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마비 공포와 솔크 백신의 등장
발행: 2025-12-17 · 최종 업데이트: 2025-12-24
1950년대 미국 사회를 뒤흔든 소아마비의 공포와 솔크 박사의 백신 개발 과정, 그리고 백신이 사회에 남긴 의미를 정리합니다.
원자폭탄보다 무서웠던 질병, 소아마비와 솔크 백신의 시대
1952년은 우리나라에서는 6·25전쟁(한국전쟁)이 장기화되던 시기였습니다. 같은 해 미국에서는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답은 원자폭탄이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냉전이 본격화되던 시기였고, 젊은 남성 다수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있던 현실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 장군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에 최대로 투여할 수 인력이 최대 매년 80만 정도였으며, 3년간 우리나라에 투입된 병사가 연인원 기준 1,789,000명이므로 사실 당시 가용한 인력이 거의 전부 투입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당연히 전쟁에 대한 공포가 매우 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설문에서 두 번째로 많이 선택된 대상은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존재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아마비(poliomyelitis)였습니다. 소아마비는 단순히 “어린이가 걸리는 병”이 아니라, 당시 미국 사회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은 상징적인 질병이었습니다.
소아마비가 이토록 두려운 존재로 인식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이 질병은 유행의 양상이 극히 불규칙했습니다. 매년 일정한 수준으로 환자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해에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다가도 특정 해에는 갑작스럽게 수만 명의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은 공포를 더욱 키웠습니다. 사람들은 “올해는 괜찮을까”라는 질문에 아무도 답해줄 수 없다는 사실 자체에 불안을 느꼈습니다.
1952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보고된 소아마비 환자는 약 5만 8천 명에 달했습니다. 이 수치는 같은 시기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자 수와 비교하면 절대적으로 압도적인 숫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아마비가 훨씬 더 강한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는, 이 질병이 남기는 결과 때문이었습니다. 소아마비는 중추신경계(central nervous system)를 침범해 회복이 불가능한 마비를 남길 수 있었고, 한순간에 건강한 아이를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당시 신문과 잡지에는 철제 보조기구를 착용한 아이들, 인공호흡기인 이른바 ‘철폐(iron lung)’에 누워 있는 환자들의 사진이 반복적으로 실렸습니다. 이러한 시각적 이미지는 소아마비를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언제든 가정의 일상을 파괴할 수 있는 공포의 상징으로 각인시켰습니다.
이러한 공포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입니다. 루즈벨트는 1921년, 39세의 나이에 하반신 마비 증상을 겪었고, 당시에는 소아마비로 진단되었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그의 질환이 소아마비가 아니라 길랑-바레 증후군(Guillain-Barré syndrome)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단의 정확성과는 무관하게, 당시 대중에게 중요한 사실은 “미국의 대통령조차 소아마비를 피하지 못했다”는 인식이었습니다. 이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대통령보다 유명했던” 소아마비 백신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소아마비 백신의 등장은 단순한 의학적 성취를 넘어 사회적 사건이었습니다. 이 백신을 개발한 인물이 바로 피츠버그 대학교의 바이러스학자 조너스 솔크(Jonas Salk) 박사입니다.
1954년,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소아마비 백신 임상시험이 진행되던 시기에 갤럽 여론조사가 실시되었습니다. 조사 결과는 매우 상징적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현직 대통령의 이름보다도 “소아마비 백신이 임상시험 중이라는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소아마비 백신이 단순한 의료 뉴스가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이자 희망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소아마비 발생률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이전까지 매년 반복되던 공포는 점차 일상에서 사라졌고, 소아마비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솔크 백신이 특별했던 이유
솔크 박사의 업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백신 개발 방식과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백신 개발의 주류는 약독화 백신(live attenuated vaccine)이었습니다. 이는 바이러스를 원래 숙주가 아닌 환경에서 장기간 배양하여 병원성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황열병 백신 등에서 이미 성공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최소 세 가지 혈청형(type 1, 2, 3)을 가지고 있었고, 각각을 충분히 약독화시키는 데에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빠른 백신 개발이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솔크 박사는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연구를 통해, 바이러스를 포르말린(formalin)으로 처리해 불활화하더라도 면역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즉, 바이러스를 살아 있는 상태로 약화시키는 대신, “완전히 죽인 바이러스”를 이용해 백신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1951년, 약 2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솔크 박사는 본격적인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사람이나 실험동물 대신, 원숭이 신장에서 유래한 베로 세포(Vero cell)를 이용해 바이러스를 대량 배양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백신 생산에 사용되는 방식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불활화의 정도였습니다. 불활화가 불충분하면 바이러스가 살아남을 위험이 있고, 반대로 과도하면 항원성이 감소해 백신 효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솔크 박사는 반복 실험 끝에 약 6일간 포르말린 처리를 하면, 살아남는 바이러스가 1억 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1952년 소규모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후, 1954년에는 수십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임상시험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백신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소아마비 바이러스 1형에서는 약 60~70%, 2형과 3형에서는 90% 이상의 예방 효과를 보였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이는 충분히 획기적인 성과였습니다.
명성, 논란, 그리고 커터 사건
솔크 박사는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태양에 특허를 낼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자주 인용되지만, 실제로는 그의 백신이 기존에 알려진 기술의 조합이었기 때문에 특허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웠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크는 대중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반면 학계 내부에서는 그의 명성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했습니다. 백신 개발에는 여러 동료 연구자들의 기여가 있었음에도,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는 대부분 솔크 개인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초기 백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커터 사건(Cutter incident)이었습니다. 일부 제조된 백신에서 불활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접종자 중 160명 이상이 실제로 소아마비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피해자와 제조사였던 커터 연구소(Cutter Laboratories, Berkeley) 간의 재판으로 이어지며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후속 조사 결과, 커터사는 솔크가 사용하지 않았던 다른 여과막을 사용했고, 이로 인해 세포 찌꺼기가 충분히 제거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잔여물은 포르말린 불활화를 방해했고, 극히 일부의 바이러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백신 생산 공정의 사소한 변경조차도 엄격히 규제하게 되었으며, 이는 현대 백신 관리 체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백신은 만능이 아니다
소아마비 백신의 성공은 백신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성공이 “백신은 모든 질병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백신은 80% 이상의 예방 효과를 보이기 어렵고, 특정 조건에서는 부작용 문제가 제기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결핵 백신인 BCG는 소아의 중증 결핵 예방에는 효과적이지만, 성인 폐결핵에 대한 예방 효과는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백신은 질병을 단번에 없애는 마법이 아니라, 위험을 크게 낮추는 현실적인 도구입니다.
소아마비 백신의 역사는 백신이 가진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것은 과학이 사회적 공포를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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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hinsky, D. M. Polio: An American Story https://www.amazon.com/Polio-American-David-M-Oshinsky/dp/019515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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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t, P. A. The Cutter Incident: How America's First Polio Vaccine Led to the Growing Vaccine Crisis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383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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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석, 「[신약연구史] 백신, 소아마비 퇴치까지」, BioSpectator https://www.biospectator.com/news/view/7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