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세포를 깨우는 T세포의 신호: BSF-1에서 IL-4로 이어진 결정적 연결고리
발행: 2026-01-02 · 최종 업데이트: 2026-01-02
1985년 Nature에 발표된 Ohara와 Paul의 연구는, T세포가 분비하는 B세포 자극 인자(BSF-1)에 대한 단클론 항체를 처음으로 제작하고 그 분자적 정체를 규명함으로써, 훗날 IL-4로 명명될 사이토카인의 기능과 개념을 확립한 전환점이 되었다.
T세포가 B세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한다는 생각
1980년대 초반의 면역학은, 말 그대로 T세포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1960~70년대를 거치며 연구자들은 T세포가 단순히 “세포성 면역을 담당하는 세포”가 아니라, 다른 면역 세포들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조율하고 지휘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히 인식하게 됩니다.
특히 중요한 관찰은 이것이었습니다.
T세포는 B세포에게 단순히 “항체를 만들어라”고 신호를 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떤 종류의 항체를 만들 것인지, 즉 항체의 class와 subclass까지 조절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자, 면역학자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T세포는 어떤 분자를 사용해 B세포의 운명을 바꾸는가?
B세포 도움 인자라는 혼란스러운 이름들
문제는, 이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가 전 세계에서 거의 동시에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각 연구 그룹은 자신들이 개발한 B세포 기능 assay를 기준으로, T세포 유래의 용해성 인자(soluble factor)를 발견할 때마다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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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룹은 B세포 증식을 기준으로 B cell growth factor(BCGF)라고 불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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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룹은 항체 class 전환을 기준으로 class switch factor라고 불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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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그룹은 IgE 생성에 주목해 알레르기 관련 인자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인자들이 서로 다른 분자인지, 아니면 하나의 분자가 여러 기능을 하는 것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William Paul 연구실의 문제의식
이 논문의 중심에는 William E. Paul이 있습니다. 그는 이미 NIH에서 오랜 기간 동안 T세포–B세포 상호작용과 면역 조절 메커니즘을 연구해 온 인물이었고, 사이토카인을 기능이 아니라 분자 자체로 규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연구를 실제로 밀어붙인 사람은 일본에서 온 포스트닥 연구자 Junichi Ohara였습니다. 그는 “B세포를 자극하는 인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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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생물학적 활성의 묶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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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분자(single molecular entity)로 규정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략은 명확했다: IL-2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적용하라
이 연구의 접근 방식은, 불과 2년 전에 발표된 IL-2 단클론 항체 논문과 거의 동일합니다. 핵심 전략은 단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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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세포에서 분비되는 인자를 충분히 많이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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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자를 부분 정제하여 동물 면역에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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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클론 항체를 만들어 생물학적 활성을 중화하는 항체를 선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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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항체로 분자의 정체를 추적한다
다만 이번 대상은 IL-2가 아니라, 당시 B cell stimulatory factor 1(BSF-1)이라 불리던 인자였습니다.
EL-4 세포와 ‘NIH 스케일’의 물량
BSF-1 확보의 열쇠는 EL-4 마우스 흉선종(thymoma) 세포주였습니다. 이 세포는 PMA 자극을 받으면 BSF-1 활성을 강하게 분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연구가 가능했던 결정적 배경은, NIH라는 환경이 제공한 물량이었습니다. Ohara와 Paul은 외부 계약 연구소를 통해 EL-4 세포의 conditioned medium을 리터 단위로 생산하게 했고, 연구실에서는 그 상층액을 받아 정제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소규모 대학 연구실에서는 현실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조건이었습니다.
BSF-1을 측정하는 독특한 bioassay
이 논문의 생물학적 핵심은 “부분 최적(suboptimal) anti-μ 자극”이라는 테크닉에 있습니다.
- anti-μ 항체를 B세포에 낮은 농도로 처리하면 B세포는 거의 증식하지 않았으나, 이 상태에서 BSF-1을 추가하면 B세포의 ³H-thymidine 흡수가 급격히 증가
즉, BSF-1이 있을 때만 증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조건을 만들어 BSF-1 활성을 매우 민감하게 검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 assay를 기준으로, 연구진은 단클론 항체가 BSF-1의 활성을 정말로 중화하는지를 판단했습니다.
단클론 항체가 보여준 결정적 증거
확보된 두 개의 anti-BSF-1 단클론 항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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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대조 항체(예: IL-2R 항체)와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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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도 의존적으로 B세포 증식을 억제했습니다
이는 이 항체들이 “어떤 B세포 활성 인자와 우연히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BSF-1이라는 특정 분자의 기능을 직접 차단한다는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분자량과 실체의 윤곽
SDS-PAGE와 방사성 표지 항체를 이용한 블롯 분석 결과, anti-BSF-1 항체는 주로 약 20 kDa 부근의 단백질에 결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록 이 논문에서는 “완전히 순수한 단일 단백질”임을 최종적으로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다음 사실은 분명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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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F-1은 IL-1, IL-2, IL-3, IFN-γ와는 다른 분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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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세포 증식, MHC class II 발현 증가, IgG1·IgE class switching이라는 서로 연관된 기능들을 하나의 분자가 매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년 뒤, 이름이 붙다: IL-4
이 논문이 발표된 지 불과 1년 뒤인 1986년, 두 개의 독립된 연구 그룹이 거의 동시에 BSF-1의 cDNA를 클로닝합니다.
그 결과 이 분자는 interleukin-4(IL-4)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이후의 연구는 빠르게 전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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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4는 B세포의 IgG1·IgE class switching을 유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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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세포 증식에도 관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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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2 면역 반응의 중심 사이토카인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오늘날 IL-4 수용체를 표적으로 하는 항체 치료제들이 천식, 아토피 피부염 같은 알레르기 질환에서 뛰어난 임상 효과를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시기의 기초 연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며
1985년 Ohara와 Paul의 이 논문은, “T세포가 B세포를 돕는다”는 막연한 개념을 단일 분자와 단클론 항체의 언어로 번역해 낸 연구였습니다.
BSF-1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인자는 곧 IL-4로 정체를 드러내며, 면역 반응의 방향성과 질을 결정하는 핵심 신호로 자리 잡습니다.
이 논문은 그 출발점이었고, 1980년대 면역학이 어떻게 개념에서 분자로 이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전형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