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통계 논쟁과 대체의학 확산의 역사적 배경
발행: 2026-01-31 · 최종 업데이트: 2026-01-31
1986년 암 통계 논문을 계기로 촉발된 예방 중심 논의와, 그 과정에서 대체의학이 확산된 사회·의료적 맥락을 정리합니다.
이 글의 전제: 관찰과 맥락에 대한 기록입니다
먼저 분명히 말씀드릴 점이 있습니다. 저희는 통계학이나 예방의학의 전문가 집단이 아닙니다. 이 글은 학술적 결론을 제시하기 위한 논문이 아니라, 특정 시기를 전후로 나타난 의료 인식과 사회적 변화에 대한 일반인의 관점에서의 관찰 기록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다루는 내용은 “증명”이라기보다는 “맥락의 이해”를 목적으로 합니다.
사라질 것이라 여겨졌던 대체의학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한의학을 포함한 대체의학이 머지않아 사라질 학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氣), 혈(血)과 같은 개념은 해부학과 생리학이 충분히 발전하기 이전의 설명 체계로 간주되었고, 수술이나 명확한 병리 기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의학은 결국 치료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대체의학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는 단순히 대중의 비과학적 믿음이나 정보 부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었습니다.
한 편의 논문이 만든 균열
이 변화의 출발점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거의 기억되지 않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1986년, John Bailar와 Elaine Smith가 발표한 논문
「Progress Against Cancer?」입니다. 이 논문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게재되었습니다.
이 논문은 1950년 이후 암 연구와 치료에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령 보정 암 사망률(age-adjusted mortality)**이라는 지표로 보았을 때 전반적인 개선이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저자들은 암 치료 분야에서의 기술적 진보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진보가 인구 전체의 사망률 감소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습니다.
논문의 배경과 문제의식
당시 미국에서는 항암제 개발, 방사선 치료, 수술 기법 등에서 눈에 띄는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부 암종에서는 생존율이 개선되었다는 보고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Bailar와 Smith는 이러한 성과가 통계 지표 선택에 따라 과대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생존율(statistical survival rate)은 조기 진단의 확산만으로도 상승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반드시 사망률 감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었습니다. 이들은 암 연구의 초점이 치료 성과 홍보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예방 중심의 접근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학계와 의료계에 미친 파장
이 논문은 암 연구 전반에 대해 세 가지 중요한 논쟁을 촉발했습니다.
첫째, 암 연구의 방향성에 대한 재검토입니다. 치료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환경 요인 관리, 생활습관 개선, 조기 예방 전략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본격화되었습니다.
둘째, 통계와 데이터 해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강화되었습니다. “개선되고 있다”는 표현이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의료 통계 전반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셋째, 암 연구와 정책에 대한 공공 논쟁이 촉발되었습니다. 이는 연구 자금 배분, 국가 암 정책, 연구 성과 평가 방식 전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 정치권의 반응과 OTA 보고서
이 논쟁은 학계를 넘어 정치권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미국 의회는 산하 기관을 통해 국립암연구소의 암 생존 통계 보고 방식을 검토하도록 했고, 그 결과가 이른바 OTA 보고서로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는 미국 회계감사원(GAO)과 국립암연구소가 직접적으로 관여했습니다.
보고서는 Bailar와 Smith의 문제 제기를 인용하며, 1950년 이후 여러 암종에서 보고된 “진전”이 실제로는 매우 제한적이거나, 지표 해석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다만 이 보고서 어디에서도 대체의학이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핵심은 기존 암 연구 성과를 보다 엄격하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였습니다.
의도치 않은 확산: 대체의학의 성장
그러나 이 논문과 보고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소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비전통적 치료 지지자들은 이 자료를 근거로 주류 의학 전반의 한계를 주장했고, 이는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대체의학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대체의학의 효과가 입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류 의학의 성과에 대한 신뢰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한국에서의 왜곡된 수용
OTA 보고서와 원 논문은 국내에 직접적으로 소개되거나 충분히 검토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이 자료를 부분적으로 인용한 해외 서적이나 칼럼이 번역되면서, 맥락이 생략된 채 확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OTA 보고서 어디에도 “대체의학이 효과적이다”라는 주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이후 국내에서는 한의학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관심이 다시 감소하게 되는데, 그 원인으로는 비아그라 출시와 홍삼 유통 구조 변화 등이 자주 언급됩니다. 이는 한의학의 과학성 문제라기보다 시장과 제도 환경 변화에 가까운 요인이었습니다.
정리하며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핵심은 단순합니다.
대체의학의 부상은 대중의 비과학성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며, 주류 의학 내부의 성찰과 통계 해석 논쟁이 만들어낸 의도치 않은 결과라는 점입니다. 이는 오늘날 건강기능식품과 기능성 논란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됩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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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ilar III, J. C., & Smith, E. M. (1986). Progress against cancer?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14(19), 1226–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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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kherjee, S. (2011).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서울: 까치글방, pp. 256–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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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Congress, Office of Technology Assessment. Assessment of cancer statistics and repor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