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은 어떻게 치료제이자 발암원이 되었는가
발행: 2025-12-25 · 최종 업데이트: 2025-12-25
X선과 방사선의 발견 이후, 암 치료의 혁신이 어떻게 동시에 새로운 발암 위험을 드러냈는지 방사선의 이중적 역사를 통해 살펴봅니다.
방사선은 어떻게 치료제이자 발암원이 되었는가
암의 역사에서 방사선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방사선은 암 치료에 사용된 최초의 비수술적 물리적 개입 수단이었으며, 동시에 의학적 개입 자체가 암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드러낸 기술이었습니다.
이 이중성은 이후 암 치료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질문,
즉 “치료의 이득은 언제 위험을 정당화하는가”라는 문제의 출발점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광선의 등장
19세기 말, 렌트겐의 X선의 발견과 그뒤 베르렐 등에 의한 방사선의 발견은 의학의 감각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인체를 절개하지 않고 내부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혁명에 가까웠습니다. 이 시기 방사선은 질병의 원인도, 치료제도 아닌 순수한 ‘발견’에 가까운 대상이었습니다.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냄새도 없었으며, 즉각적인 통증을 유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곧 방사선을 안전한 기술로 오인하게 만드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초기 의료진과 연구자들은 방사선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며 실험했고, 그 대가는 나중에야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방사선이 암 치료와 연결된 구체적 계기들
피부 병변에서 처음 관찰된 방사선 효과 (1896~1899)
X선이 발견된 직후, 방사선의 생물학적 효과가 가장 먼저 관찰된 부위는 피부였습니다. 이는 우연이라기보다, 당시 기술 수준에서 방사선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하게 도달할 수 있었던 조직이 피부였기 때문입니다.
1896년 이후 여러 의사들은 X선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피부에서 염증, 탈모, 조직 괴사와 같은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환자에서는 이러한 손상과 함께 종양 조직이 주변 정상 조직보다 더 빠르게 위축되는 현상이 동반된다는 점이 보고됩니다.
초기에는 이러한 변화가 치료 효과인지, 단순한 방사선 손상에 불과한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피부암 병변이 정상 피부보다 선택적으로 감소하는 사례들이 축적되면서, 방사선을 의도적으로 치료에 사용하려는 시도가 점차 등장하게 됩니다.
최초의 기록된 방사선 암 치료 시도 (1896)
방사선을 암 치료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사용한 가장 이른 기록 중 하나는 프랑스의 의사 Victor Despeignes의 사례입니다.
1896년, 그는 위암으로 추정되는 복부 종양을 가진 환자에게 반복적인 X선 조사를 시행했고, 그 결과 종양 크기의 감소와 통증 완화를 관찰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치료는 장기 생존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방사선이 종양에 생물학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임상적으로 기록한 초기 사례로 평가됩니다.
이 시점에서 방사선의 작용 기전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고, 세포 분열, DNA 손상, 돌연변이와 같은 개념 역시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종양 감소라는 결과는, 방사선을 치료 도구로 탐색해 볼 충분한 동기를 의사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소아 병변 치료: 레오폴트 프로인트의 사례 (1897)
방사선 치료의 초기 역사에서 또 하나의 상징적인 사례는 오스트리아의 의사 Leopold Freund가 보고한 소아 환자 치료입니다.
1897년, 그는 털이 과도하게 자라고 피부가 비후된 선천성 모반을 가진 소아 환자에게 X선을 조사했고, 그 결과 병변의 위축과 모발 소실을 관찰했습니다. 이 사례는 소아 환자에게 방사선을 치료 목적으로 적용한 가장 이른 기록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이 경험은 방사선이 단순히 조직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성장 자체를 억제할 수 있다는 개념을 명확히 드러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심각한 윤리적·안전성 문제가 존재하지만, 당시로서는 수술로 제거할 수 없는 병변을 줄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라듐의 등장과 ‘내부에서 태우는 치료’ (1901년 이후)
20세기 초, X선과 거의 동시에 방사성 물질인 라듐(radium)이 임상에 도입되면서 방사선 치료의 범위는 한 단계 더 확장됩니다. 라듐은 외부에서 조사하는 X선과 달리, 종양 내부 또는 인접 부위에 직접 배치할 수 있는 방사선원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방사선 치료는 단순한 피부 병변 치료를 넘어, 심부 종양을 대상으로 한 치료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이 시기 의사들은 방사선을 “종양을 안에서부터 태워 제거하는 힘”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인식이 바로 방사선 치료를 ‘태워서 제거하는 치료’로 받아들이게 된 역사적 배경이 됩니다.
치료자들이 먼저 병들기 시작하다
그러나 방사선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사용한 사람들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피부 궤양, 만성 화상, 손가락 괴사, 그리고 수년 후 발견되는 피부암과 백혈병이 보고됩니다.
이 문제는 곧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매우 어려운 형태의 위험이라는 점에서 더 복잡했습니다.
방사선 노출과 암 발생 사이에는 긴 시간차가 존재했고, 노출 강도 역시 정확히 측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굴뚝 청소부 소년들의 직업성 암과 구조적으로 유사합니다.
원인은 환경에 있었지만, 증거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타났습니다. 방사선은 그렇게 의료 환경 속 새로운 직업성 발암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방사선은 왜 암을 만들까
방사선의 발암 기전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암에 대한 인식 역시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방사선은 세포를 즉각적으로 파괴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유전물질에 축적되는 손상이었습니다.
이 발견은 암이 단번에 생기는 질환이 아니라, 누적된 손상과 오류의 결과라는 관점을 강화합니다.
특히 이온화 방사선은 DNA의 구조를 직접 손상시킬 수 있으며, 이 손상이 완벽하게 복구되지 않을 경우 돌연변이로 남습니다. 이 개념은 훗날 다단계 발암 모델과 유전자 중심 암 이론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됩니다.
즉, 방사선은 암을 “치료하는 힘”이자, 암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보여준 실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위험을 계산하는 의학의 등장
방사선 치료는 곧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의학에 던집니다.
“이 치료는 미래의 암 위험을 감수할 만큼 정당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확률과 시간의 문제였습니다.
당장의 종양을 줄이는 이득과, 수십 년 뒤 발생할 수 있는 발암 위험을 비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의학은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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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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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할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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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노출
과 같은 개념을 체계적으로 다루기 시작합니다. 방사선 치료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위험을 계산하는 의학적 사고방식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사고방식은 이후 항암화학요법, 면역치료, 심지어 조기 검진 논쟁에까지 깊이 스며들게 됩니다.
방사선이 남긴 질문
방사선은 암을 치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치료라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 이중성은 암 치료 역사 전반에 반복됩니다.
겨자가스에서 항암제가 태어났고,
강력한 표적 치료는 새로운 내성을 낳았으며,
조기 진단은 과잉진단이라는 문제를 드러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