, 고대 이집트 의학이 관찰과 경험을 중시했음을 보여줍니다.

한의학 기록과의 대비

조선시대를 포함한 한의학 문헌에서는 오늘날 의미의 암을 명확히 특정할 수 있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종괴나 적취와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만, 악성 종양을 독립된 질환으로 인식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는 당시 평균 수명과 해부학 지식의 한계, 그리고 인체 내부를 직접 관찰하지 않는 의료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한의학에서 사용된 약물은 대체로 독성이 낮은 재료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강력한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은 동시에 치료 효과의 한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삼이나 홍삼과 같은 약재는 건강 증진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특정 암 질환을 치료하는 수단으로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이는 한의학의 가치 판단 문제가 아니라, 질병을 인식하고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구조적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암 개념의 발전

암에 대한 기록은 고대 이집트 이후 한동안 뚜렷하게 이어지지 않다가, 고대 그리스 시대에 다시 등장합니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종양의 형태를 게에 비유하며 ‘카르키노스(karkinos)’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이 용어는 오늘날 영어 단어 cancer의 어원이 됩니다.

또한 고대 문헌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왕비 아토사(Atossa)가 유방 종양을 앓았다는 기록이 등장하며, 암이 특정 문화권에 국한된 질환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덧붙이는 말

일부 상업 광고에서는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를 근거로 암 치료가 가능했던 것처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원문에는 분명히 “치료법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이 파피루스는 치료법을 제시하는 문서가 아니라, 고대 의학의 관찰 수준과 한계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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