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열물질(pyrogen)은 어떻게 검출 대상이 되었을까
발행: 2026-01-16 · 최종 업데이트: 2026-01-16
죽은 세균도 열을 일으킨다는 관찰에서 시작해, 플로렌스 세이버트의 정제 실험과 발열시험 표준화까지 발열물질 연구의 흐름을 정리합니다.
1. 죽은 세균도 반응을 일으킨다 ― 파이퍼의 관찰
1892년, 독일의 세균학자 리하르트 파이퍼(Richard Pfeiffer)는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보고했습니다.
콜레라균을 완전히 사멸시킨 뒤 동물에 주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동물에서 발열과 쇼크가 나타난 것입니다.
파이퍼는 이 반응이 살아 있는 세균 증식 때문이 아니라, 세균 자체에 포함된 독성 물질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는 이 물질이 세균 내부에 존재하며, 세균이 죽은 뒤에도 숙주 생리 반응을 유발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때 제시된 개념이 바로 내독소(endotoxin)입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는 내독소가 어떤 화학적 실체를 가지는지, 어떻게 검출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 1910년대의 축적된 실험 ― 발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20세기 초에 들어 여러 연구자들은 파이퍼의 관찰을 반복 확인하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공통된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살균한 세균의 여과액만 주입해도 체온이 상승했습니다.
고온 처리 후에도 발열 반응은 유지되었습니다.
세균을 완전히 제거한 필터 여과액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시기부터 발열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을 통칭해 발열물질(pyrogen)이라 부르기 시작했지만, 그 실체는 여전히 불분명했습니다. 다만 단백질 독소와 달리 열에 매우 안정적이라는 점만은 점차 분명해졌습니다.
3. 플로렌스 세이버트 ― 발열물질 연구의 방향을 바꾸다
1920년대 초,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생화학자 플로렌스 B. 세이버트(Florence B. Seibert)가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녀의 관심은 이론보다도 매우 실용적인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왜 완전히 멸균한 주사제를 투여해도 환자에게 발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가?”
3-1. 발열의 원인은 살아 있는 세균이 아니었다
세이버트는 수액과 주사용수에서 나타나는 발열 반응을 체계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다음 사실을 실험적으로 확인했습니다.
100℃ 열탕 멸균 후에도 발열 반응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세균을 제거한 여과액에서도 발열성이 유지되었습니다.
토끼를 이용한 실험에서 발열 반응은 매우 높은 재현성을 보였습니다.
이를 통해 세이버트는 발열물질이 단백질이 아니며, 세균에서 유래한 고온 안정성 분자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3-2. 증류 과정에서 일어나는 오염의 정체
세이버트는 발열 사건이 특정 병원이나 제조소에서 반복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분석 결과, 문제는 증류수 제조 과정 자체에 있었습니다.
증류 중 발생하는 미세한 물방울(spray)이 세균 유래 발열물질을 함께 운반해, 최종 증류수에 섞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단순히 끓여서 증류하는 방식만으로는 발열물질을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3-3. 무발열 증류수 제조 방식의 확립
세이버트는 증류 과정에서 물방울이 섞이지 않도록 배플(baffle) 구조를 포함한 장치를 고안했습니다. 이 장치는 수증기만을 선택적으로 응축시키고, 발열물질이 포함된 액적의 이동을 차단했습니다.
이 방식은 빠르게 병원과 제약 제조 현장에 도입되었고, 이후 미국 식품의약국과 미국 약전(USP)의 표준 제조 원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세이버트는 발열물질을 규명했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제거 가능한 공정을 제시한 연구자였습니다.
4. 토끼 발열시험의 표준화
발열물질을 검출하기 위한 토끼 발열시험은 1910년대부터 사용되었지만, 1920~1940년대에 이르러 표준 시험법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시험 절차는 다음과 같이 확립되었습니다.
시험 전 토끼의 기초 체온을 측정합니다.
시험 용액을 정맥 주사합니다.
주입 후 약 3시간 동안 일정 간격으로 체온 변화를 기록합니다.
체온 상승이 기준치를 넘으면 발열물질 양성으로 판정합니다.
세이버트의 연구는 이 시험법이 신뢰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뒷받침했고, 토끼 발열시험은 수십 년간 전 세계 주사제 안전성 평가의 기본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5. 발열물질의 화학적 정체 ― LPS
1952년, 독일의 생화학자 오토 웨스트팔과 오스카 뤼더리츠는 그람음성균 세포벽에서 발열물질을 분리·정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들은 발열물질의 본체가 지질다당류(LPS, lipopolysaccharide)이며, 내독소와 발열물질이 동일한 분자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로써 수십 년간 간접적으로만 관찰되던 발열물질의 화학적 실체가 처음으로 규명되었습니다.
6. 이후의 검출법 ― LAL 테스트로 이어지다
1960년대에는 말굽게의 아메바세포가 극미량의 내독소에도 응고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를 기반으로 LAL 테스트(Limulus Amebocyte Lysate test)가 개발되었습니다.
토끼 발열시험은 점차 LAL 테스트로 대체되었지만, 핵심 개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균이 죽은 뒤에도 남는 특정 분자가 숙주의 생리 반응을 유발하며, 이는 반드시 검출되어야 한다는 인식입니다.
정리
파이퍼의 관찰에서 시작된 발열 현상은, 1910년대의 반복 실험을 거쳐, 플로렌스 세이버트의 정제 연구와 제조 공정 개선을 통해 현실적인 검출·관리 대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LPS의 화학적 규명과 LAL 테스트 개발로 이어지며, 발열물질은 오늘날까지 주사제 안전성의 핵심 관리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문헌
Pfeiffer, R. (1892). Untersuchungen über das Choleragift. Zeitschrift für Hygiene und Infektionskrankheiten, 11(1), 393-412. 문헌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