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속 수은 논쟁과 티메로살의 진실
발행: 2025-12-17 · 최종 업데이트: 2025-12-17
티메로살 논쟁은 과학이 아니라 감정에서 시작되었다. 에틸수은과 메틸수은의 차이, 그리고 백신 불신이 확산된 사회적 배경을 정리한다.
“백신 속 수은” 논쟁의 실체
티메로살(Thimerosal)을 둘러싼 공포와 과학
2000년대 초 미국 사회에서는 백신과 자폐증을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자폐증 진단을 받은 일부 아이들의 부모들이, 자녀가 백신 접종 이후 달라졌다고 느낀 경험을 온라인 포럼과 이메일을 통해 공유하면서 하나의 집단적 서사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은 공통 원인을 찾고자 했고, 그 중심에 놓인 물질이 바로 백신 방부제인 티메로살(Thimerosal)이었습니다.
이 부모들은 스스로를 “머큐리 맘스(Mercury Moms)”라 불렀습니다. 이 운동은 자녀를 지키려는 절박함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정부 기관과 전문가 집단을 향한 정치적·사회적 압박으로 발전했습니다. 언론은 이들의 감정적인 증언을 집중 조명했고,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검증되기 전에 공포는 대중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예방 원칙에 따른 결정, 그리고 역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와 식품의약국(FDA)은 1999년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위해 증거는 없지만, 국민 신뢰를 고려해 어린이 백신에서 티메로살을 제거하자”고 권고했습니다. 이는 과학적 위험 판정보다는 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에 따른 정책적 선택이었으며, 2001년부터 미국 내 소아용 백신에서는 티메로살이 사용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의도와 달리 또 다른 문제를 낳았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위험하지 않았다면 왜 제거했는가”라고 되묻기 시작했고, 티메로살 제거는 오히려 백신이 위험하다는 신호로 해석되었습니다. 과학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가, 역설적으로 백신 불신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티메로살은 무엇인가
티메로살은 1930년대부터 사용되어 온 유기수은 화합물로, 다회용 백신 병에서 세균과 곰팡이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방부제입니다. 논란의 핵심은 이 물질에 포함된 에틸수은(ethylmercury)입니다. 하지만 독성학적으로 “수은”은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형태에 따라 독성과 체내 거동이 크게 달라지는 물질군입니다.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참치나 심해어에 축적되는 메틸수은(methylmercury)입니다. 메틸수은은 체내 반감기가 50~80일로 길어 신경계에 축적될 수 있습니다. 반면, 티메로살에 포함된 에틸수은은 체내 반감기가 약 7일로 짧고, 조직에 거의 축적되지 않으며 빠르게 배출됩니다. 이 차이는 독성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응급의학 및 독성학 전문가인 라이언 마리노(Ryan Marino)박사는 “티메로살로 급성 중독을 일으키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의 노출이 필요하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중금속은 무조건 체내에 축적된다는 통념 자체가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는 점도 함께 지적됩니다.
과학적 검증의 결론
2004년 미국의학한림원(IOM, 현 National Academy of Medicine)은 티메로살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평가한 다수의 역학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 양자 사이에 인과관계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평가는 수백만 명 규모의 백신 접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며, 단순한 전문가 의견이 아닌 체계적 검토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론은 이미 형성된 공포를 되돌리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적 경험은 통계와 데이터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었고, 백신 회의론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왜 아직도 티메로살이 사용되는가
현재 미국에서 티메로살이 포함된 백신은 성인용 독감 백신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은 1회용 프리필드 주사기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다회용 백신에서 티메로살이 남아 있는 이유는 비용과 접근성때문입니다.
독감 백신은 매년 대량 생산이 필요하며, 다회용 병은 생산·보관 비용이 낮아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이나 취약계층에 유리합니다. 방부제가 없으면 다회용 병은 현실적으로 사용이 어렵고, 현재까지 티메로살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동일 수준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가진 방부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스 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의 닐 핼시(Neal A. Halsey) 교수는 “티메로살은 오랫동안 연구된 물질이며, 어린이 백신에서 제거된 것은 위험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예방 차원의 정책 결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세계 최초의 공중보건 전문 대학원으로 알려진 이 대학에서 백신 정책과 글로벌 보건 분야를 이끌어 온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입니다.
남은 교훈
‘백신 속 수은’이라는 공포는 과학에서 출발한 논쟁이 아니라, 감정과 불신에서 확산된 사회적 현상이었습니다. 자식을 보호하려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믿음이 집단적 공포로 전환될 때 그 피해는 사회 전체로 확산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가 과잉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검증된 사실을 가려내는 기준입니다. 백신은 완벽한 기술은 아니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공중보건 수단 중 하나입니다. 티메로살 논쟁은 과거의 사건이 되었지만, 그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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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itute of Medicine. Immunization Safety Review: Vaccines and Autism. National Academies Press,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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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C. Thimerosal and Vacc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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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fic American. The Real Story of Thimerosal in Vacci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