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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필락시스의 발견: 면역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는가

발행: 2026-01-07 · 최종 업데이트: 2026-01-07

샤를 리세와 폴 포르티에의 실험을 통해 드러난 면역의 역설, 아나필락시스의 탄생과 그 과학사적 의미를 정리합니다.

De l’anaphylaxie
Charles Richet · Comptes Rendus de la Société de Biologie · 1902
1901년 지중해에서 수행된 실험을 바탕으로, 항원의 반복 노출이 보호가 아니라 치명적인 과민반응을 유발할 수 있음을 최초로 보고하였다. 리세는 이를 기존의 ‘필락시스(phylaxis, 보호)’ 개념과 구별하여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라는 새로운 용어로 정의함으로써, 면역이 항상 이로운 반응이 아니라는 면역학적 역설을 처음으로 명확히 제시하였다.

서론: 면역은 항상 우리 편일까요?

오늘날 면역은 흔히 “몸을 지켜주는 방어 체계”로 이해됩니다. 백신과 항체, 감염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이미지가 면역의 본질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에 처음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사건이 20세기 초에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프랑스의 생리학자 Charles Richet와 의사 Paul Portier가 있습니다. 이들의 연구는 면역이 보호가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위협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1901년의 실험: 발견은 바다 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01년 여름, 두 연구자는 지중해를 항해하던 연구선 Président Théophile호에서 해양 생물 독소의 생리적 영향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연구 대상은 해파리와 말미잘(anemone)의 독소였으며, 목적은 단순했습니다.
소량의 독소를 반복 주사하면 생체가 이에 적응하거나 면역을 획득할 것이라는 가설이었습니다.

실험의 첫 단계는 예상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개들에게 극히 희석된 독소를 주사했을 때, 일시적인 불편감 외에 특별한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동물들이 면역 상태에 도달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결과: 보호 대신 치명적 반응

그러나 2~3주 후, 동일한 독소를 다시 주사했을 때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동물들은 수 초 내에 격렬한 경련과 호흡 곤란을 보였고, 일부는 곧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첫 번째 노출이 보호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두 번째 노출에서 치명적인 반응을 유발한 것입니다.

리세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첫 번째 주사는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았고, 두 번째 주사는 생명을 앗아갔다.”

이 순간, 기존의 면역 개념은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1902년: ‘아나필락시스’라는 이름의 탄생

이 현상은 1901년에 관찰되었지만, 학문적으로 공식 발표된 것은 1902년이었습니다. 리세와 포르티에는 프랑스 생물학회 회보에 짧은 보고를 통해 이 결과를 공개하였고, 리세는 이 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용어를 제안합니다.

그는 보호를 뜻하는 필락시스(phylaxis)의 반대 개념으로, 그리스어 접두사 *ana-*를 붙여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보호의 실패”가 아니라, 보호와 정반대로 작동하는 면역 반응을 의미했습니다.

면역의 역설: 기억은 축복이자 위험입니다

이후 연구를 통해 리세는 아나필락시스가 특정 해양 독소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밝혔습니다. 세균 독소, 말 혈청, 달걀 단백질 등 다양한 외부 단백질에서도 유사한 반응이 재현되었습니다.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면역의 핵심인 ‘기억’이 상황에 따라 생명을 보호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면역 반응은 언제나 이롭지 않으며, 과도하거나 통제되지 않을 경우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과학사적 의미와 유산

아나필락시스의 발견은 알레르기(allergy), 천식(asthma), 아나필락시스 쇼크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훗날 IgE 항체, 비만세포(mast cell), Th2 반응이 밝혀지면서, 현대 알레르기 면역학의 뿌리가 이 실험에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공로로 리세는 191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실험 결과가 아니라, 면역 개념 자체를 확장시킨 발견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입니다.

맺음말: 면역은 균형의 문제입니다

아나필락시스의 발견 이후, 면역은 더 이상 절대적인 선으로 이해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면역은 생명을 지키는 힘이지만, 동시에 통제가 필요하며 균형을 요구하는 생리적 체계입니다.

1901년의 작은 실험은 “면역은 언제나 우리 편인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과학의 언어로 제기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