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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천 년 먹어온 식품’이 유럽에서는 금지되는가: 벨기에 사건, THMPD, 그리고 Novel Food

발행: 2026-01-31 · 최종 업데이트: 2026-01-31

1990년대 벨기에 한약 신장병 사건을 계기로 형성된 유럽의 식품·의약품 규제 역사와 THMPD, Novel Food 규정이 한국 식품 수출에 갖는 의미를 분석합니다.

“수천 년 먹어온 식품인데 왜 문제가 되는가”라는 오해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우리가 수천 년 동안 먹어온 식품인데, 왜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 수출하려고 하면 그렇게 까다로운 규제를 받느냐”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 인식은 식품 규제의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오해에 가깝습니다.

유럽의 식품·의약품 규제는 특정 국가나 전통을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피해 사건을 계기로 축적된 경험의 산물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 유럽에서 발생한 한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벨기에 사건은 이후 광방기(廣防己, Aristolochia fangchi)와 아리스톨로킥산(aristolochic acid)이 원인으로 규명되었고, 이 비극적 경험이 THMPD와 EU Novel Food 규정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벨기에에서 발생한 ‘한약 신장병’ 사건과 광방기

1990년대 초, 벨기에에서는 중국산 다이어트 차를 복용한 환자들 가운데 백여 명이 심각한 신장 손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일부 환자는 신장이식을 받아야 했고, 일부에서는 신장암까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유럽에서의 한약 원인 신장병”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초기에는 원인이 중국산 약초 전반에 있다고 추정되어 ‘중국산 약초 신장질환(Chinese Herb Nephropathy)’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후 정밀 분석을 통해 **아리스톨로킥산(aristolochic acid)**이라는 특정 독성 물질이 원인으로 밝혀졌고, 명칭도 ‘아리스톨로킥 신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사건이 단순한 “중국 약초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럽 규제 당국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전통 사용 이력만으로는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후에 문제가 된 한약제가 광방기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잠깐 이 사건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왜 ‘광방기’가 들어갔는가: 방기와 광방기의 혼동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점은, 처음부터 광방기(廣防己)를 쓰려 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문제의 다이어트 처방에서 원래 의도된 약재는 중국 전통 처방에서 사용되어 온 방기(防己) 계열 약재였습니다. 방기는 이뇨와 부종 완화를 목적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고, 임상적으로도 비교적 안전하다고 인식되어 있던 약재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내 약재 유통 과정에서는 식물학적 종(species)에 대한 엄격한 구분이 일관되게 유지되지 않았고, 지역·상인·문헌에 따라**‘방기’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식물들이 혼용**되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이 바로 **광방기(廣防己, Aristolochia fangchi)**였습니다.

광방기는 외형과 용도가 방기와 유사했지만, 결정적으로 **아리스톨로킥산(aristolochic acid)**을 함유할 수 있는 Aristolochia 속 식물이었습니다.
이 차이는 전통 명칭만으로는 구분되지 않았고, 당시 유통 구조에서는 의도적 대체라기보다, 구분 실패에 가까운 혼입이었습니다.

왜 이 문제가 벨기에에서 터졌는가

이와 같은 약재 혼용은 사실 중국이나 동아시아 지역에서만 발생한 특이 현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비극은 벨기에에서 집단적으로 드러났을까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겹쳤습니다.

첫째, 벨기에의 해당 다이어트 클리닉은 동일한 처방을 장기간, 다수의 환자에게 반복적으로 투여하고 있었습니다. 즉, 노출 규모와 누적 용량이 매우 컸습니다.

둘째, 광방기에 포함된 아리스톨로킥산은 급성 독성보다는 만성적·누적적 신장 독성을 보입니다. 짧은 기간 소량 노출로는 문제를 인지하기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복용할 경우 비가역적 신장 손상으로 이어집니다.

셋째, 벨기에 의료진은 비교적 이른 시점에 비정상적으로 유사한 임상 패턴을 감지했고, 이를 개별 환자의 체질 문제가 아니라 공통 원인을 가진 집단적 질환으로 인식했습니다.

이 세 조건이 맞물리면서, 광방기의 독성은 비로소 통계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규모로 표면화되었습니다.

“중국의 문제”가 아니라, ‘검증 부재’의 문제

이 지점에서 중요한 사실은, 이 사건이 중국 전통의학 자체의 악의나 고의적 속임수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통 명칭에 의존한 약재 식별

  • 식물학적 종 구분의 부재

  • 독성 성분에 대한 사전 검증의 결여

  • 대량·장기 투여 상황에 대한 위험 인식 부족

즉, ‘오래 써왔다’는 경험적 사용이 현대적 대량 소비·상업적 유통 구조에서는 더 이상 안전장치가 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벨기에 사건은 이 취약성이 처음으로 대규모 인체 피해라는 형태로 드러난 사례였습니다.

이 맥락이 THMPD와 Novel Food로 이어진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유럽 규제 당국은 이후 이렇게 판단하게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전통 명칭이나 사용 이력만을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THMPD는

  • **‘무엇이라 불리느냐’가 아니라

  • ‘정확히 어떤 물질인가’**를 묻기 시작했고,

Novel Food 규정 역시

  • “다른 문화에서 먹어왔다”는 주장보다 EU 소비자에게 안전한지 여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라는 방향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광방기 사건은 특정 약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 지식이 현대 규제 체계로 이행하지 못했을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준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오해와 뒤늦은 제도 대응

당시 우리나라 한방계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중국의 문제”로 선을 긋거나, “국내 한방은 제도화되어 있으니 안전하다”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화학적 독성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주장에 가까웠습니다. 특정 성분이 독성을 가진다면, 그 물질이 어느 나라 전통에 속하느냐는 안전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도 아리스톨로킥산과 유사한 성분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세신(細辛)**을 함유한 일부 일반의약품의 생산이 제한되는 등, 제도적 대응이 뒤늦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유럽의 규제 논리가 결코 “차별”이 아니라 사후적 경험에 기반한 위험 관리였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세신을 반복적으로 섭취한 사람은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었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한의학계에서 이것을 걸러낼 만한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THMPD: 전통이라는 주장에 처음으로 제동을 건 법

이 사건 이후 유럽은 더 이상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주장만으로는 의약품의 안전성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2004년, **Traditional Herbal Medicinal Products Directive(THMPD)**가 제정되었습니다.

THMPD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 전통적 식물성 의약품이라 하더라도

    • 최소 30년의 사용 이력

    • 그중 15년은 EU 내 사용 이력
      을 입증해야 합니다.

  •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독성 자료를 포함한 안전성 자료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 법에는 7년의 유예기간이 있었고, 2011년부터 본격 시행되었습니다. 이 시점은 특히 중국에서 큰 이슈가 되었는데,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법은 사실상 중국 전통 한약의 유럽 진입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이 문제를 무역 갈등의 문제로 보지 않았고, 소비자 안전 규제로 대응해야 할 사안으로 인식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비용을 지원할 테니 EU 기준에 맞는 자료를 준비하라며 관련 한약 기업들을 독려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금이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THMPD가 요구한 독성 시험, 장기 안전성 자료, 표준화된 제조 공정 기록은 전통 한약 산업 구조에서는 단기간에 구축할 수 있는 성격의 자료가 아니었고, 벨기에 사건 이후 규제 논의가 시작된 시점부터 계산하면 사실상 10년 이상, 업계 체감으로는 14년에 가까운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2011년 유예기간 종료 시점까지 중국 정부 차원에서 EU 기준을 충족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사례는 0건에 머물렀습니다.

Novel Food 규정: 의약품을 넘어 식품으로 확장된 규제 논리

THMPD와 유사한 사고방식은 식품 분야에서도 제도화됩니다. 그것이 바로 Novel Food 규정입니다.

즉, Novel Food 규정이란 유럽연합 내에서 충분한 소비 이력이 없는 식품이나 식품 성분에 대해 사전 안전성 평가와 허가를 의무화한 제도를 의미합니다.

Novel Food 규정은 1997년 처음 도입되었으며, 1997년 5월 15일 이전에 EU 내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소비되지 않은 식품 또는 식품 성분을 모두 “신규 식품(Novel Food)”으로 분류합니다. 전통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오랫동안 먹어왔다는 사실은, 이 규정에서는 자동적인 면책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이 규정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유럽 소비자에게 낯선 식품은, 먼저 안전성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THMPD와 Novel Food의 관계: 다른 법, 같은 사고방식

THMPD와 Novel Food 규정은 적용 대상은 다르지만, 같은 역사적 경험에서 출발한 법 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THMPD: 의약품(특히 전통 허브 의약품)

  • Novel Food: 식품 및 식품 성분

그러나 두 법 모두 다음과 같은 공통 전제를 공유합니다.

  • 전통적 사용 이력은 참고 자료일 뿐, 안전성의 증거가 아니다.

  • 지역 외부의 전통은 자동으로 신뢰되지 않는다.

  • 필요하다면 독성 시험과 과학적 자료로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

특히 어떤 물질이 식품인지 의약품인지 경계가 모호한 경우, 두 규정은 실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작동합니다. 발효 식품, 추출물, 기능성 원료는 이 경계 문제에 자주 걸리게 됩니다.

왜 한국 식품, 특히 발효·추출물은 유럽에서 어려운가

이러한 제도적 배경을 이해하면, 왜 한국의 많은 식품이 유럽 수출에서 어려움을 겪는지도 분명해집니다. 특히 발효 식품이나 한약재·허브 추출물은 Novel Food 규정의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 먼저 미국에 **NDI(New Dietary Ingredient)**로 진출하고

  • 이후 유럽 Novel Food 절차를 준비하는 전략이 일반적입니다.

이것이 쉬운 길은 아닙니다. 독성 시험, 인체 적용 자료, 제조 공정에 대한 상세한 문서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원료 선택이 곧 규제 전략이 되는 이유

이러한 이유로, 제품 개발 과정에서 한약재 추출물이나 특정 허브 추출물은 매우 신중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적 이미지와 달리, 규제 측면에서는 오히려 리스크가 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헛개나무의 경우, 한국에서는 익숙하지만 규제 측면에서는 부담이 큰 원료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먼저 출시된 한국식 숙취해소제에는 헛개나무 대신 DHM(Dihydromyricetin)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문화적 선택이 아니라, 규제 환경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맺음말: “수천 년”이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유

유럽의 식품·의약품 규제는 전통을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통이라는 주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실제 피해의 역사가 있었고, 그에 대한 제도적 응답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오래 먹어왔다”는 말은 국내에서는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국제 규제 환경에서는 과학적 자료를 대체하지 못합니다. 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해외 수출은 계속해서 “이해할 수 없는 장벽”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