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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안에서 만들어진 T세포 기억: 사이토카인 유전자 프로그램의 분화

발행: 2026-01-04 · 최종 업데이트: 2026-01-04

1991년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 논문을 통해 본 나이브 T세포에서 메모리 T세포로의 전환

The Differentiation of T-cell Lymphokine Gene Expression: The In Vitro Acquisition of T-cell Memory
Stephan Ehlers, Kendall A. Smith ·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 · 1991
제대혈 유래 나이브 T세포가 1차 자극과 IL-2 의존적 증식을 거친 뒤, 2차 자극에서 성인 메모리 T세포와 유사한 사이토카인 유전자 발현 프로그램을 획득함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입증한 연구.

1. 면역학적 기억이라는 오래된 질문

면역학적 기억(immunological memory)은 면역계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한 번 노출된 병원체에 대해, 이후에는 더 빠르고 더 강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 바로 면역(immunity)의 본질입니다. 백신(vaccination)이 작동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까지도, T세포에서 기억이 분자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B세포에서는 항체 분비, 클래스 스위치 재조합(class switch recombination), 친화도 성숙(affinity maturation)이라는 지표가 있었지만, T세포에는 이에 상응하는 명확한 분자적 기준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은 바로 그 질문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2. 나이브 T세포와 메모리 T세포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당시 많은 연구자들은 표면 마커(surface marker)를 이용해 나이브(naive) T세포와 메모리(memory) T세포를 구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항상 불완전한 분리와 오염(contamination)의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에서 저자들이 선택한 전략은 훨씬 근본적이었습니다.

“가장 확실한 나이브 T세포는, 아직 항원에 노출된 적이 없는 존재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답이 바로 제대혈(cord blood)이었습니다. 제대혈 유래 T세포는 사실상 모두가 항원 경험이 없는 ‘virgin’ T세포입니다. 이 점이 이 논문의 출발점이 됩니다.

3. 실험 설계의 핵심: 극도로 정제된 T세포

연구자들은 제대혈과 성인 말초혈에서 얻은 T세포를 대상으로, 매우 정교한 정제 과정을 거쳐 보조 세포(accessory cells)를 최대한 제거했습니다.

  • Ficoll–Hypaque 밀도 구배로 PBMC 분리

  • Percoll 재분획으로 림프구 정제

  • leucine methyl ester를 이용한 포식세포 제거

  • Fc 수용체 기반 부착 제거

  • 추가적인 항체 칵테일로 B세포, NK세포, CD8 T세포 제거

그 결과, 제대혈과 성인 모두에서 거의 동일한 구성의 CD4⁺ T세포 집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관찰되는 차이가 세포 구성의 차이가 아니라 세포의 생물학적 상태 차이임을 보장했습니다.

4. TCR 자극과 readout의 선택

T세포 자극에는 anti-CD3 단일클론 항체(64.1)를 사용했습니다. 이 항체는 플라스틱 표면에 교차결합(cross-linking)된 형태로 제시되어, TCR–CD3 복합체에 강력하고 재현성 있는 자극을 제공합니다.

이후 연구자들은 세 가지 수준에서 반응을 측정했습니다.

  • 세포 증식: 삼중수소 티미딘(tritiated thymidine) 흡수

  • 사이토카인 단백질: ELISA 및 생물학적 분석

  • 사이토카인 유전자 발현: PCR 기반 mRNA 검출

특히 PCR의 도입은, 제한된 세포 수에서도 극히 민감한 유전자 발현 분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5. 첫 번째 관찰: 증식은 비슷하다

흥미롭게도, 제대혈 T세포와 성인 T세포는 anti-CD3 자극에 대해 증식 능력 자체는 거의 동일했습니다. 즉, 나이브 T세포라고 해서 증식을 못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결과는 중요한 전제를 제공합니다.

이후 관찰되는 차이는 “증식 능력”이 아니라 “기능 프로그램의 차이”라는 점입니다.

6. 결정적 차이: 사이토카인 유전자 발현

차이는 사이토카인 발현 패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 성인 T세포

    • 자극 후 3–6시간 이내에
      IL-2, IL-3, IL-4, IL-5, IFN-γ, GM-CSF 등
      다수의 사이토카인 유전자를 동시에 발현
  • 제대혈 T세포

    • 같은 조건에서도
      IL-2와 IL-2 수용체 α 사슬(IL-2Rα) 정도만 발현

    • 다른 사이토카인 유전자는 거의 발현되지 않음

자극을 PHA + PMA로 바꿔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극의 강도 문제가 아니라, 세포의 분화 상태 문제임을 의미합니다.

7. 시험관 안에서의 ‘기억 획득’

이 논문의 가장 중요한 실험은 다음 단계에서 이루어집니다.

  1. 제대혈 T세포를 anti-CD3로 1차 자극

  2. 이후 자극을 제거하고, IL-2만 공급하며 7–10일간 배양

  3. 이 세포를 다시 anti-CD3로 2차 자극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 2차 자극을 받은 제대혈 유래 T세포는

  • 이제 성인 메모리 T세포와 거의 동일한 범위의 사이토카인 유전자를

  • 수 시간 내에 빠르고 강하게 발현했습니다

즉, 시험관 안에서도 나이브 T세포 → 메모리형 T세포로의 전환이 가능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8. 이 연구가 제시한 개념적 결론

이 논문은 면역학적 기억을 다음과 같이 재정의합니다.

T세포 기억이란 단순히 더 빨리 증식하는 능력이 아니라, 다양한 사이토카인 유전자 프로그램을 동시에 가동할 수 있는 능력의 획득이다.

의학적 용어로, 이런 2차 반응은 아나므네시스(anamnesis)라고 불립니다. 면역계가 과거의 경험을 “다시 기억해내는” 과정입니다.

9.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 의미

이 연구는 이후 단일세포 RNA 분석(single-cell RNA-seq) 같은 기술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T세포 기억의 질적 변화(qualitative change)를 분자 수준에서 포착한 시도였습니다.

또한,

  • 백신이 왜 빠른 면역 반응을 가능하게 하는지

  • 왜 메모리 T세포가 감염 초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적 토대를 제공합니다.

10. 마무리하며

1991년 이 논문은, “T세포 기억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명확한 실험적 모델과 분자적 언어를 제시했습니다.

면역학적 기억을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획득되는 유전자 발현 능력의 확장으로 바라보게 만든 점에서, 이 연구는 지금까지도 면역학 고전(classic)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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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문헌

  1. Ehlers, Stephan, and Kendall A. Smith. “The Differentiation of T-cell Lymphokine Gene Expression: The In Vitro Acquisition of T-cell Memory.”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 1991. https://rupress.org

  2. Burnet, F. M. “A modification of Jerne’s theory of antibody production using the concept of clonal selection.” Australian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and Medical Science, 1957. https://onlinelibrary.wiley.com

  3. Cantrell, D. A., and K. A. Smith. “The interleukin-2 T-cell system.” Science, 1984. https://science.sciencema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