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성산소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몸에 해로운 물질부터 떠올립니다. 세포를 공격하고 노화를 촉진하며 암이나 심혈관질환 같은 여러 질병을 일으킨다는 설명도 익숙하여, 비타민 C나 비타민 E 같은 항산화 성분을 섭취하면 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오랫동안 널리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그런데 활성산소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활성산소 연구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한때는 거의 단순한 독성 부산물처럼 여겨졌지만 이후에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핵심 신호물질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졌습니다. 그 출발점에는 데넘 하먼(Denham Harman)과 어빙 프리도비치(Irwin Fridovich)가 있습니다.
노화의 원인을 자유라디칼에서 찾다
1956년 데넘 하먼(Denham Harman)은 노화의 원인을 설명하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우리 몸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산소를 사용하는데, 그 과정에서 반응성이 높은 자유라디칼(free radical)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고, 이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세포를 조금씩 손상시킨다면 결국 노화가 일어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마치 금속이 공기 중의 산소에 노출되면 서서히 녹이 슬듯, 우리 몸도 평생 산소를 사용하며 조금씩 산화되어 늙어간다는 설명은 대중과 학계 모두에게 매우 직관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이후 실제로 노화된 생체 조직에서 산화된 단백질과 지질, 손상된 DNA가 많이 발견되면서 자유라디칼 노화설(Free Radical Theory of Aging)은 더욱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생명체 내부에서 이러한 반응성 산소종이 실제로 얼마나 체계적으로 생성되고 관리되는지 명확히 입증되지 못했다는 중요한 한계가 있었는데, 이 문제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든 인물이 바로 어빙 프리도비치(Irwin Fridovich)였습니다.
프리도비치가 발견한 이상한 효소
1969년 조 맥코드(Joe McCord)와 어빙 프리도비치(Irwin Fridovich)는 오래전부터 정체가 불분명했던 한 단백질의 핵심 기능을 밝혀냈습니다. 이 단백질은 세포에 해로운 슈퍼옥사이드(superoxide)를 전문적으로 제거하는 효소였으며, 두 사람은 이를 슈퍼옥사이드 디스뮤테이스(superoxide dismutase), 줄여서 SOD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성된 과산화수소는 연이어 카탈라아제(catalase)나 글루타치온 퍼옥시다아제(glutathione peroxidase) 같은 효소들에 의해 무해한 물(H₂O)로 신속하게 전환됩니다.
이 발견은 생물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 몸에 슈퍼옥사이드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정교한 효소가 존재한다는 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 몸 안에서 슈퍼옥사이드가 매 순간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즉 생명체는 산소를 소비하는 대사 과정에서 반응성이 높은 산소종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며, 이를 능동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자체 방어체계까지 진화적으로 구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프리도비치의 연구를 기점으로 활성산소는 단순한 화학적 불순물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필수적인 연구 대상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활성산소가 세포를 손상시킨다는 사실
활성산소(Reactive Oxygen Species, ROS)에는 슈퍼옥사이드와 과산화수소를 비롯해, 조건에 따라 생성되는 반응성이 극도로 강한 하이드록실 라디칼(•OH) 등 다양한 종류가 존재합니다. 이들이 체내에서 과도하게 증가하면 세포막을 이루는 지질을 산화시키고, 단백질의 3차원 입체 구조를 변성시키며, DNA에 돌연변이와 치명적인 손상을 유발합니다.
특히 염증이 심한 조직이나 혈액 공급이 차단된 부위에서 많은 양의 활성산소가 생성되며,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후 혈류가 재개되는 허혈-재관류 손상(ischemia-reperfusion injury) 과정에서도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노화뿐만 아니라 암, 당뇨병, 심혈관질환, 퇴행성 뇌질환 등 현대의 주요 만성질환 전반에서 산화 스트레스의 증가가 일관되게 관찰되자, 학계에서는 활성산소가 조직 손상의 주범이라면, 이를 체외에서 제거해 줌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매우 자연스러운 가설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항산화제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몸에는 SOD, catalase, glutathione peroxidase 같은 내인성 항산화 효소뿐만 아니라, 비타민 C와 비타민 E처럼 산화환원 반응에 관여하는 물질들이 이미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외부에서 항산화 물질을 보충제로 더 많이 공급해주면 활성산소의 공격으로부터 세포를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20세기 후반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확산되었습니다.
실제로 질병 모델 동물을 대상으로 활성산소를 억제하거나 항산화제를 투여한 전임상 실험에서는 조직 손상이 줄고 염증 지표가 개선되는 등 고무적인 결과가 쏟아졌습니다. 특히 급성으로 심한 산화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동물 모델에서 항산화 치료의 뚜렷한 손상 억제 효과가 반복적으로 입증되면서, 인간 대상 임상시험에서도 동일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커졌습니다.
동물에서는 효과가 있었는데 사람에서는 달랐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스트라제네카가 뇌졸중 치료제로 개발했던 강력한 활성산소 소거제 NXY-059였습니다. 동물실험에서 탁월한 신경 보호 효과를 입증하여 큰 기대를 모았고 초기 소규모 임상시험에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났으나, 수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대규모 3상 임상시험(SAINT II)에서는 위약 대비 뚜렷한 임상적 개선 효과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최종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러한 한계는 비타민 E나 베타카로틴 같은 대중적인 항산화 비타민 보충제 연구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었습니다. 심혈관질환과 암을 예방해 줄 것이라 기대했던 대규모 인체 추적 임상시험들에서 유의미한 예방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흡연자 등 일부 고위험군에서는 오히려 폐암 발병률이나 사망률이 증가하는 등 역설적인 부작용까지 관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연구자들은 활성산소를 무조건 없애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제거하려는 전략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질병에서 많이 보인다고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질병 조직에서 활성산소 농도가 높게 관찰된다고 해서 활성산소가 반드시 질병을 촉발한 근본 원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마치 화재 현장에서 언제나 소방관이 다수 발견된다고 해서 소방관이 화재를 일으킨 범인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조직에 염증이 시작되면 침윤된 면역세포들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대량의 활성산소를 뿜어내고, 세포 손상으로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붕괴하면서 활성산소 누출이 2차적으로 급증할 수 있습니다. 즉 활성산소는 질병을 악화시키는 매개 요인일 수는 있어도, 이미 발생한 생체 손상과 염증 반응의 결과로서 증가한 생물학적 지표일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그 뿌리가 되는 원인을 방치한 채 활성산소만을 인위적으로 제거한다고 해서 질병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활성산소는 없애야 할 쓰레기만은 아니었습니다
더 나아가 활성산소 생물학의 발전은 더욱 놀라운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우리 몸은 활성산소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순간마다 스스로 정밀하게 생산하여 필수적인 세포 간 신호 전달 물질로 적극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운동을 할 때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활성산소는 근육의 적응과 미토콘드리아 생성을 자극하는 신호가 되며, 대식세포와 같은 선천면역세포는 병원체를 사멸시키기 위한 정밀 타격 무기로 활성산소를 의도적으로 방출합니다. 또한 세포는 미량의 활성산소를 감지함으로써 전신 스트레스 상황을 인지하고 NRF2 경로를 비롯한 체내 항산화·해독 방어 회로를 적시에 가동합니다.
결국 활성산소는 과도할 때는 조직을 파괴하지만 적정 수준에서는 생명 활동을 조율하는 두 얼굴을 가진 물질이었던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활성산소는 맹목적으로 박멸해야 할 독성 쓰레기가 아니며, 얼마나 만들어지는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가 생체 건강을 결정짓는 핵심 열쇠입니다.
하먼의 노화설에서 시작해 프리도비치의 SOD 발견을 거치며 활성산소는 오랜 세월 유해한 물질로만 인식되어 왔으나, 항산화제 임상시험의 거듭된 실패는 이러한 이분법적 접근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 몸이 왜 활성산소를 일부러 만들어내며, 이것이 세포 내에서 어떻게 정교한 생명 신호로 작용하는지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