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배양은 어떻게 면역치료의 실험실이 되었나
발행: 2026-05-10 · 최종 업데이트: 2026-05-11
Roux와 Harrison의 초기 조직배양에서 HeLa, 배지 표준화, 하이브리도마, TIL과 항원 특이 T세포 치료까지 이어지는 세포배양의 역사를 면역치료의 관점에서 정리합니다.
몸 밖에서 세포를 키운다는 이상한 생각
오늘날 우리는 세포를 배양한다는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씁니다. 배양접시에 암세포를 키우고, 림프구를 자극하고, 항체를 만드는 세포주를 유지하고, 환자에게 다시 넣을 T세포를 확장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출발점에는 아주 단순하고 낯선 질문이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조직은 반드시 몸 안에 있어야만 살아 있을까?
19세기 말의 발생학자들은 이 질문을 배아로부터 시작했습니다. Wilhelm Roux는 닭 배아의 일부 조직을 몸 밖에서 유지하려 했고, 이런 시도는 현대적 세포배양이라기보다 “조직이 몸 밖에서도 잠시 살아 있을 수 있는가”를 묻는 초기 실험에 가까웠습니다. 무균 배양기술도, 표준 배지도, 세포주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실험은 중요한 직감을 남겼습니다. 생명 현상의 일부는 몸 전체를 떠나 작은 조직 조각 안에서도 관찰될 수 있다는 직감이었습니다.
이 직감이 본격적인 기술로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Harrison: 조직배양이 실험이 되다
현대 조직배양의 출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은 Ross Granville Harrison입니다. Harrison은 개구리 배아의 신경조직을 체외에서 유지하면서 신경섬유가 자라나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단순히 조직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몸 밖에서도 세포가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뻗어나가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Harrison이 사용한 방법은 흔히 hanging drop 배양법으로 불립니다. 이름만 들으면 액체 방울을 공기 중에 매달아 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조금 더 영리한 장치였습니다. 작은 조직 조각을 림프액이나 혈장 같은 액체 한 방울 속에 넣고, 그 방울을 유리 덮개판에 올립니다. 그런 다음 덮개판을 뒤집어 오목한 유리 슬라이드 위에 덮으면, 방울은 아래쪽으로 매달린 채 작은 빈 공간 안에 놓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거의 닫혀 있었다는 점입니다. 가장자리를 바셀린이나 파라핀 같은 것으로 막으면, 방울은 바깥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지 않습니다. 내부는 작은 습실처럼 되고, 수분이 조금 증발하더라도 곧 포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방울이 쉽게 말라 버리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배양접시와 배양기와 비교하면 매우 단순하지만, 당시에는 살아 있는 조직을 마르지 않게 유지하면서 현미경으로 계속 들여다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었습니다.
이 방법의 힘은 작고 닫힌 세계를 만든 데 있었습니다. 신경조직 조각은 방울 속에서 몸 전체와 분리되었지만 완전히 죽어 있는 표본도 아니었습니다. 조직은 며칠 동안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했고, 그 안에서 신경섬유가 뻗어나오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몸 안에서 일어나던 일을 몸 밖의 작은 방울 속에서 보는 것, 그것이 Harrison 실험의 매력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세포배양의 의미를 바꾸었습니다. 배양은 더 이상 생명을 억지로 붙잡아 두는 기이한 기술만이 아니었습니다. 배양접시는 발생, 성장, 이동, 분화 같은 생명 현상을 분해해서 볼 수 있는 작은 무대가 되었습니다.
면역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 변화는 훗날 결정적이었습니다. 면역반응은 몸 안에서 너무 많은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항원제시세포, 림프구, 항체, 보체, 사이토카인, 조직 손상과 회복이 한꺼번에 얽힙니다. 세포를 몸 밖으로 꺼내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이 복잡한 장면에서 특정 세포와 특정 신호를 따로 떼어 볼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Carrel: 가능성과 과장이 함께 커지다
20세기 초 조직배양을 대중적으로 강하게 각인시킨 인물은 Alexis Carrel이었습니다. Carrel은 조직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널리 알렸고, 생명체의 일부가 몸 밖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상상력을 크게 키웠습니다.
하지만 Carrel의 이야기는 동시에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당시의 장기 배양 주장은 이후 실험적 재현성과 해석의 문제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Carrel은 “세포배양을 완성한 사람”이라기보다, 세포배양이라는 아이디어가 과학과 대중의 상상 속에서 얼마나 크게 부풀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로 읽는 편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시대가 남긴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살아 있는 세포를 몸 밖에서 다룰 수 있다면, 생명현상은 더 이상 관찰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조작할 수 있는 대상이 됩니다.
HeLa: 세포가 실험실의 공용 언어가 되다
세포배양이 현대 생명과학의 기반시설이 된 결정적 장면 중 하나는 HeLa 세포의 등장입니다. Henrietta Lacks의 자궁경부암에서 유래한 HeLa 세포는 실험실에서 지속적으로 증식할 수 있었고, 여러 연구실로 퍼져 나가며 표준 실험 재료가 되었습니다.
지금 보면 세포주 하나가 오래 자라는 일이 당연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달랐습니다. 실험할 때마다 새 조직을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성질을 가진 세포를 계속 키우고 나누어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전환이었습니다.
HeLa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바이러스를 키우고, 약물 반응을 보고, 세포분열을 관찰하고, 암세포의 성질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세포가 한 번 얻고 끝나는 귀한 재료가 아니라, 여러 연구자가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공통의 실험 시스템이 된 것입니다.
이런 공용 세포주의 등장은 생명과학의 속도를 바꾸었습니다. 한 연구실의 우연한 관찰이 다른 연구실에서 다시 시험될 수 있었고, 같은 세포를 놓고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세포배양은 이때부터 개별 실험기술을 넘어, 연구자들이 같은 대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Eagle: 세포를 키우는 조건이 표준화되다
세포배양이 널리 쓰이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했습니다. 세포가 자라기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Harry Eagle입니다. Eagle은 배양세포가 필요로 하는 아미노산, 비타민, 염, 당 같은 조건을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세포배양 배지의 표준화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변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배지가 표준화되면 세포배양은 장인의 감각에만 의존하는 기술에서, 여러 실험실이 공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바뀝니다. 어떤 세포를 어떤 배지에서 키웠는지 말할 수 있어야 실험 결과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면역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림프구를 키우고, 자극하고, 증식시키고, 죽이는 능력을 측정하려면 세포가 먼저 안정적으로 살아 있어야 했습니다. 배지와 배양조건의 표준화는 면역세포를 실험 대상으로 만드는 조용한 기반이었습니다.
면역학으로 들어온 세포배양
세포배양이 면역학에 들어오면서 가장 큰 변화는 “반응을 몸 밖에서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림프구를 항원이나 mitogen으로 자극하고, 증식 여부를 보고, 항체 생산을 측정하고, 세포독성 T세포가 표적세포를 죽이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면역학은 이런 체외 실험 덕분에 세포 단위의 언어를 얻었습니다. 항체를 만드는 세포, 도움을 주는 세포, 죽이는 세포, 억제하는 세포가 분리되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면역반응은 더 이상 혈청 속 항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배양접시 위에서 서로 만나고 반응하는 세포들의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이 흐름에서 하이브리도마 기술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Georges Köhler와 César Milstein은 항체를 만드는 B세포와 계속 자라는 myeloma 세포를 융합해, 특정 항체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세포주를 만들었습니다. 단클론항체는 면역학의 도구가 되었고, 훗날 치료제가 되었습니다.
배양접시에서 환자에게: Rosenberg의 전환
면역치료의 역사에서 세포배양이 치료로 바뀌는 장면은 Steven Rosenberg의 TIL 연구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종양 안으로 들어간 림프구를 꺼내고, IL-2로 키우고, 다시 환자에게 넣는다는 발상은 세포배양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여기서 배양은 단순한 관찰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환자 몸 안에 아주 적게 있던 T세포를 치료에 쓸 수 있을 만큼 늘리는 과정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배양접시는 면역세포를 분석하는 공간에서, 면역세포를 제조하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Rosenberg의 고용량 IL-2, LAK, TIL 연구는 매우 거칠고 독성이 컸지만, 한 가지 사실을 강하게 남겼습니다. 사람의 면역세포를 꺼내 조작하고 다시 넣으면, 실제 전이성 암이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Greenberg: 어떤 T세포를 키울 것인가
그 다음 질문은 더 정밀했습니다. T세포를 많이 키우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정확히 어떤 항원을 알아보는 T세포인지 알아야 하는가?
이 지점에서 Philip Greenberg의 항원 특이 T세포 연구가 중요해집니다. Greenberg와 동료들은 특정 종양항원을 인식하는 CD8 T세포 클론을 배양하고, 이 세포들이 환자 몸 안에서 지속되고 종양으로 이동하며 항원 양성 종양세포에 선택적 압박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세포배양의 의미는 다시 한 번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세포를 살려 두는 기술”이었고, 그 다음에는 “세포를 실험하는 기술”이었으며, 이제는 “목표를 아는 세포를 골라 치료제로 만드는 기술”이 되었습니다.
이 흐름은 이후 TCR 유전자치료와 CAR-T로 이어집니다. 세포를 몸 밖에서 키울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세포를 선별하고, 조작하고, 확장하고, 다시 환자에게 넣을 수 있었습니다. 현대 세포치료는 면역학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포배양 기술의 긴 역사 위에 서 있습니다.
정리: 면역치료의 보이지 않는 기반
면역치료의 주인공은 보통 T세포, 항체, 사이토카인, 면역관문억제제로 불립니다. 하지만 그 밑에는 더 조용한 기술이 있습니다. 세포를 몸 밖에서 살리고, 조건을 조절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늘리고,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Roux와 Harrison의 초기 조직배양은 오늘날의 CAR-T나 TIL 치료와 멀리 떨어져 보입니다. 그러나 큰 흐름으로 보면 같은 질문 위에 있습니다. 몸 안의 생명현상을 몸 밖으로 꺼내어 이해하고, 조작하고, 다시 치료로 되돌릴 수 있는가.
세포배양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오래된 실험적 대답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면역치료는 그 대답이 환자에게 되돌아온 가장 강렬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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