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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파스퇴르의 탄저병·광견병 백신

발행: 2025-12-23 · 최종 업데이트: 2025-12-23

19세기 전염병 시대 속에서 루이 파스퇴르가 개발한 탄저병과 광견병 백신의 과학적 의미와 사회적 영향

루이 파스퇴르의 탄저병·광견병 백신 개발과 생활면역의 출발점

 루이스 파스퇴르
그림 1. 루이스 파스퇴르, @Paul Nadar

19세기 후반의 유럽 사회는 전염병의 공포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콜레라, 홍역, 발진티푸스, 매독, 탄저병, 광견병과 같은 감염병이 반복적으로 유행하였고,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위생 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널리 알려진 예방 수단은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한 천연두 백신 정도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의 감염병은 사실상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루이 파스퇴르는 미생물의 병원성을 인위적으로 약화시키는 약독화(attenuation)개념을 제시하며 예방의학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닭 콜레라 백신 개발을 시작으로, 1881년 탄저병 백신, 1885년 광견병 백신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근대 백신학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탄저병 백신 개발과 공개 실험

탄저병은 탄저균(Bacillus anthracis)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주로 소·양·말과 같은 가축에서 치명적인 피해를 일으켰습니다. ‘탄저’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석탄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하였으며, 피부 병변의 검은 괴사 소견에서 비롯된 명칭입니다.

1876년, 로베르 코흐는 탄저균이 특정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하였고, 이는 감염병 연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농업계는 매년 수만 마리의 가축을 탄저병으로 잃고 있었기 때문에, 파스퇴르의 백신 연구는 국가적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수의학자 앙리 투쌩은 탄저균을 고온 처리한 사균 백신을 실험적으로 제시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파스퇴르는 탄저균을 산소에 장기간 노출시키고 일정 온도에서 배양하면 병원성이 약화된다고 판단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약독화 전략을 제시하였습니다.

푸이이-르-포르 공개 실험

1881년 5월, 파스퇴르는 프랑스 멜룬 인근 푸이이-르-포르(Pouilly-le-Fort) 농장에서 대규모 공개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실험에는 양과 소 수십 마리가 동원되었으며, 일부는 백신을 접종하고 일부는 접종하지 않은 대조군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그 결과, 약독화 백신을 접종한 동물들은 고병원성 탄저균에 노출된 이후에도 생존하였으나, 미접종군은 거의 모두 폐사하였습니다. 이 실험은 정부 관계자, 언론, 농장주, 수의사 등 약 200명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백신의 효과를 눈앞에서 확인한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다만 이후 연구를 통해, 파스퇴르가 주장한 생균 백신이 아닌 투쌩의 화학적 사균 백신이 실제 실험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20세기 말 투쌩의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으며, 이 논쟁은 과학사에서 중요한 윤리적·학문적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광견병 백신 개발과 인체 적용

광견병은 중추신경계를 침범하는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증상이 발현되면 사망률이 거의 100%에 이릅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들개나 야생동물에 물리는 사고가 빈번했으며, 치료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파스퇴르는 1880년경부터 광견병 연구에 착수하였고, 동료 과학자인 에밀 루와 함께 감염된 동물의 뇌조직을 이용해 병원체가 전파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는 토끼를 반복 감염시키는 실험을 통해, 감염된 척수 조직을 건조시키면 바이러스의 독성이 점차 약화된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방법을 바탕으로 파스퇴르는 건조된 뇌척수 조직을 단계적으로 접종하는 방식의 광견병 백신을 고안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사백신에 가까운 접근이었습니다.

요제프 마이스터 사례

1885년 7월, 9세 소년 요제프 마이스터는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여러 차례 물린 후 파스퇴르에게 이송되었습니다. 파스퇴르는 의사 면허가 없었기 때문에 직접 접종하지는 않았으며, 소아과 의사 자크 그랑셰의 책임 하에 백신 투여가 진행되었습니다.

소년은 점차 약독화된 백신을 여러 차례 접종받았고, 끝내 광견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인체 광견병 백신 성공 사례로 평가됩니다. 이후 이 소식은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세계 각지에서 환자들이 파리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1888년, 파리에는 파스퇴르 연구소가 설립되었고, 백신 연구와 예방접종은 제도권 의학의 핵심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9세기 사회와 백신에 대한 인식 변화

파스퇴르가 활동하던 시기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과학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던 시대였습니다. 천연두 백신은 이미 사용되고 있었지만, 다른 질병에 대해서는 예방 개념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1881년 탄저병 공개 실험과 1885년 광견병 백신 성공은 단순한 의학적 성과를 넘어, 사회 전반에 “질병은 예방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파스퇴르는 ‘예방접종(vaccination)’이라는 용어를 공식 학술 무대에서 사용하며 개념을 정착시켰습니다.

연구 윤리와 현대적 평가

파스퇴르의 연구는 동시에 윤리적 논쟁을 동반하였습니다. 대규모 동물 실험, 인체 적용의 위험성, 백신 제조법의 비공개 문제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의사 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인체 접종을 승인한 책임자라는 점에서 논란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과학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의 연구는 예방의학의 가능성을 현실로 증명한 사례였습니다. 현대 백신은 재조합 단백질, 불활화 바이러스, mRNA 기술 등으로 발전하였지만, 항원을 노출시켜 면역 기억을 형성한다는 기본 원리는 여전히 파스퇴르의 접근 위에 놓여 있습니다.

정리하며

루이 파스퇴르의 탄저병과 광견병 백신 개발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 인류가 전염병을 과학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건이었습니다. 수많은 논쟁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는 오늘날 생활면역과 예방접종 체계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파스퇴르의 도전은 지금도 백신 과학의 정신적 기반으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문헌(References)

  1. Pasteur L. Comptes rendus de l’Académie des sciences.

  2. Koch R. Die Aetiologie der Milzbrand-Krankheit.

  3. World Health Organization. Rabies vaccines: WHO position p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