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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의 탄생: 폰 피르케와 쉬크, 그리고 혈청병의 시대

발행: 2026-01-08 · 최종 업데이트: 2026-01-08

말(horse) 혈청 치료가 아이들을 살리던 시대, 그 성공이 ‘면역 반응이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알레르기 개념을 탄생시킨 1905년 고전.

Die Serumkrankheit (Serum Sickness)
Clemens von Pirquet, Béla Schick · Franz Deuticke (Leipzig/Vienna), monograph · 1905
디프테리아 항독소 치료에 쓰이던 말 혈청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발진·발열·관절통 등 전신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음을 체계적으로 기술하며, ‘면역 반응이 보호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알레르기 개념의 출발점을 만든 고전.

아이들을 살리던 ‘기적의 치료’가 만든 새로운 질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디프테리아(diphtheria)는 소아에게 특히 치명적인 감염병이었습니다. 목과 기도에 막 같은 병변이 생기면 숨쉬기가 어려워지고, 치료가 늦으면 아이가 빠르게 나빠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항독소(antitoxin) 혈청치료(serotherapy)는 정말로 “살릴 수 있는 치료”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말(horse)을 면역시킨 뒤 얻은 혈청을 주사하면, 숨이 넘어가던 아이가 24–48시간 사이에 눈에 띄게 호전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공적인 치료 뒤에 이상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아이는 감염에서 회복하고, 며칠 동안은 멀쩡합니다. 부모도 의사도 한숨을 돌립니다. 그런데 보통 8~10일쯤 지나면, 갑자기 몸 전체에 두드러기(urticaria) 같은 발진이 올라오고, 가려움이 심해지고, 열이 나고, 맥박이 빨라지고, 림프절이 붓고, 관절통이 생기고, 몸이 붓기도 합니다. ‘병이 다시 시작된 것’ 같은 풍경입니다.

이 낯선 후유증을 폰 피르케와 쉬크는 가볍게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빈(Vienna)에서 소아 환자를 진료하던 젊은 의사들이었고, 말 혈청을 맞은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반응을 가능한 한 자세히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쌓인 기록이 1905년 단행본 혈청병(Serum Krankheit, Die Serumkrankheit)으로 정리됩니다.

혈청병의 핵심은 “시간차”였습니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증상을 나열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폰 피르케와 쉬크가 집요하게 붙든 것은 “시간표”였습니다.

첫 번째 혈청 주사 뒤에는 대개 즉각적인 문제가 없었습니다. 증상은 며칠이 아니라 “1주 이상” 지나서 나타났습니다. 이 지연(delayed)은 우연이 아니라, 반복 관찰되는 패턴이었습니다. 즉, 몸 안에서 어떤 과정이 진행된 뒤에야 임상 증상이 튀어나오는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장면은 재주사(re-injection)에서 나타납니다. 같은 혈청을 다시 맞으면, 기다릴 필요가 없어집니다. 반응이 더 빨라지고 더 강해집니다. 어떤 경우에는 전신 쇼크(shock)에 가까운 급성 반응이 나타날 수 있고, 그 뒤로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혈청병 양상이 더 격하게 재현되기도 합니다.

이 “첫 번째는 늦게, 두 번째는 빨리”라는 대비는 의사에게 한 가지 결론을 강요합니다. 주사를 맞은 뒤, 숙주(host) 자체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즉, 면역 반응은 단순히 외부 침입자를 막는 보호장치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는 몸을 괴롭히는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면역이 해가 된다’는 개념이 알레르기(allergy)를 낳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혈청병이 대표적인 면역복합체(immune complex) 질환의 모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905년 당시 폰 피르케와 쉬크는 분자 기전을 알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들은 임상 현상으로부터 면역의 규칙을 끌어냅니다.

  • 외부 단백질(말 혈청)을 넣으면 몸이 반응합니다.

  • 처음 반응은 느리게 나타납니다.

  • 두 번째 노출에는 훨씬 빠르고 강하게 반응합니다.

  • 그 반응은 보호가 아니라 ‘질병’의 형태로도 나타납니다.

이 관찰은 면역 기억(immunologic memory), 특히 2차 면역 반응(secondary immune response)의 직관을 임상 현장에서 먼저 보여준 셈입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곧 “알레르기(allergy)”라는 언어로 이어집니다. 폰 피르케는 1906년, 면역 반응성이 ‘다르게 변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알레르기(allergy)라는 용어를 제안합니다.

즉, 알레르기는 꽃가루나 비염의 이야기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살리려던 혈청치료의 성공과 그 뒤에 따라온 부작용을 정면으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왜 이 논문이 ‘임상 면역학’의 출발점처럼 느껴질까요?

폰 피르케와 쉬크의 작업은 연구실 실험이 아니라 병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임상의의 눈으로 보면, 이 책은 “부작용 보고서”이면서 동시에 “면역의 교과서”입니다. 치료의 성공을 강조하기보다, 성공 뒤에 나타난 예외와 역설을 끝까지 추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역설은 결과적으로 의학의 방향을 바꿉니다. 혈청치료는 여전히 많은 생명을 구했지만, 반복 투여와 이종(異種) 단백질의 위험이 명확해지면서 ‘면역을 이용한 치료’가 무조건 장밋빛이라는 믿음은 흔들립니다. 면역은 칼이 될 수도 있고 방패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 시기부터 임상 언어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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