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우리나라에서는 6.25전쟁(한국전쟁)이 일어나 한창 전쟁을 할 당시, 미국에서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에서 당시 미국인들은 원자폭탄을 제일 두려워한다고 답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전쟁 중이었고, 징집 가능한 젊은 사람의 대부분이 한국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위는 지금에 와서는 의아하겠지만 소아마비였습니다. 당시 소아마비에 대한 공포는 엄청났습니다. 특히 소아마비는 항상 일정하게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해는 많은 사람들을 어느 해는 매우 적은 사람들을 감염시키는데, 이것이 오히려 공포를 극대화 시켰습니다. 1952년에는 58,000명이 감염되었습니다. 물론 이 숫자는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 사망한 숫자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하지만 중추신경계에 손상을 입혀 마비를 일으킨다는 그 사실 때문에 사람들을 거의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루즈벨트 대통령도 어릴 적에 소아마비에 걸린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1921년, 39세) 소아마비에 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사실 루즈벨트의 질병은 최근에는 소아마비가 아니라 길랑 바레라고 생각되지만, 그 당시는 소아마비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소아마비를 피츠버그 대학의 바이러스학자인 솔크(Jonas Salk)박사가 백신을 개발하여 미국에서 대량으로 접종하게 됩니다. 그가 임상시험을 하던 1954년에 미국의 갤럽 조사에서는 당시 미국인들이 미국의 대통령 이름 보다 1954년 소아마비백신 임상을 진행 중인 사실을 더 많이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소아마비백신이 개발된 이후로 소아마비에 대한 위험성은 사라졌습니다.
소크 박사가 백신을 개발한 과정은 면역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소크 박사 이전에 백신을 만드는 방법은 흔히 약독화 백신이라고 해서 바이러스를 원래 숙주가 아닌 환경에서 오랫동안 배양하면 바이러스가 독성을 좀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미 그 전에 황열병 바이러스 등에서 사용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의 문제는 바이러스를 오랫동안 약독화시켜야 하는데,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한가지가 아니라 3가지 종류가 있어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소크 박사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바이러스를 포르말린 처리해서 불활화시켜도 백신으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굳이 바이러스를 약독화시킬 필요가 없었고, 많이 배양해서 포르말린 처리만 하면 됩니다.
소크는 1951년 2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 받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는데, 그가 그 전의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면, 바이러스를 키울 때, 사람이나 동물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흔히 베로(Vero)세포라고 알려진 원숭이 신장세포를 배양하여 여기에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것입니다. 지금도 베로세포는 백신을 만드는데 많이 사용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배양한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어떻게 불활화를 하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불활화를 하면 좋기는 하겠지만, 백신으로 항원성이 낮아질 것이므로 이 연구가 중요했는데, 그는 6일간 포르말린 투여를 하면 바이러스가 1억 병에 하나 정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1952년 100여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해서 성공을 했으나, 연구 단계에 있는 백신을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은 후 대규모 임상을 통해서 백신의 효과를 검증했습니다. 이때 완벽히 방어가 되지는 않았지만, 타입 1에서는 약 60~70%, 타입 2,3 에서는 90% 이상의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소크가 유명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는 태양에 특허를 낼 수 있을까?라는 말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아이디어는 이미 다 밝혀져 있던 것이라서 특허를 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소크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소크 박사의 연구는 그의 동료 연구원의 기여가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은 소크가 연구 업적을 가로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불행히도 이 당시 초기의 백신은 품질관리에 문제가 발생해서 164명이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백신으로 인하여 소아마비에 걸리게 됩니다. 이 유명한 사건은 나중에 피해자인 앤 고츠데인커(Gottsdanker)와 제조사였던 커터(Cutter Laboratories in Berkeley)사간의 재판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후의 연구에 따르면 그 원인은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커터사가 원래 소크가 사용하지 않은 다른 여과막을 사용했고, 그 결과 세포의 찌꺼기가 더 많이 들어갔고, 이러한 세포찌꺼기가 포르말린 불활화를 방해해서 극히 일부의 바이러스가 살아남았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의 FDA는 생산시설에서 아주 사소한 변화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변경하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아마비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은 왜 솔크박사가 노벨상을 타지 못했는가라고 의아해 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솔크박사는 백신을 개발했지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존에 알려진 기술을 이용해서 백신을 개발했기 때문에 노벨상과는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백신이 개발되면 그 질병이 완전히 박멸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간염백신이나, 어릴 적 맞는 많은 백신의 효과가 상당히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상당히 많은 백신의 효율이 80%를 넘기 어렵고 몇몇 백신은 부작용이 있으며(예, 탄저백신) BCG를 접종하는 결핵백신은 어린아이에게는 효과가 있지만 성인에게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신의 효과가 우수하기는 하지만 모든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참고문헌
Panic Virus