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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세균에서 마이크로바이옴으로: 인간과 함께 진화한 미생물 생태계

발행: 2026-01-31 · 최종 업데이트: 2026-01-31

장내세균으로 불리던 개념이 마이크로바이옴으로 확장된 역사적 배경과, 박테로이데테스·피르미쿠테스, 식이섬유 발효, 단쇄지방산을 중심으로 장 마이크로바이옴이 인간의 대사와 면역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봅니다.

장내세균에서 마이크로바이옴으로: 개념이 바뀐 이유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장에 존재하는 미생물은 대개 **‘장내세균’**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불렸습니다. 이들은 소화를 돕거나, 때로는 설사를 일으키는 존재 정도로 인식되었고, 항생제가 등장한 이후에는 “없애야 할 대상”에 더 가까운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분자생물학과 유전체 분석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배양이 되지 않아 정체를 알 수 없던 미생물들까지 DNA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장 안에는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때부터 단순한 ‘세균’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총체라는 의미에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는 개념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박테리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이러스, 곰팡이, 고세균, 원생동물까지 포함해 우리 몸과 상호작용하는 모든 미생물 군집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더 이상 주변부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대사와 면역, 심지어 질병의 발생 과정까지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장 마이크로바이옴이 특별한 이유

우리 몸 곳곳에 마이크로바이옴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곳은 단연 입니다. 장은 인체에서 가장 많은 미생물이 모여 있는 공간이며, 외부에서 들어온 음식물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특히 대장은 산소가 거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미생물들은 사람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사람은 포도당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얻지만, 장내 미생물은 발효를 통해 에너지를 획득합니다. 이 차이 때문에 장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이 직접 소화할 수 없는 물질을 활용하는, 일종의 ‘보조 소화 시스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장 마이크로바이옴의 두 축: 박테로이데테스와 피르미쿠테스

장내 미생물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지만, 전체 구조를 이해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두 그룹이 있습니다. 바로 **박테로이데테스(Bacteroidetes)**와 **피르미쿠테스(Firmicutes)**입니다.

이 두 균군은 장 마이크로바이옴의 양적·기능적 중심축을 이루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대사에 기여합니다.

박테로이데테스: 복잡한 탄수화물을 처리하는 전문가

박테로이데테스는 그람 음성균에 속하며, 주로 대장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이 균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이 분해할 수 없는 복잡한 다당류와 식이섬유를 분해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소화 효소로는 처리할 수 없는 섬유질이 대장으로 내려오면, 박테로이데테스는 이를 발효시켜 **단쇄지방산(short-chain fatty acids)**을 만들어냅니다. 이 단쇄지방산은 장세포의 에너지원이 될 뿐만 아니라, 장 점막을 보호하고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때문에 박테로이데테스는 단순히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장 기능의 질을 좌우하는 균군으로 평가됩니다.

피르미쿠테스: 에너지 회수 효율과 깊이 연결된 균군

피르미쿠테스는 그람 양성균에 속하며, 형태와 기능이 매우 다양한 균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인의 장에서는 피르미쿠테스가 가장 풍부하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균군 역시 식이섬유 발효에 관여하지만, 특히 부티르산을 생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균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부티르산은 장세포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작용하며, 장 점막의 방어력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균형이라는 개념: 비율이 의미를 가질 때

한때 박테로이데테스와 피르미쿠테스의 비율이 비만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주장이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습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비만한 사람에게서 피르미쿠테스의 비율이 높고, 박테로이데테스의 비율이 낮다는 관찰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비율 자체가 원인인지, 결과인지, 혹은 단순한 동반 현상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현재의 이해는 특정 균 하나를 늘리거나 줄이는 접근보다는, 전체적인 미생물 생태계의 안정성과 기능이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다양한 균들

장 마이크로바이옴은 두 균군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박테로이데스, 비피도박테리움, 클로스트리디움, 대장균, 유박테리움, 락토바실러스, 루미노코커스, 스트렙토코커스 등 다양한 균들이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하나의 균형을 이룹니다.

이들 중 일부는 프로바이오틱스로 활용되기도 하고, 일부는 조건에 따라 병원성을 띠기도 합니다. 중요한 점은 균 자체의 선악이 아니라, 환경과 균형입니다.

식이섬유는 정말 칼로리가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식이섬유는 에너지를 전혀 공급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직접 소화하지 못할 뿐, 장내 미생물은 식이섬유를 발효해 단쇄지방산을 만들어냅니다.

이 단쇄지방산은 실제로 장세포에 흡수되어 에너지원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발효 가능한 수용성 식이섬유는 완전히 무칼로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식품 표시 기준에서도 식이섬유를 1g당 2kcal로 계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쇄지방산: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핵심 키워드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단쇄지방산에는 초산, 프로피온산, 부티르산이 대표적입니다. 초산과 프로피온산은 간으로 이동해 포도당이나 지방 합성에 사용될 수 있고, 부티르산은 장세포의 직접적인 에너지원이 됩니다.

특히 부티르산은 장 점막의 방어 기능을 강화하고, 전신 염증 반응과도 연관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중심 주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장, 사람마다 다른 결과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혈당 반응이나 대사 결과가 다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의 차이입니다. 장내 미생물의 구성에 따라 생성되는 단쇄지방산의 종류와 양이 달라지고, 그 결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집니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바이옴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개인 맞춤 영양과 건강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정리하며

마이크로바이옴은 더 이상 ‘장내세균’이라는 단순한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소화, 에너지 대사, 면역 조절에 깊이 관여하는 공동 생태계이며, 우리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이해하는 것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관점을 갖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